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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마음이 하는 일] 나와 함께 춤을
오지은(뮤지션) 2021-01-28

일러스트레이션 EEWHA

연말은 끔찍했다. 이렇게 시작하는 글을 최근 많이들 읽으셨을 것 같아 다르게 써보려고 노력해보았다. 이 정도의 경험에 끔찍이라는 단어를 갖다 써도 되나, 하고 자기 검열도 해보았다. 정초 첫 연재부터 칙칙한 얘기를 써도 되나, 하고 고민도 되었다. 아, 또 예술가들이 힘들다고 하는구먼, 하고 읽는 사람이 피로감을 느끼면 어쩌지 걱정도 되었다. 그렇게 저 한 문장에 한나절을 매달려 있다가, 이런저런 생각에 맞추다 보면 ‘아, 예, 저는 뭐 괜찮습니다, 파이팅’이라는 말밖에 못하겠다 싶어서 그냥 두기로 했다. 그래, 끔찍했다!

참 시간이 많은 12월이었다. 준비해야 할 공연도 없었고 일도 없었고 약속도 없었다. 그럼 좋은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대청소도 하고 그런 시간을 보내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충만한 마음은 시간이 많다고 자동으로 갖게 되는 것이 아니니까.

나는 넘쳐나는 시간 동안 조금 신기한 것을 발견했는데, 그건 내 머리속의 서랍이었다. 그 서랍 안에는 굉장히 많은 양의 서류가 들어 있었다. 내용은 다양했으나 서랍에 들어간 사유는 거의 비슷했다. ‘내가 오버하는 거겠지’, ‘내가 예민한 걸 거야’, ‘좋은 점도 많으니까’, ‘이런 생각해봐야 나만 손해지’라는 필터를 거쳐 처리된 서류들이었다. 나는 그 서류들이 잘 소각된 줄 알았다. 적당히 괴로운 시간을 보내다 도장 찍고 넘기면 사라지는 서류라고 생각했다. 그들이 모여 있을 줄이야. 이렇게 선명하게. 긴긴 겨울밤 동안 아주 잘 관람했다. 막판에는 머리 속에 단축키까지 생겼는데 인터넷을 하다가 어떤 사연을 읽으면 비슷한 내 경험으로 1초 만에 점프하여 그 서류가 눈앞에 들이밀리는 것이었다. 그럼 당시의 억울함과 분함이 동시에 재생되었다. 결국 내 마음은 동화 속 버터가 된 호랑이처럼 빙빙 돌다가 이석증이 도져서 실제로 눈앞이 빙빙 돌게 되었다.

권김현영님의 책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에는 이런 부분이 있다. ‘2015년 이후 여성 대중이 페미니스트 선언을 통해 고사 직전의 페미니즘을 되살려낸 것은 그래서 필연이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다. 그리고 이제 5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지난 몇년간 주변 페미니스트들은 모두 과로에 시달렸고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시간을 보냈다.’ 사실 권김현영님이 말하는 ‘과로’와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시간’은 내가 지금부터 쓸 얘기와는 조금 다른 얘기이다. (그는 이후 페미니즘의 여러 가지 갈래와 요즘 보이는 갈등에 관해 서술한다.) 하지만 나에게 내 나름의 ‘과로’와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시간’이 있었다는 것을 이번 겨울에 새삼 알게 되었다.

눈을 뜬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멋진 일이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여행을 떠나고 글을 읽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영역에 다다를 때 아, 하고 멈춘다. 좀더 나은 자신이 된다는 쾌감마저 느낀다. 하지만 그건 안전한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다. 실제 내 인생이 주제가 된다면 다르다. 그것은 때때로 비참하고 잔혹하고 지치고 화가 나는 일이 된다. 더 나아가선 유약하고 비겁한 자신의 태도에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사방이 지뢰였다. 화가 난다. 그리고 지뢰는 내 안에도 있다. 부끄럽다. 그런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기운이 빠진다. 세상은 빨리 변하지 않을 것이고 상황은 반복될 것이고 그걸 겪고 있는 나 자신도 그다지 괜찮은 인간이 아닐 것이라는 흐름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눈을 뜬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넷플릭스 영화 <더 프롬>을 보았다. 감독 라이언 머피의 머리 속에는 거대한 색종이 폭탄이 휘날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보여주는 세상은 화려하고 에너지가 넘치고 단순했다. 돕자! 이해하자! 사랑하자! 공감하자! 나는 시큰둥했다. 메릴 스트립니콜 키드먼이 춤추고 노래를 하는데도 그랬다. 내 탓인지, 감독 탓인지, 둘 중 하나겠지. 절대 메릴 스트립과 니콜 키드먼 탓일 순 없다.

에마는 미국 작은 마을의 레즈비언 고등학생, 사랑하는 여자 친구와 졸업 무도회(프롬)에 참석하고 싶지만 학부모회가 참석을 막는다. 관심이고픈 브로드웨이의 연예인들이 그 소식을 알게 되고 떠들썩하게 그 마을에 등장, 그리고 우당탕탕 벌어지는 한바탕 소동. 혐오는 옳지 않아용! 이야기는 흘러갔고 난 계속 심드렁했다. 에마는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과 소통하기로 한다. 방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 유튜브에 올리는 방식으로. 그걸 보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흔들렸다.

에마를 중심으로 90년대 트렌디 드라마 엔딩처럼 카메라가 빙글빙글 돌고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사람들이 공감을 하고 조회 수가 엄청난 속도로 올라가는 현대판 기적이 일어나는 그 장면에 순진하게 내가 감동을 하고 있었다. 나는 지친 어른이라 저 관심이 얼마나 짧을지, 에마의 이야기가 어떻게 토막내어져 입맛대로 소비될지, 그의 인생이 얼마나 납작하게 판단될지, 앞으로 겪게 될 차별은 어떤 것일지, 순간적으로 온갖 냉소적인 포인트들이 떠올랐지만 그 장면이 좋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이유는 에마의 표정에 있었다.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용기 있게 걸음을 내딛는 사람의 표정. 그건 그냥 너무 아름다웠다.

이야기는 좋게좋게 흘러간다. 혐오자들은 회개하고, 모두가 화합한다. 이런 이야기는 가끔은 기운을 주고 가끔은 오히려 절망을 준다. 현실은 그렇게 깔끔하고 아름답게 흘러가지 않으니까. 인생은 복잡하고 입장은 다양하고 혐오는 뿌리 깊다. 내면은 허약하다. 자, 그러면 어떻게 버텨야 할까. 요즘은 내내 이 생각만 하는 것 같다.

사실은 알고 있다. 강아지, 고양이 사진을 가능한 한 많이 보고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잘 쉬는 것. 모자란 자신의 모습대로 가능한 만큼 힘을 내는 것. 마음을 주고받는 것. 마지막 말은 간지럽지만 중요해서 넣었다. 에마는 여자 친구와 프롬에서 함께 춤을 추고 싶어 한다. 그때 부르는 노래 <Dance with You>는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다.

다들 생각이 같은지 마지막에 한번 더 나온다. 춤이 뭐라고. 세상이 바뀌나? 하고 1초 정도 생각하고 또 반성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둘이 스무살 넘어 금방 헤어지게 되든, 나중엔 이 춤을 추는 순간도 희미해지든, 그래도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춤을 추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는 것. 나중에 의미가 변하고, 없어지더라도, 무슨 상관인가.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데. 춤 다 추고 걸어나가면 그다음은 진흙탕이라고! 하고 1호선 광인처럼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억눌러야 내 머리 속 서류함도 정리가 되겠지. 진흙탕 속에서 추는 춤이 더욱 아름답다는 것, 그 정도는 겨우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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