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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귀멸의 칼날'은 어떻게 코로나19를 만나 지브리를 꺾었나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본 역대 흥행 NO.1

지난 1월 18일 일본 오리콘 발표에 의하면 애니메이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총 2644만 관객 동원, 수익 361억엔으로 일본영화 역대 흥행 1위를 기록했다. 이는 지금까지 1위였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316억8천만엔을 19년 만에 뛰어넘은 기록으로 현재도 실시간으로 경신되는 중이다(표2 참조).

이 작품의 바탕이 된 원작 만화 <귀멸의 칼날>은 2016년 2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주간 소년점프>에 연재됐다. 다소 고전적이면서도 탄탄한 서사와 등장인물은 호평받았지만 도깨비의 잔혹한 식인 묘사와 팔다리가 마구 잘려나가는 과격한 액션, 인기 캐릭터조차 가차 없이 죽이는 작품 분위기는 ‘주류’작으로 올라서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렇듯 괜찮은 작품이긴 하지만 결국 비주류로 끝날 것 같았던 만화 <귀멸의 칼날>은 유포테이블(Ufotable)에서 제작한 동명의 26부작 TV애니메이션으로 일대 전환을 맞는다. 2019년 4월부터 9월에 걸쳐 방송된 애니메이션은 <귀멸의 칼날>의 인지도를 엄청나게 끌어올렀고, 원작 만화의 인기지표라 할 수 있는 판매 부수는 이 기간 3배 이상 뛰어올랐다(표1 참조).

유포테이블은 아직까지도 인기가 이어지고 있는 <Fate> 시리즈로 대박을 친 회사지만 <Fate> 시리즈 외에는 그다지 두각을 드러내지 못했었다. 연출의 장단점이 뚜렷해 작품과 상성을 탄다는 평가도 많았는데 그 점에 있어 유포테이블과 <귀멸의 칼날>은 오랜만에 찰떡궁합을 보여주며 <Fate> 시리즈 이후 최고로 성공한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귀멸의 칼날> 애니메이션은 블루레이 판매에서 첫주에만 1만1594장을 발매, 오리콘 1위를 획득하며 2019년 4월 신작 중 최고 수익을 기록한다. 하지만 애니메이션 방영시간이 오후 11시30분으로, 일반 시청자가 아닌 오직 마니아만 시청할 수 있는 시간에 방영되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귀멸의 칼날>은 마니아 사이에서 인기 있는, 대부분의 사람은 겨우 이름이나 들어봤을 작품에 지나지 않았다.

원래 마니아를 대상으로 한 작품은 한 시즌 동안 반짝하다가 곧 다음 시즌 화제작에 자리를 넘겨주기 마련이지만 <귀멸의 칼날>은 마침 원작 만화가 클라이맥스에 이르렀던 덕분에 애니메이션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화제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시기가 2019년 후반기였다는 점은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작용해 <귀멸의 칼날>의 운명을 다시 한번 바꿔놓게 된다. 다음해인 2020년, 세계는 순식간에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재앙에 휩싸이게 된다.

원래대로라면 마니아 시장에서 <귀멸의 칼날>을 대체할 새로운 애니메이션이 부각될 시기였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애니메이션들의 제작과 방송이 늦어지며 <귀멸의 칼날>의 인기는 한동안 더 지속되게 된다. 마침 일본에서는 코로나19로 집 안에 머물게 된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의 인기 콘텐츠에 빠져드는 ‘넷플릭스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일어난 대표적인 파급효과 중 하나가 바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과 <이태원 클라쓰>의 폭발적인 인기에서 촉발된 제4차 한류 붐이었다. 냉각된 한일관계로 인해 주류 미디어에서 보기 힘들어지면서 일부러 찾아보는 마니아만 남아 있던 한류가,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일반 시청자들에게 급속히 접근하며 인기가 폭발하게 된 것이다.

같은 타이밍에 ‘넷플릭스 현상’의 수혜를 제대로 받은 <귀멸의 칼날>은 심야 애니메이션이라는 접근성의 한계가 사라지며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팬덤을 획득한다. 거의 기대하지 않았던 어린이 팬들을 비롯해 마니아만 보던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 팬으로 끌어들이게 된 <귀멸의 칼날>은 순식간에 국민적인 인지도를 획득하며 명실공히 ‘주류’의 자리에 오른다.

원래의 마니아 팬들은 놀이터에서 어린이들이 부르는 <귀멸의 칼날> 노래를 들으면서 당황스러움과 감동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여기에 많은 관련 기업들도 코로나19로 인한 시장 위축을 타개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귀멸의 칼날> 붐에 올라탔다. 이전까지 마니아용 피규어만 나오던 상품들이 어린이용 완구로 진출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런 현상이 결합되면서 <귀멸의 칼날>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자존심과 위상은 물론, 시장까지도 지켜준 작품으로 알려지게 된다.

극장판 개봉 직전에 발매된 <귀멸의 칼날> 만화 22권은 초판 부수만 370만부를 기록했는데, 이는 <원피스> 57권이 세웠던 초판 부수 300만부의 기록을 뛰어넘은 ‘대사건’이었다. 21세기 일본 만화 최대의 히트작이라는 <원피스>를 뛰어넘은 상징적인 기록은 <귀멸의 칼날>이 한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이 되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주었다. 같은 시기, 극장판 개봉을 앞두고 토요일 황금 시간대에 특별 편성된 <귀멸의 칼날> 총집편(TV애니메이션 방영분을 요약 정리한 특별편)은 16.7%의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연재 잡지인 <주간 소년점프>를 대표하는 <원피스>의 5%대는 물론, 일본 최고 시청률 애니메이션인 <사자에상>의 10%조차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심야 방송 당시 최고 시청률이 0.6%(예약 녹화 합산 3.1%)였음을 생각하면 무려 25배 넘게 상승한 것이다.

2020년 10월 16일 개봉한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첫 3일 동안 관객 34만2493명, 흥행 수익 49억2311만7450엔을 기록했다. 이는 코로나19 사태로 얼어붙은 전세계 극장가에서 이례적인 성공으로, 당시 전세계 최고 수준의 흥행 성적이었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개봉 직전의 일본 상황은 그야말로 최고의 조건이었다. 코로나19로 일본의 실사영화 촬영과 해외 인기영화 개봉이 미뤄지면서 강력한 경쟁작이 줄어들었고, 당시 일본이 감염 억제보다도 경기 부양을 우선하는 정책을 채택하면서 극장을 찾는 관객수도 다소 늘어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멸의 칼날>이 이 정도의 대기록을 세울 것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이 작품이 단독으로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TV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한 극장 상영용 특별 에피소드, 소위 ‘극장판’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히트한 <명탐정 코난>이나 <짱구는 못말려> <도라에몽> 등의 극장판을 생각하면 알기 쉬운데, 이들 작품은 해당 프로그램의 인기가 곧 극장판의 흥행으로 연결된다. 이는 시청자가 아닌 관객에게는 오히려 관람을 꺼리게 하는 장벽으로 작용하는데, 그래서인지 <귀멸의 칼날> 이전 일본영화 역대 흥행 기록에는 40위 안에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단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이런 징크스를 단숨에 박살내버렸다. 이 작품 역시 TV시리즈 팬들을 위한 작품인 것은 틀림없지만 굳이 서둘러서 보지 않아도 그만인 팬서비스용 극장판과 달리 TV애니메이션의 내용과 바로 이어지는 ‘시즌1.5’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TV시리즈 팬이라면 보지 않을 수가 없고 TV시리즈를 반복 시청한 팬이라면 자연스럽게 극장판의 반복 관람으로 이어지게 된다. 인기 행진을 계속하던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은 흥행 3주차에 이르러 드디어 일본영화 역대 흥행 수익 톱10에 들어가게 되고, 일본영화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200억엔대 고지를 돌파하게 된다. 그리고 개봉한 지 두달이 지난 12월 27일에는 드디어 흥행 수익이 324억엔을 돌파하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을 꺾고 일본영화 최고 흥행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렇듯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의 대기록은 작품 자체의 매력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여러 상황 조건이 기가 막히게 맞물리며 만들어진, 그야말로 ‘시대가 만든’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수혜를 다른 애니메이션이 이어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며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잠시 풀려 있던 극장가가 다시 얼어 붙었고, 이번에는 쉽사리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미 주류의 반열에 오른 <귀멸의 칼날>의 앞날은 밝아 보인다. 19년 만에 세운 대기록을 깨트릴 만한 작품이 현재 상황에서 쉽게 나타나긴 어려울 것이고, 비록 원작은 완결되었지만 이후에 만들어질 TV애니메이션이나 극장판 역시 대히트를 기록할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특이한 시대적 상황이 다시 만들어지기는 어려운 만큼 이번에 세운 기록은 <귀멸의 칼날>조차도 한동안은 깨기 힘든 기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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