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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쁘떼뜨' 독일의 아픈 역사에 완벽한 할리우드식 낭만을 덧댄 작품
김소미 2021-03-09

엑스트라들도 자기 사랑 앞에선 주인공이다. 1961년, 젊은 동독 군인 에밀(데니스 모옌)은 대형 영화 스튜디오에서 단역배우로 일하게 된 첫날 프랑스인 댄서 밀루(에밀리아 슐레)에게 반한다. 그러나 동독이 국경을 폐쇄하고 베를린장벽이 세워지면서, 독일 남자와 프랑스 여자의 사랑은 불가역적인 시대의 비극에 휘말린다. <쁘떼뜨>는 이 지점에서 에밀의 대책 없이 저돌적인 성격을 빌려 호쾌한 로맨틱 코미디로 방향을 전환한다. 직접 영화감독이 되어 밀루를 배우로 고용하려는 에밀의 계획은, 연인을 졸지에 냉혹한 쇼 비즈니스의 세계로 밀어넣는다.

아직 스튜디오 영화의 아우라가 남아 있던 그 시절, <쁘떼뜨>가 그리는 영화 세트장의 풍경은 환상 동화에 가깝다. 고개를 돌리고 몇 발짝만 걸음을 옮기면 계절과 시대, 장르가 다채롭게 수놓인 파노라마가 펼쳐져 풍성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한다. 화려한 스타들의 세계 이면에 군중으로 존재했던 단역배우들을 살피는 시선도 영화의 낭만적 필체와 제법 잘 어울린다.

<쁘떼뜨>는 이처럼 끝까지 화사한 휘장을 걷어내지 않고, 독일의 아픈 역사에 완벽한 할리우드식 낭만을 덧댄다. 장애물로 가로막힌 연인의 이별과 재회, 역경에 굴하지 않는 남녀의 초인적 인내는 지극히 원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전개를 벗어나지 않는다. 오래된 러브 스토리의 틀 속에 머무르는 갑갑함은 있지만 고전영화, 그리고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한 넘치는 향수가 관객의 마음까지 한결 너그럽게 만든다. 아날로그를 재현하려는 강박이 없는 촬영 스타일도 인상적이다. 디지털 질감을 그대로 드러내며 선명함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듯한 쨍한 화면은 어딘가 이질적인 동시에 영화라는 허구에 대한 묘한 은유로 작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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