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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지금부터의 내일>
진영인 2021-03-16

하라 료 지음 / 문승준 옮김 / 비채 펴냄

탐정이며 의뢰인이며 다들 담배 피우는 곳을 찾고 또 담배를 피워도 되는지 물어보는 모습을 보니 과연 하드보일드가 돌아왔구나 싶다. 널리 알려진 대로 레이먼드 챈들러와 그의 탐정 필립 말로에게 깊이 빠진 하라 료는 도쿄를 배경으로 챈들러의 느낌을 고스란히 되살린, 혹은 챈들러를 뛰어넘었다는 평을 듣는 미스터리 걸작을 써왔다.

그리고 14년 만에 시리즈 신작 <지금부터의 내일>이 도착했다. 시간의 흐름을 반영하듯, 탐정 사무소가 있는 빌딩은 이제 헐릴 때가 되었고 50살이 넘은 사와자키는 이사를 해야 한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이 연속으로 벌어지고 뜻밖의 진실을 찾아가는 장르의 법칙은 여전히 성실히 지켜진다. 사와자키는 소소한 일거리를 해결하며 살다 모치즈키라는 의뢰인을 만나는데, 조사를 나갔다가 은행 강도 사건에 휘말린다. 촌극인 줄 알았던 강도 사건은 알고 보니 조직폭력단과 비자금 문제가 얽혀 있고, 어쩔 수 없이 경찰과도 마주해야 한다.

서로 볼 장 다 본 사이지만 상대의 능력은 인정하기에 옥신각신하며 공존하는 캐릭터들의 관계가 주는 재미가 훌륭하다. 사와자키를 못 잡아먹어 안달이면서도 수사에 도움을 주는 신주쿠서 형사 니시고리가 한축이라면, 폭력단 세이와카이의 간부 하시즈메 및 한때 괴물 소리를 들었지만 아픈 어머니를 간호하려고 일에서 손을 뗀 조직원 사가라와의 관계가 또 다른 축이다.

사와자키가 수사하며 만나는 풍경들을 따라가면 요즘 시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보는 기분이 든다. 사채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세련된 은행으로 겉모습을 바꾼 대부업체들, 주인이 바뀌면서 인기를 잃을 처지에 놓인 오래된 요정, 취직이 어려운 대학생들을 위해 취직 네트워크 스타트업을 만든 대학 졸업생. 현장에 남은 성냥갑으로 수사를 하는 예스러운 설정만큼 사와자키가 밝힌 진실 또한 복고적이라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달라지는 외양 속에 변하지 않는 것들이 남아 있다는 주제를 전하는 것 같기도 하다.

과연 하드보일드

“나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먹어본 적 없는 열대과일의 과즙을 짜내고 난 찌꺼기처럼 피로감이 쌓여 있었다.” (238쪽)

“심장을 일격당하는 듯한 순간은 셀 수 없이 경험했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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