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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길영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어쨌든, 함께 보다
송길영(Mind Miner) 2021-04-07

척박한 미디어 환경에서도 꿋꿋이 발행되고 있는 <씨네21>을 사서 보시는 독자 분들은 필시 전문가일 것이라 믿기에 다음의 질문을 하고 싶다.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는 무엇인가 ?”

이것저것 검색하다 시나리오작가들의 카페에서 동일한 주제의 논의를 발견했다. 영화가 화면으로 이야기하는 비중이 높아 ‘지문’이 중요하다면 드라마는 ‘대사’로 이야기를 하는 편이라는 주장부터, 영화는 극장에서 돈내고 보고 드라마는 공중파에서 공짜로 보여지니 집중과 병행의 시청 환경이 다르다는 의견까지 흥미로운 토론이 이어진다.

그중 “드라마가 길게 늘어선 엿가락이라면 영화는 단단하고 각 잡힌 각설탕 느낌”이라는 찰진 표현이 눈길을 끌었다. 요컨대 길이와 밀도의 차이라는 것인데 그간 보았던 영상물들의 상영시간과 시간당 제작비를 생각해보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다 싶었다. 길이의 제한이라면 최근 나의 추억의 리마인더는 왓챠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였다. 짬짬이 먹을 것도 챙겨가며 본 4시간이 넘는 명작은 예전 2시간 남짓 편집본과 엄청난 차이가 있었다.

위의 이야기가 새로운 전개의 방향을 얻게 된 것은 OTT와 바이러스의 동시 습격에서 기인한다. OTT가 성장하며 매주 나눠 보던 드라마를 몰아서 보게 되었고, 긴 상영시간 중 관객의 방광을 배려하던 인터미션이 간단히 스페이스 바를 누르는 것으로 대체되며 짧게 보기와 길게 보기의 기준이 무너지게 된 것이다. 해를 넘기도록 기승을 부리는 바이러스로 인해 OTT로 가뜩이나 줄어들던 관객이 극장에 아예 오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지자 “보는 사람만큼 돈을 내던” 정산방식이 흔들리게 되어 양측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기 시작한다. 하정우, 황정민 배우가 주연을 맡은 넷플릭스 방영 예정 드라마는 윤종빈 감독이 연출하고 편당 제작비가 50억원을 훌쩍 넘는다 하니 방식이나 스케일이 기존 영화와 다를 바가 없어지면 영화만 고집하던 예술인들의 다양한 시도 역시 자연스레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극장에 가지 않고도 훌륭한 작품을 편하게 볼 수 있게 된 우리에게는 고마운 일이지만 암전에서 시작하던 사자의 포효가 기억 속에 선명한 것은 다른 이들과 함께 보는 즐거움 역시 주요한 기억이었기에 내 방의 영화관이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이 문제는 최근 영화 유튜버 김시선님이 진행한 “왕가위 리마스터링 왓챠 파티”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즐기는 것으로 해소할 수 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어릴 적 동시 상영관에서 <취권>을 보았을 때의 충격이 생각난다. 마지막 복수를 하기 위해 주인공 성룡이 원수와 만난 장면에서 필름이 끊어져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영화의 결말은 나의 기억 속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OTT 시대에도 그 영화를 다시 볼 생각이 없는 건 그때 함께했던 나의 까까머리 친구들과 지금껏, 그리고 앞으로도 그 해프닝을 이야기하며 성룡의 복수가 성공했기를 기원할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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