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INTERVIEW
'서복' 이용주 감독 - <서복>은 나의 또 다른 데뷔작이다
이주현 2021-04-22

사진제공 CJ ENM

<불신지옥>(2009)으로 범상치 않은 신인감독의 등장을 알렸고, <건축학개론>(2012)으로 평단과 관객의 사랑을 동시에 받았던 이용주 감독이 9년 만에 세 번째 영화 <서복>을 만들었다. <서복>은 인류 최초의 복제인간이자 죽지 않는 존재인 서복(박보검)과 죽음을 앞둔 민기헌(공유)의 동행을 통해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이야기한다. 복제인간이라는 소재와 160억원이 넘는 제작비 때문에 SF블록버스터로 생각하기 쉽지만 <서복>은 사실 장르 규정이 무의미한 영화다. 이용주 감독 역시 영화가 SF로만 정의되는 것을 경계했다. <서복>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이용주 감독에게 물었다.

-<건축학개론>이 개봉한 지 9년이 지났다. 세 번째 영화를 내놓기까지 왜 이리 오랜 시간이 걸렸나.

=나도 모르겠다. 주변에서 이런 속도로 다음 영화 만들면 환갑이라던데. (웃음) 이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건축학개론>의 흥행이 독이 됐던 것 같다. 부담감이 너무 컸다. 물론 영화가 흥행해서 행복했는데, 너무 칭찬을 많이 해주시니까 다음 영화를 더 잘 찍어야 한다는 부담이 커서 섣불리 차기작을 정하지 못하겠더라. 조금은 늦은 나이에 영화계에 첫발을 들였고, 감독이 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을 안고서 <불신지옥>으로 데뷔했고, 그러다 <건축학개론>으로 흥행까지 하고 나니 약간 목표를 잃은 듯한 상태이기도 했다. 그러다 2013년에 <서복>의 아이템을 잡았고, 2016년에 초고가 나왔다. 초고가 나오기까지 그 3년이 정말 힘들었다. 2013년부터 조민석 작가와 함께 초고를 썼는데 그 시간이 길었다.

-공포영화(<불신지옥>), 멜로영화(<건축학개론>) 그리고 SF(<서복>)까지, 지금까지 모두 다른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다.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재미가 컸다. 안 해본 장르라 궁금했고. <서복> 땐 액션이나 CG, 특수효과, 큰 미술, 큰 세트, 이런 작업들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서복>의 장르는 사후적 판단인 측면도 있다. 지금보다 더 다크하게 갔으면 공포가 될 수도 있었고, 한때 첩보극의 느낌이 강한 시나리오도 있었다. 내겐 장르적 접근이 아니라 서복과 기헌의 관계가 중요한 영화였다.

-<서복>의 출발점이 된 최초의 키워드는 뭐였나.

=키워드는 ‘두려움’. 한 문장으로 하면 유한한 인간의 실패담. 조금 확장하면 무한을 꿈꾸는 유한한 인간의 실패담. 처음 기획할 땐 서복의 이름도 서복이 아니었고, 최초의 설정은 예언자였다. 미래를 아는 예언자. 그리고 미래가 두려워서 미래를 알고 싶어 하는 민기헌. 그런데 이 설정으로는 시나리오가 잘 안 풀렸다. 다시 처음의 키워드로 돌아가서 생각을 풀어갔다.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은 뭘까. 그건 죽음이 아닐까. 그러면 죽지 않는 인간과 죽음을 앞둔 인간. 그러면 복제인간? 이렇게 이야기가 발전됐다. 중요한 건 인간의 두려움이라는 개념이었다.

-투자 단계나 캐스팅 과정에선 주로 어떤 이야기를 들었나. 스펙터클한 액션이나 비주얼이 아니라 인물들의 감정에 방점을 찍은 차분한 톤이 오히려 감독님의 과감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은데.

=이야기가 어둡다는 얘기는 있었다. CJ엔터테인먼트와 공동 제작을 했는데, 당시 CJ의 담당자는 어두워서 좋다고 했다. 그래서 함께 만들기로 했다. 애초의 의도와 방향을 인정해주는 곳과 함께하고 싶었고, 그게 CJ였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라 그랬는지 이상하게 그땐 어두운 정서의 영화를 찍고 싶더라. 너무 밝은 영화가 강제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이도 저도 아닌 선택을 하다가 무너지는 경우도 주변에서 많이 봤다. 물론 제작비 규모가 컸기 때문에 그 부담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다. 그건 감독으로서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고, 어떻게 영화적으로 잘 돌파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영화를 만들어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중요하고, 많은 분들이 영화를 즐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분명 있지만, 영화에 대한 내 최종적 바람은 오래도록 남아 회자되는 영화를 찍는 거다. 영화로 만들 만한 의미가 있는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고, <서복>도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현재인데, 미래 시제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시나리오를 쓰면서 관련 분야 리서치도 많이 하고 전문가들의 이야기도 들었는데, 누군가 그러더라. 지금도 세계 어딘가에선 비밀리에 인간복제 실험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국제법 때문에 인간복제를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영화는 그 실험이 한국에서 비밀리에 이루어졌고, 실험이 성공했다고 가정하면서 시작된다.

사진제공 CJ ENM

-영화를 보고 <네버 렛 미 고>의 차분한 정서도 떠올랐고, 복제인간의 운명을 말한다는 점에선 <아일랜드>나 <블레이드 러너>도 생각났다. 준비 과정에서 영감이나 영향을 받은 작품이 있다면.

=이야기의 원형은 <프랑켄슈타인>과 비슷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네버 렛 미 고>는 예전부터 좋아했던 작품이다. 다만 <네버 렛 미 고>나 <아일랜드> <블레이드 러너>와 다른 지점은 이들 영화는 복제인간이 주인공인데 <서복>은 복제인간 서복을 바라보는 민기헌이 주인공이라는 거다. 그리고 서복은 복제인간이라기보다 인간을 초월한 존재, 죽지 않고 인간이 가지지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존재에 가깝다. 기헌은 그런 존재에게 구원을 받는데, 내겐 이 설정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기헌이 곧 나였고, 기헌이 곧 관객의 시선을 대신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영생을 사는 존재의 고뇌보다 그걸 바라보면서 자신의 두려움을 직시하고 구원받는 인간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캐스팅과 관련해선 감독님이 고집을 부린 부분도 있나. 예를 들면 박보검과 공유가 아니면 안된다거나 하는.

=공유와 박보검을 캐스팅한다는데 당연히 이견은 없었다. (웃음) 중요한 건 배우들의 의사였다. 그러니 내게 왜 두 사람을 캐스팅했냐고 묻는 대신 공유와 박보검 배우에게 왜 이 작품을 선택했냐고 물어봐야 한다. 캐스팅은 <건축학개론> 때가 정말 어려웠고, 그에 비하면 <서복>은 캐스팅이 평탄하게 이루어진 편이다.

-두 배우가 잘 어울리겠다는 확신은 언제 들었나.

=그건 그냥 느껴지는 거 아닌가. (웃음)

-각자 매력이 있지만 함께 연기했을 때의 화학작용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거니까.

=만들어가는 거다, 현장에서. 확신을 가지고 현장에 가진 않는다. 다만 공유씨는 항상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데다 무엇보다 좋은 배우 이전에 좋은 사람이다. 보검씨는 집중력이 뛰어난 친구라는 걸 테스트 촬영하면서 알게 됐고, 워낙 예의 바른 데다가 연기까지 잘하니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러면서 서로 노력했다. 영화 현장이 그런 것 같다. <건축학개론>에서 수지이제훈이 처음부터 그만큼 잘 어울릴지 몰랐던 것처럼. 그런 게 감독으로서 내 복인 것 같기도 하다.

-권력을 남용하는 국가,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기업, 윤리성을 상실한 연구자들이 모두 영화의 빌런이라 할 수 있는데, 그중 조우진이 연기하는 정보국의 안 부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막무가내로 내달리는 악역이다.

=서복을 바라보는 몇개의 시선이 있는데, 기헌에게 서복은 자신을 살리는 존재고, 안 부장에게 서복은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수 있는 존재이자 자신의 죽음도 재촉하는 인물이다. 또 서인그룹의 김천호 회장은 서복을 통해 신의 권력을 얻으려 하고, 임세은 박사(장영남)는 아들이 그리워 서복을 창조했지만 괴로워한다. 서복은 이런 인물들에게 둘러싸여 있는데 안 부장의 경우 단순한 빌런이 아니었으면 했다. 서복이 존재해선 안되는 이유, 즉 안 부장의 논리에 사람들이 동의하길 바랐다.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때문에 인류가 멸망한다는 논리. 그래서 안 부장이 이야기의 중요한 한축이었다.

-물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한다. 조선소 내부에 서인그룹의 연구소가 있고, 서복의 실험실 배경도 바다고, 기헌의 트라우마도 물과 관련 있고.

=우선 물은 생명과 죽음의 이미지를 모두 가지고 있다. 시나리오를 쓸 때 물의 이미지가 처음 들어온 건 기헌의 판타지 장면에서였다. 기헌이 타고 있던 차가 물에 빠지고 망망대해에 혼자 떠 있는 기헌의 악몽 판타지. 그 이미지가 영화와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적극적으로 물과 바다의 이미지를 끌어들였다.

-처음으로 실험실 밖에 나온 서복이 시장에서 옷을 사 입는 장면이 있는데, 노랗고 빨간 원색의 옷을 사 입는다. 쫓기는 신세에 너무 눈에 띄는 옷을 고른 거 아닌가 싶었는데.

=조상경 의상감독님의 의견이 묘하게 설득력 있었는데. 일단 지방의 시장이라는 점에서 원색의 옷이 많을 것 같았고, 엔딩에서 서복이 입는 옷과 대비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무엇보다 서복이 처음 스스로 고른 옷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됐다. 서복의 심리를 반영한 옷이라고 할까. 설레고 흥분되고 아이로 돌아간 것 같은 서복의 마음을 반영한 옷. 그런 차림으로 비밀 안가에서 컵라면도 먹는데, 그때가 서복이 가장 아기 같은 모습을 보일 때라고 생각했다.

-서복이 초능력을 폭발시키는 마지막 대규모 액션 장면은 프로덕션 자체가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엄청나게 난이도가 높은 작업이었다. 미술도, CG도, 특수효과도. 엔딩의 그 장면만 20회차쯤 찍었다. 또 밤 촬영이어서 밤낮이 바뀐 채로 쭉 살았다. 심지어 일정상 그 촬영을 초반에 찍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에서 가장 어려운 장면을 먼저 찍고 나니 이후엔 모두가 끈끈한 한팀이 된 느낌이었다. 커다란 싱크홀은 장소를 분리해 나눠 찍었다. 조선소의 땅을 팔 순 없으니까 조선소에선 그린 배경을 대고 찍고, 다른 곳에 땅을 파서 찍은 뒤 합성하는 식으로. 이 장면을 찍고 나니 조금은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웃음)

-<불신지옥> <건축학개론>과 비교해 <서복>은 어떤 의미를 가진 영화로 남을 것 같나.

=<건축학개론> 때도 그런 얘기를 한 적 있다. <불신지옥>은 감독이 되게 해준 영화고, <건축학개론>은 그동안의 한을 풀어준 영화이자 꼭 찍었어야 하는 영화고, 다음 영화는 나의 진정한 데뷔작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감독으로 데뷔하고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까지 하고 나서 처음으로 만든 영화라는 점에서, <서복>은 나의 또 다른 데뷔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네 번째 영화는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하는데, 다음 영화의 마감 기한을 미리 정해두는 건 어떤가.

=안 그래도 봉준호 감독님이 문자를 보냈다. “내년엔 찍자”고.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넵” 하고 대답했다. (웃음)

관련영화

관련인물

사진제공 CJ EN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