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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습도다소높음' 고봉수 감독 - 독립영화와 코로나가 만났을 때
김소미 2021-05-06

<습도다소높음> 고봉수 감독

고봉수 감독 (사진제공: 고봉수 감독)

2020년 여름, 우리 마스크 안의 습도는 다소가 아니라 많이 높았다. <다영씨>(2018) <갈까부다>(2018) <근본주의자>(2019) <우리 마을>(2019)에 이어 2020년에도 부지런히 작업을 이어가던 고봉수 감독이 그 축축한 여름을 그냥 보낼 리 없었다. 코로나 확산세가 잠시 주춤했던 지난 여름에 고 감독은 바이러스 시대의 시사회가 열리는 작은 극장의 좌충우돌 풍경을 담아냈다. 악덕 사장(신민재)의 지시 아래 혼자서 1인 다역을 소화하는 알바생 찰스(김충길)는 극장 업무의 뉴노말에 적응하기도 버거운 와중에 무명 감독과 배우, 평론가의 드높은 자의식마저 상대해야 하는 캄캄한 고난에 처한다. 그들만의 리그 같은 독립영화 생태계를 그려놓고 짠내를 솔솔 풍기는 영화인 <습도다소높음>은 해학의 장단 끝에 눈물 한 방울을 훔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흐르는 땀과 치솟는 짜증들 사이에서, 고봉수 감독은 그답게 무언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순애보를 건져낸다.

-지난해 전주에서 영화 <근본주의자>를 선보였는데, 코로나19 초창기에 확산세가 심해서 관객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온라인 상영을 한다는 이야길 듣고 관객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우울했던 게 사실이다. <습도다소높음>은 그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코로나 시대에 독립영화 감독이 겪는 위기를 정면으로 반영한 코미디 영화가 등장한 점이 반가운데, 어떤 계기로 구상했나.

=코로나 상황에서 여러모로 처음 겪는 상황들 앞에서 당황스러운 나날들이었다.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는 게 가장 힘들었고, 영화를 찍는 데 제약이 많은 것도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이었다. 독립영화 감독들은 특히 관객과 직접 만나서 받는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겪었다. 나는 스트레스가 심할 때 어처구니없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힘들 때 나도 모르게 웃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이런 시기일수록 관객에게 웃음을 드려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한여름에 마스크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실제로 촬영 환경도 쉽지 않았을 텐데 구태여 여름 촬영을 진행한 이유가 있었나.

=지난해 6월경에 확산세가 잠시 주춤했던 때가 있어서 기습적으로 촬영하게 됐다. 마스크를 필히 착용하고 생활해야 하다 보니 무더위가 시작되는 무렵에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너무 괴로워하는 게 느껴지더라. 특히 직업 특성상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사람을 응대해야 하는 분들은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면서 극장 직원 찰스 캐릭터를 만들었다. 제목 ‘습도다소높음’은 영화의 컨셉을 듣고 아내가 지어줬다. 듣자마자 오케이했던 기억이 난다.

-김충길, 백승환, 신민재, 차유미 등 이른바 고봉수 코미디 유니버스에 익숙한 배우들 사이에서 이희준 배우의 등장이 신선했다. 의외의 캐스팅인데.

=운이 좋았다. 극 중 극장 사장 역을 맡은 신민재 배우가 이희준 배우를 연결해줬다. 알고 보니 이희준 배우가 <남산의 부장들>을 촬영할 때 이병헌 배우를 통해서 <델타 보이즈>를 추천받았다고 하더라.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참 독특한 영화에 괴짜 감독이네’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더라. (웃음) 그런 차에 신민재 배우의 제안을 받고 수락을 해 준 거다.

-관객이 채 5명도 안 되는 시사회에 감독, 배우, 그들의 가족이 와서 짠한 상황들이 벌어진다. 이전 영화에도 문화예술계 직종의 인물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메타적인 이야기에 끌리는 편인가.

=내 주변에 있는 인물이나 상황을 적극 활용하는 편이다. 이번 영화가 성사된 상황 자체부터 그렇다. 코로나 상황으로 어렵던 시기에 한 극장에서 내게 제안이 들어왔는데, 내가 만든 여러 편의 영화를 묶어서 재개봉하자는 기획이었다. 그런데 내 생각엔 차라리 텅 비어 있는 극장을 이용해 영화 한 편을 새로 찍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배급사의 요청을 듣고 내 계획을 역제안했고, 감사하게도 이루어졌다. 코로나 시대의 극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하면서 감독, 배우, 극장 직원, 평론가 등등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희준 배우는 근거 없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감독 연기를 재미있게 소화했다. 사실 실제 고봉수 감독의 캐릭터도 영화의 소재가 될 만 한 것 같다. 날 것의 B급 코미디를 만드는 감독인데, 인터뷰 때마다 보여주는 지극히 차분하고 깍듯한 태도가 영화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고 느낀다. (웃음) 이런 간극을 본인이 이미 잘 알고 영화에서도 활용하려 할 것 같은데.

=하하하. 사실 <갈까부다>에 이미 살짝 넣긴 했지. 이번 영화에서도 그 지점을 살짝 생각했었는데 이희준 배우와 미팅을 하고 나서 배우의 해석에 자유롭게 맡기기로 했다. <습도다소높음>의 감독 캐릭터는 전적으로 배우가 창조한 결과다. 현장에서 보면서 나도 많이 웃었다.

-종로구 낭만극장이 영화의 배경이다. 실제 추억이 있는 곳인가.

=옛날에 어렸을 때 아버지를 따라 낙원상가에 가서 허리우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기억은 있다. <갈까부다> 단관 개봉을 그곳에서 하기도 했다. 옛날 영화들, 고전 명작을 주로 상영하는 극장인데 특유의 아날로그함이 좋아서 영화에 넣고 싶었다.

-초저예산의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감독 중 하나다. 이번 영화도 극장을 무대로 매우 간소한 세팅으로 진행했는데 실제 촬영 기간은 어떻게 되나.

=계속해서 극장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극장 촬영은 하루 만에 다 끝냈고, 영화 속 영화를 비롯해 나머지 장면들을 3일 동안 찍었다. 총 4회차 촬영으로 만든 영화다. 마음이야 여유있게 길게 촬영을 하고 싶지만, 늘 그럴 수 없는 조건이다.

-<델타 보이즈> <튼튼이의 모험>에서부터 작업한 배우들과 여전히 늘 함께하고 있다. 배우들의 개성을 잘 활용하는 것을 넘어 이전 작업들을 인용하는 지점까지 나아갔더라.

=차유미 배우가 주인공인 영화 속 영화에서는 그동안 차유미 배우의 캐릭터 중 관객에게 반응이 좋았던 것들을 모아서 일종의 인상적인 연기 모음집을 만들어 봤다. 언젠가 우리 배우들이 유명해지고 바빠져서 나와 작업을 같이 못하게 된다면 어쩌지 생각해 본 적 있는데, 소속 선수들을 떠나보낸 해태 타이거스의 김응룡 감독 말이 생각나더라.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

-거의 매년 한 편씩 부지런히 영화를 만들고 있다. 영화 만들기라는 행위와 노동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처럼 보인다.

=단순하다. 나는 잘 하는게 딱 두 가지 말고 없다. 하나는 영화 만들기고 다른 하나는 청소다. 어디가서 알바를 하거나 일을 할 때도 손이 야물지 못해서 일 못 한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그랬던 내가,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았을 때의 첫 감격과 기쁨을 어떻게 잊겠나. 어떤 분들은 영화 만드는 것이 해산의 고통과 다름 없는 괴로운 작업이라 하시는데 나는 영화를 만들 때만큼 행복한 시간이 또 없다. 고통스럽게 만들어 걸작을 탄생시키는 분들도 있지만, 나는 영화를 만들며 느끼는 즐거움을 또 느끼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

-<델타보이즈>와 <습도다소높음>까지 전주국제영화제와 유독 인연이 깊다. 영화제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을 듯하다.

=우리 배우들과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남들은 1년의 시작이 1월이라지만, 우리의 1년은 5월부터라고. (웃음) 나는 늘 전주영화제와 함께 5월부터 비로소 새롭게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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