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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마음이 하는 일] 꼰대에 대한 고찰
오지은(뮤지션) 2021-05-20

일러스트레이션 EEWHA

‘꼰대’라는 단어를 요즘 부쩍 자주 듣는다. 내 마음속에서 그간 꼰대란 단어는 ‘얄개’와 동급으로 옛날 청소년 드라마에서 ‘우리 담탱이는 정말 꼰대란 말야!’ 할 때나 쓰이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널리 쓰이는 단어가 되어 놀랐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고 말조심하는 친구도 보이고, 꼰대를 증오하는 글도 종종 본다. 온 세상이 꼰대를 적극적으로 미워하는 느낌이다. 그건 꼰대가 늘어서일까? 아니면 세상이 발전하여 더는 꼰대를 참아줄 수 없어서일까? 그보다 일단 꼰대의 정의는 무엇일까?

나는 면전에서 꼰대라는 단어를 들은 적이 한번 있다. 그리 친하지 않은 다양한 나이대의 뮤지션들이 모여서 오래 수다를 떨었던 날이었다. 장소는 우리 집 거실이었고 나는 마음이 편해져서 평소보다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앨범 제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여기에 대한 내 생각은 ‘다음 앨범의 제작비를 벌어들일 수 없으면 정규 앨범은 내기 힘들다’였다. 물론 이것은 절대로 정설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나의 기준일 뿐이다. 앨범은 내고 싶을 때 얼마든지 내도 된다. 단지 제작비와 제작하는 기간에 쓴 기운과 생활비가 날 할퀴고 갈 뿐. 그렇게 얘기했더니 누군가 작게 말했다. 꼰대.

그때부터 그 단어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뜻을 찾아보니 이렇다.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 <BBC>는 2019년 자사 페이스북에 오늘의 단어로 ‘kkondae’를 선정하고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으며 거들먹거리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 풀이했다고 한다.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니, 정말 싫고 난처하다. 하지만 내 나이 어느새 마흔하나, 그 꼬리표는 내 가슴팍 근처에서 언제든 붙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연히 한 패션지의 인터뷰를 보았다. 그 패션지는 세련되기로 유명한 곳이고 나도 감히 인터뷰를 몇번 한 적이 있다. 인터뷰의 대상은 Z세대의 크리에이터 35명이었다. 요즘 젊은 예술가들은 무슨 생각을 하나 궁금해서 꼼꼼히 읽어보았다. 재미있는 인터뷰였는데 내가 놀랐던 게 15개의 공통 질문 중 하나가 “가장 이해하기 싫은 ‘꼰대’ 문화는?”이었다. 나는 살면서 이래저래 인터뷰를 해왔지만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한번도 없었다.

질문이 15개밖에 되지 않으니 좀더 나 또는 내 작업에 대한 질문을 해주는 게 좋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지만 그 또한 나만의 생각이었는지 많은 젊은이가 열띤 대답을 했다. 그들이 꼽은 꼰대 문화는 ‘단정 짓는 태도’와 ‘요즘 젊은 애들은~’ 하는 말버릇이었다. 그렇구나. 역시 앞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요즘 들판을 휩쓰는 메뚜기처럼 꼰대가 극성인가? 아니면 사회의식의 발전일까? 그나저나 단정 짓기와 요즘 애들 어쩌고는 그리스 시대부터 이어지던 재미있는 대화 주제인데…. 중장년끼리 사적으로 몰래 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의문은 해결하지 못했지만 꼰대는 되기 싫으니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테스트를 해보았다. 르르르라는 곳에서 하는 ‘꼰대성향검사’이다. 솔직히 답한 결과 다행히 나는 레벨1이었다(최고는 레벨5다). 하지만 레벨1도 안전하지 않았다. 레벨1의 명칭은 ‘투머치토커 훈장님’이었고 그에 따른 솔루션은 ‘불편하면 속으로 생각해라’였다.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어떤 답을 해도 이미 훈장님이고 불편함은 드러내면 안된다니. 그럼 나는 불편할 때 어떻게 해? 나는 이들이 중장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적대감에 대해 생각하다가 나의 예전 경험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별별 소리를 다 들으며 살았다. 가치가 없어서 까맣게 잊고 있었던 말들이다. ‘너는 이런 음악 말고 보사노바 같은 음악을 해야 해’, ‘여자 뮤지션들은 왜 맨날 사랑 타령만 해?’,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여자가 작곡을 하고 프로듀스를 해?’까지도 있었다. 야만의 시대였다. 지금은 설마 그런 말 안 하겠지. 어떤 때엔 열심히 항의하기도 했는데 당연히 효과는 없었다. 그저 개개인의 멍청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이 바로 꼰대였다. 역시 무언가를 지칭하는 언어란 중요하다. 하지만 누군가가 보기엔 나도 이미 ‘투머치토커 훈장님’이고….

꼰대의 반대말은 아마도 참어른일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어떤 자리에 가게 되면 계산만 하고 빨리 사라져야 참어른이다.’ 일리 있다고 생각했다. 그간 쌓은 나의 노하우는 그들에게는 더이상 노하우가 아닐 것이고, 내 안에 쌓인 환멸과 피로는 그 자리의 분위기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모 선배는 나와 친구들이 커피를 마시는 자리에 와서 봉투만 주고 사라졌다. 그때는 그 금액에 놀라고, 왜 우리와 놀지 않고 황급히 떠나는지가 궁금했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좋은 마음에서 출발했다고 주파수가 다 맞는 것은 아니니까.

한때의 루키는 곧 선배가 된다. 그래 앞으로 나도 돈만 내고 일어나야지, 돌아가는 길에 맨홀이 보이면 뿅 하고 들어가서 지하 세계에서 살아야지, 생각하다가도 ‘앨범을 만드는 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너무 고생했어요’ 이런 인터뷰를 보면 또 마음이 복잡해진다. 참어른 되기 어렵네.

이 시대의 참어른은 현재 배우 윤여정인 것 같다. 그는 쿨하고, 세련되었고, 말도 통하고, 출중한 능력을 갖췄으며, 무엇보다 꼰대가 아니다! 윤여정의 탈꼰대 어록이라는 카카오의 기사는 조회 수가 현재 41만건이다. 그의 인터뷰를 더 찾다가 2005년 딴지일보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젊은 배우들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말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좋겠다 그러죠. 길 닦아 놓으니까 뭐 지나간다고.’

아니, 이 시원함은 뭐지? 일본의 명배우 키키 키린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인터뷰한 책 <키키 키린의 말>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식당을 잘못 예약한 직원을 혼내는 키키에게 그 직원은 이렇게 대답한다. ‘공부가 되었습니다.’ 키키는 화를 낸다. ‘공부는 밖에서 마치고 와야지 왜 여기서 하고 있나요.’ 또 시원했다. 나에게 아무래도 꼰대와 참어른에 대한 오해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듣기 좋은 격려만 해주는 사람이 참어른이 아닌 것을.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걸까. 어차피 이런 이름표도 붙고 저런 이름표도 붙을 텐데.

가끔 우리 집에 젊은이 뮤지션들이 온다. 거실에 앉아 한숨을 쉬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낸다. 대부분 나도 겪었던 일이다. 하지만 세상이 원래 그렇다고 포기시키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버티면 괜찮아진다는 거짓말을 할 수도 없어 그저 커피를 내리고 단것을 내오고 같이 한숨을 쉰다. 더 마실래요? 응,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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