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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대부’ 이경규…“코미디는 내 직업, 영화는 내 꿈”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21-06-09

<찐경규>로 전성기 이어가는 ‘예능 대부’ 이경규

“그래, 이분은 역대 대통령들을 전부 인터뷰한 사람이었지.” 인터뷰를 앞두고 자료 조사를 하다 새삼스럽게 떠오른 생각이다. 이경규는 툭하면 버럭 소리를 지르고 녹화 시간이 길어지면 짜증을 내는 이미지와, 그럼에도 남녀노소 모두에게 호감을 얻는 코미디언으로서, 대선을 앞둔 정치인을 인터뷰할 수 있는 신뢰감까지 갖춘 드문 방송인이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 ‘이경규가 간다’를 통해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났고, 김 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방송인으로 꼽혀 따로 식사 자리도 가졌다는 일화가 유명하며(1997년 김 전 대통령이 냈던 문화·역사 에세이 제목도 <이경규에서 스필버그까지>이다), ‘이경규가 간다’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만난 데 이어 <느낌표>에서도 VCR로 질문을 던졌고, <힐링캠프-좋지 아니한가>(이하 <힐링캠프>)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인터뷰했다. 아이디어 회의에 직접 참여하는 성실한 기획자로서 한국 예능사의 굵직한 분기점을 직접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1980년대의 콩트를 지나 90년대의 토크 및 버라이어티 시대가 열렸을 때 이경규는 주병진 옆에서 토크 보조를 하다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몰래카메라’로 신드롬을 일으켰고, 21세기 들어 <일요일 일요일 밤에> ‘대단한 도전’을 통해 한국 예능 최초로 ‘캐릭터’를 잡는 트렌드를 선도했다. ‘양심 냉장고’로 공중도덕과 준법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웠을 땐 돌연 일본 유학을 떠났다. 현지에서 일본 예능 프로그램을 공부하며 그곳에서 봤던 세트에서 영감을 얻어 한국에 돌아와 아이디어를 낸 <야!한밤에>의 ‘보고 싶다 친구야’의 포맷은 이후 다양한 프로그램에서 변주됐다.

지난해 9월 카카오TV에서 론칭한 <찐경규>는 ‘예능 대부’ 이경규가 디지털 세대의 신문물을 배우는 등 매회 새로운 도전을 하는 숏폼 콘텐츠다. 누적 조회수 5500만뷰, 단일 에피소드 조회 수 350만뷰를 돌파하며 예능계 패러다임의 전환에 완벽히 적응한 40년 경력 방송인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그런 그가 ‘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다른 사람이 된다. 무려 30년 가까이 감독·주연·각본·기획을 맡은 <복수혈전>이 예능의 웃음 소재가 되는 것을 막지 않으면서, “영화는 남지만 코미디는 남지 않는다”라며 눈을 반짝인다. 강우석 감독 역시 동갑내기 이경규를 “영화에 대한 마음이 지쳐 있을 때 이경규가 내 멘토”였다며 “영화 얘기만 나오면 눈빛이 달라지는 감독”이라고 묘사했다(<힐링캠프>). 어쩌면 그는 자신을 혹독히 채찍질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실패를 한껏 놀리는 분위기를 기꺼이 끌어안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예능 대부’의 후광도 섣불리 누리지 않으려 한다. 이경규는 의외로 그가 쉽게 갈 수 있는 길, 가령 자신의 네트워크를 이용해 자금을 보다 수월히 유치한다거나 예능인으로서 받은 부당한 편견을 널리 토로한다거나 자신의 열정을 내세워 왠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의 작품을 봐줘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형성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제작을 맡은 영화 <복면달호>의 홍보 기간 <황금어장-무릎팍도사>의 녹화를 고사했다가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나서야 출연한 일화를 보아도 그렇다. 자기 작품에도 냉정하다. 개인적인 만족도를 별점으로 매기면 <복수혈전> 별 1개, <복면달호> 별 2개 반, <전국노래자랑> 별 3개란다. 이경규의 제작사 인앤인픽쳐스에서 <전국노래자랑>을 함께 준비했던 권지원 현 리틀빅픽처스 대표는 그와 몇편의 시나리오 개발을 하며 영화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눠온 동료다. 권지원 대표는 이경규에 대해 “영화만큼은 굉장히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임한다. 영화도 많이 보고 취재도 자료 조사를 무척 성실하게 한다”고 전했다. “일주일 중 3~4일이 예능 프로그램 스케줄이라면 나머지는 주말까지 풀로 동원해 책을 읽거나 회의를 하며 작업하는 스타일이다.”

현재 권지원 대표와 준비 중인 작품 외에도 세편의 시나리오를 개발 중이라는 이경규를 만났다. 이날 인터뷰는 6월 9일 방영 예정인 <찐경규>의 에피소드 녹화를 위해 <복수혈전> 당시 신사동 제작사를 시작으로 그간 엎어진 프로젝트를 준비했던 제작사를 찾아가고, 현 이경규의 회사 앵그리독스가 위치한 리틀빅픽처스 내 사무실 공간에서 회의하는 모습을 촬영한 이후 진행됐다. <씨네21> 화보 촬영 및 인터뷰에 관한 에피소드 또한 <찐경규>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지금이야 많은 예능인들이 유튜브나 카카오TV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예능 프로그램을 하지만 카카오TV가 막 론칭했을 때 톱 방송인이 디지털 시장에 뛰어든다는 건 굉장히 도전적인 사건이었다. 돌이켜보면 tvN 초창기에도 <화성인 바이러스> <러브 스위치>를 진행했는데.

=1990년대에도 케이블TV가 처음 생겼을 때 현대방송으로 후다닥 달려가 <이경규 쇼>를 했다. tvN이 생기고 얼마 안됐을 때 <화성인 바이러스>를 했고, 종편이 개국하니까 JTBC에서 <한끼줍쇼>를 하고, 채널A에서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를 하자고 해서 또 뛰어갔다. 새로운 플랫폼이 생길 때마다 그냥 달려간다. 왜냐하면 새로운 곳으로 옮긴 사람들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계속 한쪽에만 있다 보면 날 보는 시선이 어떤 면에서 획일화될 수 있는데, 방송국을 옮기면 그쪽 PD들은 또 다르게 생각한다. 그래서 MBC에 오래 있다가 KBS로 갔을 때 <남자의 자격> 같은 방송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잘 옮겨 다녀서 유재석, 강호동과 함께 지상파 3사에서 연예대상을 다 받아본 방송인이 된 거 아닌가.

=그렇지. 여기서 상 하나 받았다 싶으면 저기로 가보고, KBS에서 <남자의 자격> 하고 SBS로 가서 <힐링캠프> 하고.

-그 <힐링캠프>로 SBS 연예대상을 받았다. (웃음) 만약 카카오TV에 연예대상이 생긴다면 단연 이경규가 유력 후보 아닌가.

=강력 후보지, 강력! (웃음)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걸쳐 모두 대상을 수상한 유일한 예능인인데, 2020년대에도 탈 수 있지 않을까?

=사실 뭐, 지난해에도 KBS 연예대상 후보였는데, 김숙한테 뺏겼다~! (웃음) 올해 상을 돌려받을 거다. 하하하.

‘요즘’의 느낌을 유지하는 법

-‘예능 대부’로서 그간 거쳐온 궤적이 어마어마하다. 80년대 콩트의 시대를 지나 90년대 버라이어티의 시대가 시작됐고, 90년대 초 <일요일 일요일 밤에> ‘몰래카메라’로 전성기를 누렸다. ‘이경규가 간다-양심 냉장고’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눈에 들어오는 코너가 하나 더 있다. ‘시네마천국’은 고전 명작을 재미있게 패러디하면서 영화적 기법을 동원한 특수촬영을 보여준 코너였다. 영화를 사랑하는 당신에겐 정말 신나는 작업이었겠다.

=그때 우리나라 배우 중 주인공급 되는 분들과 함께 ‘시네마천국’을 많이 꾸몄다. <남과 여>는 김희애씨하고 엉터리 가짜 불어로 연기했다. 고두심 선생님과 <장미의 전쟁>, 최민수씨와 <람보>, 박중훈씨와 <대부>…. 그 시절에 유행한 영화들은 거의 다 패러디했을 거다. 거의 1년6개월 했으니까.

-지금 보면 어떻게 이 섭외가 가능했나 싶을 정도인데.

=그때는 방송국이 힘이 셌다. 방송국에서 부르면 배우들이 무조건 다 나왔다. (웃음)

-아이디어 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걸로 유명한데, ‘시네마천국’ 아이디어도 직접 냈나.

=그렇지. 작가, PD들하고 모여서 같이 회의하면서 매주 영화를 골랐다. 그때는 다른 프로그램을 안 하고 이거밖에 안 하니까 시간이 많이 남았다. 매일 회의하고, 매일 촬영하고. ‘시네마천국’은 지금 다시 해도 재밌을 거다.

-사실 <찐경규>에 브레이브걸스가 출연했을 때 <브레이브하트>를 패러디한 것을 보고, ‘시네마천국’의 영향인가 생각했다.

=워낙 그런 패러디를 많이 하다 보니 “브레이브걸스는 <브레이브하트>다, 이건 멜 깁슨이다”라며 하게 된 거다. <편스토랑>에서 요리 주제가 만두 요리였을 때는 <올드보이>를 패러디했다. ‘만두보이’라고. (웃음)

-그럼 지금까지 이경규의 예능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시네마천국’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뭐였나.

=김혜자 선생님과 했던 <미워도 다시 한번>. “혜자! 혜자!! 혜자~!!!!!!” 내쪽에서는 비가 오고, 김혜자 선생님쪽은 비가 안 온다. 한강물을 퍼올려서 내쪽에만 비를 퍼부었는데, 물이 많이 오염돼 있더라고. 그래서 촬영 끝나고 피부병에 걸렸다. 알고 보니 김혜자 선생님이 역으로 날 속이는 ‘몰래카메라’였더라고. 참나~.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고, 새로운 플랫폼이 등장하면 누구보다 먼저 진출하고, <전파견문록>이나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을 하면서 어린이들의 생각을 듣고, 나이를 먹으면서 어떻게든 젊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감각을 유지하려 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찐경규>에서 “나는 트로트 안 듣고 방탄소년단이나 이달의 소녀 듣는다”고도 하지 않았나.

=트렌드를 맞추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냥 걔들이 뭘 하고 있나 보는 거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저런 것도 하는구나. 우리 때는 저런 걸 할 수 있었을까?” 자칫 잘못하면 꼰대가 된다. 웬만하면 나보다 좀 어린 친구들을 자꾸 만나면서 (멋쩍은 듯 웃음을 터뜨리며) 느낌을 잘 유지하려고 한다.

-최근에 96년생 김우석, 99년생 김요한을 ‘규라인’으로 영입했는데. 방탄소년단의 진이나 차은우도 좋아하지 않나.

=그게 이윤석이나 윤형빈 같은 애들이 나이를 먹어서, 신세대들을 만나려고~. 아무래도 세대교체가 필요하다.

-단지 그 이유는 아닌 거 같은데. 혹시 제작할 영화에 캐스팅하려고…. (웃음) 이 친구들 하나같이 마스크가 좋다.

=헤헤헤헤헤. 아니야, 아니야~. 사실 그런 것도 좀 있다. 없다고는 안 한다. 젊은 애들 중에 배우할 만한 애가 누가 있나 살펴보는 거다. 사실 뜨고 난 뒤에는 섭외하기가 어렵다. 뜨기 전에 친해져가지고 빼도 박도 못하게 해야 한다. (웃음)

-그러고 보니 좋은 배우를 많이 발굴했다. 제작을 맡은 <전국노래자랑>에는 <응답하라 1994>를 하기 전의 유연석이 나오고, 이번에 다시 보면서 놀란 게 이정은 배우도 나오더라.

=그분은 우리가 발견한 배우다. 몇 장면 안 나오는데도 빵빵 터뜨렸다. ‘아, 정말 연기 잘한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다! 차기 영화는 무조건 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가 준비하던 영화를 못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우우우~ 어느새 떠서 <기생충>에 가 있고, <전국노래자랑>에서 김환희도 잘 키워놨는데, 어느 날 보니 어?! ‘뭣이 중헌디’로(<곡성>) 가 있더라고? 이초희씨도 정말 잘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뜰 거라고 생각했는데 주말 연속극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 맹활약을 했지. 우리 영화에 나왔던 친구들은 대부분 다 자리를 잡았다.

-배우뿐만 아니라 얼마 전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작품상을 받은 이종필 감독이 있다.

=누구?

-<전국노래자랑>의 이종필 감독이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으로 작품상을….

=(한참 침묵이 흐르다가) 이 감독이…? 참나. …아니. 이종…. 이종필이…? (웃음) 종필이가 그랬단 말이야? 그랬어요? 종필이가 장안동 사무실에 3년 동안 처박혀 있었다. 개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했는데, 시나리오를 한 1년 동안 적어도 책이 잘 안 나오더라고. 이게 종필이 거가 아니구나. 그사이에 <전국노래자랑>을 하게 됐다. 종필아, 이거 시나리오도 이미 다 되어 있는 거니까 이걸 해라. 감독 데뷔는 기회가 있을 때 해야 하는 거지 무조건 좋은 작품, 너한테 맞는 거만 기다리면 언제 하겠니? 해! 그랬다. 그런데 백상을 탔다고? 자식이, 연락이 없어. (옆에서 <찐경규>의 권해봄 PD가 “선배님 거쳐간 배우, 감독님들 다 대박나더라. 그러면 저도 <찐경규> 다음 작품이 대박나고….”)

-차태현 배우는 <복면달호> 바로 다음해에 <과속스캔들>을….

=참나, 아니 말이야! 차태현 배우도 그래. <복면달호>에서 대박을 내줘야지 왜 <과속스캔들>로 800만을 하냐고. <복면달호>로 떠서 <과속스캔들>로 간 거 아냐?

-제작자로서 안목이 좋아서 남들보다 너무 일찍 알아본 거다. 원래 배우였던 이종필 감독이 연출을 잘할 거라는 건 어떻게 알아봤나.

=그 친구가 연출했던 독립영화들을 봤다. 영화가 괜찮더라고. 그래서 내가 감독 데뷔를 시켰는데…. 그런데 이번 영화가 백상 작품상….

*본 기사는 <‘예능 대부’ 이경규…“대단한 악역을 한번 해보고 싶다”> 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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