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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발신제한'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걸려온 전화 한통
김성훈 2021-06-23

VVIP 고객만 관리하는 은행센터장 성규(조우진)는 출근길에 발신번호 표시제한으로 걸려온 이상한 전화 한통을 받는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정체불명의 목소리(지창욱)는 성규에게 대뜸 “지금 당신 의자 밑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폭탄이 터진다”고 경고한다. 보이스피싱일 거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성규는 눈앞에서 은행 부지점장인 정호(전석호)의 자동차가 폭발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정신이 번쩍 든다.

다시 걸려온 목소리는 “현금으로 9억6천만원을 준비하고, 문자로 계좌번호를 보낼 테니까 17억2600만원을 이체하라”고 요구한다. 성규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딸 혜인(이재인)과 아들 민준을 지키기 위해 휴대폰을 든 채 엑셀러레이터를 밟는다. 한편 경찰은 성규를 정호의 자동차 폭발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하고 쫓는다. 졸지에 사면초가 신세가 된 성규는 의문의 목소리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랴, 경찰의 추격을 따돌리랴 정신을 못 차린다.

<발신제한>은 성규와 그의 가족을 소개한 후 의문의 목소리가 등장하자마자 앞만 보고 내달린다. 성규에게 전화를 건 목소리의 정체가 누구인지, 그가 왜 성규에게 거금을 달라고 협박하는지, 그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자동차를 폭발시켜 성규를 죽이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가 영화의 중반부까지 거의 제시되지 않는다. 영문도 모른 채 의문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따르는 성규처럼 관객 또한 부산 해운대 도심을 질주하는 성규의 자동차에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카 체이싱 액션 장르 특유의 장르적 쾌감만큼이나 목소리의 사연에 대한 궁금증도 덩달아 커진다.

영화의 전반부가 의문의 목소리가 지시하는 대로 해운대 도심을 질주하는 카 체이싱 신을 보여준다면, 목소리의 정체가 드러나는 중반부부터 서사의 방향은 범인이 누구인지, 왜 성규를 범행의 타깃으로 정했는지를 밝혀내는 데 공을 들인다. 범인의 사연을 드러내는 걸 마지막까지 아끼지만, 범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건 역시 성규(가 하는 일)와 관련 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민준이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아빠 성규를 향해 “어둠의 악당 파파브라보”라고 외치며 장난감 전자총을 쏘는 장면은 성규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거라는 불안감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스탠리 도넌 감독의 <샤레이드>(1963) 속 한 장면이나 샘 멘데스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뷰티>를 떠올리게 할 만큼, 무척 인상적이다. 어쨌거나 범인의 사연이 점점 드러날수록 이 영화는 카 체이싱 액션 장르를 외피로 두른 사회 드라마의 형체를 갖추어간다.

94분 동안 생생하게 몰아칠 수 있는 건 성규를 연기한 배우 조우진의 공이 크다. 상대 역할이 보이지 않는 밀폐된 자동차에서 그는 서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노련하게 이끌어가고, 계산된 연기로 서스펜스를 차곡차곡 쌓아올린다. 의문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지창욱은 이야기의 중반부까지 목소리 하나만으로 서사에 긴장감과 공포감을 불어넣는데, 그런 그가 모습을 처음 드러내는 순간 신선한 충격을 선사할 것이다. 이 밖에도 성규의 딸 혜인을 연기한 이재인, 폭탄 제거 전문 경찰을 맡은 진경은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영화 <발신제한>은 <더 테러 라이브> <끝까지 간다> <마녀> <명량> <설국열차> 등 수많은 영화를 편집한 김창주 편집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CHECK POINT

부산 해운대 로케이션

<발신제한>의 무대는 부산 해운대다. 건물과 골목길이 빽빽하게 늘어선 장산역, 스카이라인이 펼쳐진 광안대교, 관광객에게 익숙한 해운대 광장, 도심 추격전을 찍은 구남로 등 해운대 도심 곳곳에서 펼쳐지는 카 체이싱은 이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다.

스릴러영화 편집자의 연출 데뷔작

누가 <더 테러 라이브> <끝까지 간다>의 편집감독 출신이 아니랄까봐, 9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군더더기 없이 전개되는 서사는 여러 스릴러영화를 편집한 김창주 감독의 학습 결과 덕인지도 모른다. 김창주 감독은 이 영화의 편집도 직접 했다.

든든한 조력자, 배우 이재인·진경·지창욱

조우진이 안정적으로 서사를 끌고 갈 수 있는 건 든든한 조력자가 포진해 있기 때문이다. 이재인은 성규의 딸 혜인을, 진경은 성규의 차에 설치된 폭탄을 제거하는 경찰을 맡았다. 목소리만으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지창욱은 선과 악의 경계에 선 묘한 인물을 연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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