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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의 마음이 하는 일] 소비와 향기
오지은(뮤지션) 2021-07-01

일러스트레이션 EEWHA

일러스트레이션 EEWHA

어떤 이미지에 처음으로 매혹된 순간을 기억한다. 1995년, 한국에 처음으로 패션잡지 <보그 코리아>와 <하퍼스 바자 코리아>가 창간되었고, 당시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으며, 그 광고는 디올의 향수 돌체 비타였다. 광고 속에는 한 여성이 있다. 짧은 곱슬머리의 그는 고개를 까딱 기울이고 부드러운 웃음을 지으며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두손에 긴 진주 목걸이가 있었다. 목에는 이미 화려한 목걸이가 걸려 있는데 말이다.

그 모습이 마치 ‘나는 지금 멋지고 행복하지만, 더 많은 행복을 움켜쥘 거야. 그리고 그 행복은 작고 소중한 것이 아닌, 크고 넘쳐나는 행복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진은 흑백이었지만 디올의 로고와 향수병은 선명한 노랑이었다. 동그란 향수병은 완벽한 행복과 환희를 상징하는 것 같았고 그 안의 황금빛 액체는 날 어딘가로 데려가줄 것 같았다. 잡지에는 샘플 향수가 붙어 있었다. 처음으로 맡아보는 고급 향수의 냄새였다. 외국이다. 파리다. 어른이다. 언젠가 향수를 산다면 꼭 돌체 비타를 사야지.

나는 스무살이 되었다. 처음으로 돈을 벌었고 정말 돌체 비타를 샀다. 아름다운 노란 동그라미가 내 것이 되었다. 향수를 뿌리는 법은 그간 <쎄씨> 등의 잡지에서 잘 배워두었다. 먼저 손목에 뿌리고, 살짝 비비고, 그걸 귀 뒤에 묻히면 된다는 거지. 어디서 톱 노트, 미들 노트, 이런 말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매혹적이지 않은가. 처음 뿌린 순간과 중간, 그리고 마지막 향이 다르다니. 자, 들어간다, 그 멋진 세계에.

뿌렸다. 와 정말 뭔가 멋지고, 뭔가 좋고(그렇게 느끼고 싶었고), 달고, 진하네. 이름부터 돌체 비타, 달콤한 인생이잖아. 하지만 나의 솔직한 어떤 부분이 ‘이건 인생의 환희가 아니고 알코올 냄새인데?’ 하고 말을 했다. 조용히 해. 재빠르게 무시하고 디올이 마련해둔 표를 보았다.

톱 노트는 목련, 계곡의 백합/ 미들 노트는 시나몬/ 베이스 노트는 헬리오트로프, 시더우드, 바닐라.

그래, 이 화사한 향기가 목련이구나. 그나저나 평지의 백합과 계곡의 백합은 어떻게 다른 걸까? 중간엔 시나몬이 있구나. 마냥 달지는 않게 약간 엣지를 넣은 건가봐? 역시 디올. 그나저나 헬리오트로프가 뭐지. 사전을 보니 털쥐오줌풀이래. 못 본 척하자. 페루의 연보라색 꽃이라고? 이국적. 시더우드는 삼나무. 마지막에 친숙하고 따뜻하게 바닐라로 마무리했네. 나는 디올에서 제시한 공식을 머릿속에서 재현하고 느끼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뭐가 뭔지 모를 기분이었고, 무엇보다 두손에 진주 목걸이를 쥐고 웃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언젠가 멋진 어른이 되면 돌체 비타와 나 사이의 거리가 좁아질 것 같았다.

그다음 시트러스의 세계에 들어섰다. 감귤류의 냄새다. 오렌지, 레몬, 라임, 자몽 이런 계열. 그중 ‘베르가모트’라는 향이 있다. 얼그레이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아 그 향기’ 하고 바로 알 것이다. 버튼이 눌렸다. 나는 그 사랑스러운 베르가모트 향을 담았다는 향수를 하나씩 시도해보았다. 내 살에서 베르가모트 향이 날 수 있다니. 하지만 달랐다. 내 살이랑 안 맞나봐. 하지만 어딘가에는 나와 만나 200%의 매력을 발휘할 베르가모트 향수가 있겠지. 아직 못 찾았을 뿐이야.

향수뿐만이 아니었다. 궁극의 화이트 셔츠, 궁극의 코트, 궁극의 가방, 궁극의 신발. 나는 ‘궁극’이란 단어가 좋았다. 지금까지의 실패는 궁극의 아이템에 닿기 위한 필수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잡지에 이런 기사가 얼마나 많았는지. “당신의 시그니처 스타일을 찾으세요.” “세련된 여성에겐 잘 맞는, 질 좋은 셔츠가 필수랍니다.” “저는 항상 같은 향을 뿌리죠. 절 만나는 사람들이 그 향으로 절 기억하게요.” 그렇게 20년을 헤매다가 얼마 전 화장대에 놓인 향수를 보다 생각했다. 나 아무래도 향수랑 안 맞는 것 같아.

생각해보니 그랬다. 향수를 뿌리고 머리가 아팠던 때가 많았다. 당연히 안 맞으니까 그랬겠지. 게다가 쥐오줌만큼, 아니 쥐오줌풀만큼 뿌리니 내 몸에서 좋은 향이 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나저나 애초부터 향수라는 물건은 처음에 몸에 뿌릴 땐 알코올 향이 강하고, 그다음엔 코가 마비되어서 정작 나는 향을 맡을 수가 없잖아? 그러면 스쳐가는 남을 위해 이렇게 돈을 써야 한단 말인가?

그런 깨달음과 함께 곤도 마리에의 손을 잡고 미니멀리스트가 되었다, 는 결론으로 가진 않았다. 인생이 그렇게 간단하겠는가. 향에 대한 집착이 디퓨저로 옮겨갔을 뿐. 현관에는 화이트 셔츠 향(또 화이트 셔츠네), 세탁기 옆에는 꽃집 향을 두었다. 가격도 향수에 비하면 저렴한 데다 무엇보다 내가 실컷 맡을 수 있으니 좋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 소비 습관이 수상하게 느껴졌다.

마침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미니멀리즘은 맥시멀리스트, 그러니까 온갖 것을 사본 사람이 다다를 수 있는 경지라고 생각했다. 각 분야에서 ’궁극’의 한개만 남겨서 집에 두는 거니까. 그런 내용의 다큐겠거니 했는데 아니었다. 현대인의 소비 습관에 대한 다큐였다. 왜 우리는 물건을 계속 사서 쟁여두는가. 여기엔 무섭고도 간단한 구조가 있다. 거대 기업과 마케팅 천재들이 엄청난 돈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 소비의 덫을 만든다. 행복의 이미지와 제품을 연결하고, 이걸 사면 당신 인생의 빈 조각이 메워진다는 메시지를 준다. 산뜻한 모습의, 정교하고 강력한 덫이다.

이 덫에 걸리면 즐겁다. 잠깐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을 켜면 신기하게도 내 마음을 읽은 것 같은 광고가 뜬다. 보다 보면 마음이 열리고, 이걸 가지면 얼마나 좋을지 상상이 되고, 정신 차려보면 결제가 끝났다. 얼마나 빠르고 간단한지 모른다. 아침에 정신이 들어 취소할까 싶다가도 그냥 말아버린다. 이틀 뒤에 택배가 오면 이미 마음은 식었다. 그 행동을 밤마다 반복한다. 영원히 목이 마른 사람 같다. 나는 궁극이라는 단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었다.

가끔 서랍을 열고 어느 날 밤 너무 갖고 싶어 했던, 하지만 지금은 그 마음이 아닌 물건을 꺼내서 사진을 찍는다. 그날의 기부처를 정하고 SNS에 공지를 올린다. 물건값은 나에게 보내지 않고 단체에 보낸다는 규칙이다. 택배를 쌀 때 제일 좋아하는 시트러스 향수를 가져와서 칙칙, 두꺼운 종이에 뿌리고 같이 넣는다. 택배를 받은 사람들이 향이 좋다는 연락을 몇번 주었다. 시칠리아의 베르가모트여, 당신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 기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