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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여성감독이 만든 최고의 영화 1~2위 … '살람 봄베이!', '칠판', '심플 라이프'

1위 살람 봄베이! Salaam Bombay!

미라 네어 / 인도 / 1988년

한줄 추천: 아시아를 대표하는 여성감독 미라 네어의 놀라운 데뷔작. 영화는 어떻게 현실을 품을 수 있는가에 대한 훌륭한 예시.

“봄베이 거리의 아이들에게 이 영화를 바친다.” 영화가 끝나고 등장하는 자막. 미라 네어 감독은 거리의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영화 <살람 봄베이!>를 끝맺는다. 인도를 대표하는 여성감독 미라 네어는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영화를 시작했다. 인도의 계층 문제와 여성들의 삶을 기록했던 미라 네어가 자신의 극영화 데뷔작 <살람 봄베이!>에서 거리의 가난한 아이들과 성매매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리기로 한 건 그러니 퍽 자연스러운 전개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서커스단에서 일하던 소년 크리슈나(샤피그 시예드)가 어쩌다 홀로 남겨져 대도시 봄베이(뭄바이의 옛 이름)로 향하며 시작된다. 스타 탄생이 실현될 수도 있는 꿈의 도시이자 극심한 빈부격차로 거대한 슬럼가가 형성되어 있는 도시 봄베이에서 크리슈나는 차(tea) 배달을 하며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과 거리에서 먹고 자며 생활한다. 마약을 팔다 마약중독자가 되어버린 칠럼, 사창가에 팔려온 네팔 소녀, 성매매 여성 레이카와 그녀의 딸 만주, 마약상이자 포주인 바바 등을 만나 세상의 명암을 보게 된 크리슈나는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연속으로 경험한다. 500루피를 모아 고향 집에 돌아가 엄마를 만나겠다는 꿈도 점점 멀어져간다.

미라 네어 감독은 봄베이의 거리에서 살다시피하며 아이들의 이야기를 취재해 <살람 봄베이!>의 시나리오를 썼다고 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들 역시 실제 거리의 아이들이다. 마약, 성매매, 사기, 살인과 같은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는 세계, 거리를 떠돌다 감화원에 끌려가 잊혀진 존재가 되기도 하는 아이들의 현실이 영화에 생생하게 담겨있다. 봄베이 빈민가 출신 고아 청년이 퀴즈쇼에 참가해 기적을 이루는 <슬럼독 밀리어네어>와 달리 판타지라는 당의정도 영화는 거부한다. 현실의 문제에 충분히 관여하면서도 섣불리 하나의 결론과 감상을 요구하지 않는 영화의 태도가 인상적이다. 이 작품으로 미라 네어감독은 1988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여성감독 최초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이후 <몬순 웨딩>으로 제58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또 한번 세계에 이름을 알린다.

2위 칠판 Blackboards

사미라 마흐말바프 / 이란 / 2000년

한줄 추천: 황폐한 국경 지대로 뛰어든 칠판과 카메라, 배움과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고찰

이란과 이라크의 황량한 국경 지대, 등에 칠판을 짊어진 채 학생들을 찾아다니는 선생 리부아르(바흐만 고바디)와 싸이드(싸이드 모함마디)가 있다. 산쪽으로 간 리부아르는 밀수품을 운반 중인 소년들과 마주친다. 당장 먹고살기에 급급한 아이들은 배움엔 딱히 관심이 없다. 그중 리부아르와 이름이 같은 한 소년만이 글을 가르쳐달라 부탁한다. 마을로 내려간 싸이드는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쿠르드족 노인들을 만난다. 노인들 또한 배움엔 별다른 관심이 없고, 싸이드는 호두 40알을 받고 그들의 안내원이 된다.

<칠판>은 이란영화의 거장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의 장녀인 사미라 마흐말바프 감독의 영화로, 이란의 메마른 국경 지대에서 제자를 찾아다니는 선생들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작품이다. 영화가 시작되고 보이는 것은 커다란 칠판을 멘 채 길을 걸어가는 선생들이다. 총탄 소리가 울려 퍼지는 위험천만한 분쟁 지역에서 글과 셈을 가르쳐주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그들이 메고 있는 칠판의 이미지만큼이나 낯설고 생소하다. 그들이 마주하는 사람들의 반응 또한 썩 유쾌하지 않다. 어색하고 멋쩍은 동행의 순간순간, 칠판은 뜻밖의 용도로 활용되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칠판은 때론 산길에서 다친 아이의 부목이 되어주고, 때론 매서운 총격을 막는 방패막이가 되고, 때론 아픈 이를 운반하는 들것이 되고, 때론 빨래걸이나 결혼 예물이 된다.

거칠고 험난한 길 위에서 배움과 교육의 상징인 칠판은 절박한 생존 문제와 직결되고, 그 과정을 통해 관객은 전쟁이라는 참혹하고 잔인한 현실에서 비롯된 궁핍하고 쓰라린 삶의 일부분을 엿보게 된다. 1980년 이란 테헤란에서 태어나 8살 때 아버지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는 등 남다른 환경에서 영화를 배워온 사미라 마흐말바프 감독은 첫 장편영화 <사과>로 1998년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으며 주목받았고, 이후 두 번째 장편영화 <칠판>으로 2000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자국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담아내는 젊은 여성감독의 결단과 시선의 깊이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2위 심플 라이프 A Simple Life

허안화 / 홍콩 / 2011년

한줄 추천: 담백하고 소담스러운 집밥의 맛처럼 우리를 천천히, 그러나 짙게 물들이는 정과 애수

성공한 영화 제작자 로저(유덕화)는 가족을 이민으로 떠나보내고 바쁘게 살고 있다. 그런 로저의 집안일을 4대째 돕고 있는 나이 든 가정부 아타오(예더셴)가 어느 날 갑작스레 중풍에 걸려 쓰러지게 된다. 타오는 로저에게 폐 끼치고 싶지 않아 요양병원행을 선택하고, 한평생 자신을 성심성의껏 돌봐온 타오의 건강 악화에 로저 또한 최선을 다해 그녀를 보살핀다. 병원에서 마주치는 이들에게 로저는 자신을 양아들로 소개한다. 병원을 오가는 이들의 사연 많은 얼굴에 익숙해질 즈음, 타오는 조용히 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홍콩 뉴웨이브 시네마의 기수이자 홍콩의 대표적 여성감독인 허안화 감독의 <심플 라이프>는 어느 여인의 삶에 대한 영화인 동시에 홍콩사회의 가족과 노인 문제를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앞서 <객도추한>(1990), <여인사십>(1995) 등을 통해 여성의 시선으로 복잡다단한 삶의 단면을 사색하고 고찰해왔던 감독의 역량이 발휘된 작품으로, <천녀유혼> 시리즈와 <황비홍> 등을 제작한 유명 영화 프로듀서 로저 리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평생을 함께해온, ‘어머니’와도 같은 가정부와의 이별 과정은 소박한 일상 풍경 속에서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은 톤으로 그려지는데, 바로 그같은 단정함, 담백함, 담담함이 이 영화만의 특별한 매력이다. 우는 장면 없이도 수증기 같은 슬픔에 젖어들게 만들고, 또 그 슬픔에 지나치게 매몰되지 않게 적절한 순간 감정의 온도와 무게를 조절하는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인다. 타오가 로저에게 자신이 모아둔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보여주는 온기 어린 장면이나 로저와 타오가 시사회에 참석한 뒤 대화를 나누며 길을 걷는 적요로운 장면이 특히 정서적 여운을 남긴다. <법외정>(1982) 등 여러 영화에서 함께 연기해온 배우 유덕화와 예더셴은 이 작품에서도 자연스러운 호흡을 선보이며 영화를 한층 따듯하고 풍요롭게 만든다. 예더셴은 이 영화로 2011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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