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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OCUS] 픽사나 오스카 말고, 진짜 에릭 오를 새롭게 알아가는 시간

판타스틱 단편 걸작선 - 에릭 오 특별전

에릭 오를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 소개하는 방법에 따라 에릭 오는 달라진다. 우선 ‘픽사’ 출신의 애니메이터! 가장 쉬운 소개법이고, 사람들의 관심을 제법 많이 끌어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에릭 오 자신은 그다지 반겨하지 않을, 아니 이제는 자신에게서 떼어내고 싶어 하는 수식어일 수도 있다. <도리를 찾아서>에 등장하는 문어 행크를 기억하는가? 누군가 당신에게 연체동물을 애니메이팅 하라 한다면, 그것도 다리 여덟 개가 달린 문어를, 게다가 그중 하나가 잘려나간 캐릭터의 애니메이팅을 맡으라 한다면… 아마도 ‘이쯤이면 이제 알아서 그만두시게’라는 신호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그 임무를 에릭 오가 해냈다. 그것도 아주 훌륭하게 말이다. 그리고 그는 홀연히 픽사를 떠났다. 홀가분한 기분으로 말이다.

에릭 오

또 다른 소개법, <댐 키퍼>(2015)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을 통해 무려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의 후보에 오른 에릭 오! 이때 ‘아카데미’를 힘주어 말한다면 여전히 에릭 오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족하다. 픽사에 오스카를 얹어 더블로 가는 건 너무 저렴한 멘트이다. 차라리 <댐 키퍼>를 통해 그가 자신의 길을 펼쳐 나간 상황을 보는 게 낫다. <댐 키퍼>를 누구와 만들었으며, 그들이 어떻게 톤코하우스를 꾸렸고, 단편이 어떻게 TV 시리즈로 확장되었는지 등등. 조금 더 신선하게 소개하자면 BANA(Beasts And Natives Alike) 소속의 아티스트로 스스로의 활동 영역을 넓혀가면서, 이러한 새로운 감각이 <O>(2015) 뿐만 아니라 <오페라>(2020)에까지 어떻게 증폭되었는지를 주목하면 된다. 물론 <오페라>를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로 오스카 최종 후보라는 정보를 굳이 붙여 넣고 싶은 유혹은 생길 테지만….

댐 키퍼(2015)

(2015)

독립 애니메이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라면 ‘에릭 오’만큼이나 ‘오수형’이라는 이름이 익숙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더 백>을 만든 2006년 이후로, 거의 매년 또는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은 자신의 단편을 만들고 그것을 기꺼이 독립 애니메이션이 중심인 영화제들(이를 테면 국내에는 인디애니페스트가 있다)에 꾸준히 선보이는 감독으로 말이다. 어떤 식으로 소개하든 에릭 오는 만능열쇠와도 같다.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종종 받는다.

- “애니메이션을 제대로 배우려면 전공학과를 들어가야 하나요?”

- “2D 애니메이션만 익혔는데, 픽사와 같은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일을 하려면 3D 프로그램을 배워야겠죠?”

- “먹고살려면 인더스트리에 취업해야 할 텐데, 그러면 개인 창작은 포기해야겠죠?”

오페라(2020)

이러한 질문(혹은 쓸데없는 걱정)을 한 큐에 꿰어 정리해주는 이름이 바로 에릭 오이다. (물론 그 이름 자체로 고민 당사자에게는 ‘오르지 못할’ 좌절감을 안겨줄 때도 있긴 하다.) 그가 애니메이션을 처음 접한 것은 학부 졸업작품을 위해서이지만 애니메이션 전공은 아니었다. 서양화 전공자가 졸업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도전은 아니다. 예전에는 전공 교수님들의 무지와 무관심이 큰 장벽이었고, 요즘엔 어느 정도 허용하는 분위기라고는 해도, 결국 중요한 건 ‘잘’ 만드는 것이다. 에릭 오는 비전공생임에도 불구하고 잘 만들었다. 아니, 웬만한 전공 졸업작품보다 훨씬 잘 만들었다.

에릭 오가 졸업 작품을 잘 만든 이유는 분명했다. 처음부터 탄탄하게 기본기를 다지면서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가 들려준 당시 상황은 이렇다. “며칠 동안,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을 집중적으로 관찰했어요.” 너무 뻔한 답이라고 들리는가? 마치 “교과서 중심으로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예습과 복습에 충실했을 뿐이에요” 라는 답처럼? 뻔할 수 있지만, 뻔하지 않다. 일단 어설픈 애니메이션 교재 따위를 베껴 그리지 않았고, 실제 사람들의 움직임에 집중하였으며, 무엇보다 이러한 훈련을 실제로 실천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맨땅에서 굴러가며 익힌 기본기는 그의 가장 큰 무기가 된다. 이후의 작업에서도 그는 2D에 기반한 작업을 끊임없이 해냈다. 픽사 같은 잘 나가는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3D 프로그램을 학습한 사람만을 뽑는다는 그릇된 생각은 버리는 게 낫다. 제대로 굴러가는 스튜디오라면 무엇보다 ‘애니메이션에 대한 센스’를 최우선으로 본다. 여전히 에릭 오가 누구인지 궁금하다면, 이번 기회에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그의 작품들을 보고, 그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보면 좋을 것이다. 그를 만날 때면 언제나 그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에릭 오가 나타난다. 그래서 늘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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