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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필름 유니버스’ 단편 영화의 우주를 항해하라
남선우 2021-07-14

26편의 단편을 6편의 옴니버스 장편으로 만나는 ‘숏필름 유니버스’

7월 22일 <숏버스 이별행>(이하 <이별행>)을 시작으로 각 장르와 소재를 순례하는 단편영화의 유람선이 닻을 올린다. 단편영화 배급사 퍼니콘과 자회사 언더식스티가 보유한 작품 중 동시대 단편영화의 색깔을 보여주는 26편이 엄선되어 6편의 옴니버스 장편으로 재탄생했다. 각각 <이별행> <감성행> <기묘행> <섬뜩행> <감독행> <배우행>이라는 이름으로 관객을 기다리는 6편의 영화는 7월부터 12월까지 순차적으로 개봉한다. 단편영화의 항해에 나서기 전 참고하면 좋을 지도를 준비했다. 6편의 영화가 품은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이별행>

<중성화>

<뜨거운 안녕.> 감독 유현 / 상영시간 11분40초 / 제작연도 2019년

<언프로페셔널> 감독 김세희 / 상영시간 11분 / 제작연도 2018년

<중성화> 감독 김홍기 / 상영시간 17분5초 / 제작연도 2019년

<그녀는요> 감독 원은선 / 상영시간 24분59초 / 제작연도 2018년

이별엔 짐이 많다. 누군가와 멀어지는 동안 쏟아야 했던 감정들도 버겁지만 수많은 물건과 존재들, 심지어 반려동물까지도 떠나야 할 혹은 홀로 챙겨야 할 무언가가 돼버린다. 꽃병부터 양말까지, 연인과 살던 집에 두고 온 것들을 캐리어에 내리꽂는 이가 있는가 하면(<뜨거운 안녕.>), 최후의 공연을 결심하고 난장을 피우는 밴드도 있다(<언프로페셔널>).

분노 표출로 인한 통쾌함은 잠시, 지나온 우리와 남겨진 혼자를 보듬는 손길은 <중성화>와 <그녀는요>에서도 이어진다. <중성화>는 유쾌한 톤으로 관계의 이면을 들추고, <그녀는요>는 한 개인의 곧은 심지를 담백하게 훑는다. 타인의 기억은 힘이 약해 오늘의 결심 앞에 번번이 스러진다. 나와의 재회는 이렇게 시작된다.

<감성행>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결정적 순간> 감독 강인석 / 상영시간 29분27초 / 제작연도 2017년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감독 안다훈 / 상영시간 15분58초 / 제작연도 2017년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감독 박경진 / 상영시간 45분27초 / 제작연도 2020년

<감성행>의 단편영화 세편 중 두편이 프랑스를 소환하지만 그 필치는 사뭇 다르다. <결정적 순간>의 프랑스가 상실과 애도의 공간이라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의 프랑스는 휴식과 동경의 공간이다. 두 작품의 또 다른 공통점은 <감성행>이라는 큰 제목에 걸맞은 명작을 호명해 영화의 지문을 드러낸다는 것.

오빠를 추억하며 길을 떠난 소영의 <결정적 순간>에는 에릭 로메르의 <녹색광선>이 함께하고, 새벽 편의점을 지키며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를 상상하는 미화는 언젠가 <비포 선셋>의 경험을 해보고 싶다. <감성행>의 마지막 작품인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는 정아의 작곡 여행을 따라간다. 노래를 다해야 확인할 수 있는 감정들이 바다로 흩어진다.

<기묘행>

<포세일>

<에케호모, 이 사람을 보라> 감독 현명우 / 상영시간 12분26초 / 제작연도 2019년

<조안> 감독 유정수·김지산 / 상영시간 8분 / 제작연도 2019년

<분실물> 감독 오현도 / 상영시간 15분50초 / 제작연도 2016년

<포세일> 감독 이용섭 / 상영시간 12분2초 / 제작연도 2019년

<세이브 미> 감독 전윤수 / 상영시간 17분33초 / 제작연도 2018년

불법 촬영을 일삼는 BJ의 실시간 방송(<에케호모, 이 사람을 보라>)과 데이팅 앱 사용자의 파트너 탐색(<조안>)이 초반 20분을 장악한다. 미스터리 스릴러 단편영화 5편을 모은 <기묘행>의 출발을 알리는 두편의 단편은 이렇듯 <블랙 미러> 시리즈를 연상시킨다. 기술과 매체의 딜레마를 꼬집는 두 작품은 오묘한 긴장감 끝에 텁텁한 여운을 남긴다. 시선의 문제를 조명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에도 주목할 만하다. 특히 감각적인 연출이 빛나는 <조안>은 제17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씨네큐브상을 수상한 바 있다.

다음으로 <분실물>과 <포세일>의 남자주인공들은 도시괴담 같은 일을 겪는다. <분실물>의 재우는 새해를 앞두고 실종된 딸로 인해 동분서주하다 시간 여행을 한다. <포세일>의 홍석은 빚쟁이들에게 쫓기다 500원짜리 동전만 거슬러주는 이상한 자판기를 발견한다. 작지만 분명한 세계관 안에서 클라이맥스를 만들어내는 단거리 경주 능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마지막 작품 <세이브 미>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배경은 노인 요양원. 그곳에서 환자를 돌보는 장수의 몸에 문신처럼 새겨지는 낙서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 불가사의로 인한 공포는 잊고 영화의 선택을 기다리게 된다.

<섬뜩행>

<사마귀>

<신에게 보내는 편지> 감독 강다연 / 상영시간 24분46초 / 제작연도 2019년

<그랑주떼> 감독 김상규 / 상영시간 17분6초 / 제작연도 2018년

<망치> 감독 전민혁 / 상영시간 18분 / 제작연도 2019년

<사마귀> 감독 임의준 / 상영시간 26분58초 / 제작연도 2020년

4편의 심리 스릴러 및 호러 단편영화로 채워진 <섬뜩행>은 반으로 나눠 두편씩 엮어볼 만하다. 그 중심에 여학생과 임신부가 있다. 우선 <신에게 보내는 편지>와 <그랑주떼>는 <여고괴담>의 한 에피소드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테다. 두 작품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여학생들의 불안을 파고든다. <신에게 보내는 편지>는 어머니와의 뒤틀린 관계를, <그랑주떼>는 동급생들과의 경쟁을 불안의 원천으로 지목한다. 각각 수영과 발레라는 소재를 꺼내들어 혼란을 견디는 육체를 장르적으로 해석한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한편 <망치>와 <사마귀>에는 새 생명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의심과 착란이 범람한다. <망치>가 근친상간이라는 키워드로 남편의 신경을 곤두세운다면 <사마귀>는 직장인 여성의 현실적 고민을 기괴한 신체 현상으로 터뜨린다. 이때 태동은 희망의 징표이기보다 비극의 도래처럼 들린다. 두 작품은 일어난 일과 일어날 일 사이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없는 이들의 비명에 귀 기울인다.

<감독행>

<소영의 영화>

<장래희몽> 감독 최진영 / 상영시간 9분8초 / 제작연도 2019년

<초겨울> 감독 현승휘 / 상영시간 20분7초 / 제작연도 2019년

<소영의 영화> 감독 서정미 / 상영시간 14분23초 / 제작연도 2019년

<애로> 감독 김건휘 / 상영시간 23분06초 / 제작연도 2020년

<메이킹 필름> 감독 이상빈 / 상영시간 22분38초 / 제작연도 2018년

영화과 재학생들과 졸업생들을 비롯해 영화 연출을 꿈꾸는 모든 이의 일기장 같은 옴니버스영화. <감독행>을 이렇게 설명해도 부족함이 없는 이유는 그 안에 지망생들의 일상부터 일생, 중대한 실수부터 사소한 성취까지 들어차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파노라마를 찍기 위해 <소영의 영화> <애로> <메이킹 필름>은 현장으로 간다. <소영의 영화>에서 소영은 휴학 중이지만 친구의 촬영을 도와주러 학교를 방문한다. 이도 저도 못하는 감독도 짜증나지만 희망에 부푼 후배도 은근히 거슬린다.

<메이킹 필름>의 준은 어쩌면 소영이 만난 우유부단한 감독과 닮은 인물. 친할아버지를 모시고 영화를 찍게 된 그는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할아버지에게 자꾸만 화가 난다. 가족 때문에 난처해진 감독이 또 있다. <애로> 속 에로 영화감독 영수는 갑자기 방문한 딸로 인해 시나리오를 수정하기에 이른다. 각자의 목표를 곱씹는 감독들의 분투는 <장래희몽>과 <초겨울>에서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수많은 사람이 감독이 되고 싶어 하고 그중에 내가 있다는 것. 그럼에도 나라는 감독은 하나라는 것. 그들이 되새기고야 마는 진실은 데뷔의 꿈보다 크고 값지다.

<배우행>

<클라운>

<Ok, 탑스타> 감독 이건휘 / 상영시간 28분48초 / 제작연도 2020년

<31, 내리다> 감독 김내리 / 상영시간 10분14초 / 제작연도 2018년

<오디션> 감독 황지현 / 상영시간 23분25초 / 제작연도 2018년

<언젠간 터질 거야> 감독 서태범 / 상영시간 21분23초 / 제작연도 2020년

<클라운> 감독 황재필·김효준 / 상영시간 19분31초 / 제작연도 2019년

배우는 언제 배우가 될까. 수많은 일자리가 그렇지만 배우만큼 기약 없이 선택을 기다려야 하는 직업도 드물다. <배우행>의 인물들은 자신을 연기자라 믿지만 더는 지망생 타이틀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 그래서 <Ok, 탑스타>의 배우들은 옥탑에 모여 연기 스터디를 한다. 전도연 말고 천도연, 송강호 아닌 송광호라는 이름을 가졌지만 고전문학 분석과 자신의 이미지 어필에 정신없다.

그 어지러운 하루하루를 <31내리다>와 <오디션>에서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내리(<31, 내리다>)와 지현(<오디션>)은 기회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만 생활인과 예술인의 경계에서 어설프게 양팔을 뻗고 있다. 남에게 사랑받고 싶고 나를 사랑하고 싶다. 그래서 복싱영화 출연을 위해 조감독 앞에서 잽을 날리며 발재간을 보이는 것도 두렵지 않다.

두려움을 잠시 잊고 자신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배우들은 <언젠간 터질 거야>와 <클라운>에서도 만날 수 있다. 혜림(<언젠간 터질 거야>)은 돌봐야 할 아이 때문에, 성미(<클라운>)는 오지 않는 아빠 때문에 캐스팅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연기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모든 방해를 이기고 한줄 대사를 뱉게 하는 그들의 진심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 영화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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