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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회 칸국제영화제 중간결산'...현실의 균열 속에서 영화는 탄생한다
송경원 취재지원 최현정(파리 통신원) 2021-07-21

<프렌치 디스패치>의 감독과 배우들. 사진 제공 SHUTTERSTOCK

7월 13일(현지시간) 프랑스 칸 해변에 화려한 불꽃 쇼가 펼쳐졌다.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를 축하하는 바스티유데이 불꽃놀이를 기점으로 7월 6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칸영화제도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다. 코로나19로 인해 쉽지 않은 상황 속에서 열린 만큼 크고 작은 문제가 없진 않았지만 순조롭게 축제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중이다.

<씨네21>에서는 올해 칸영화제의 전반적인 흐름과 함께 유난히 치열했던 경쟁부문의 추세를 점검했다. 24편의 작품 중 16편이 공개된 가운데 개막작 <아네트>, 폴 버호벤의 <베네데타>,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가 높은 평가를 받으며 두각을 드러내는 중이다. 현지 통신원이 전해온 74회 칸영화제 중간 평가와 함께 <베네데타> <드라이브 마이 카>의 기자회견을 정리해보았다. 올해 칸을 장식한 말들을 통해 영화제의 고민과 나아갈 방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세찬 파도 앞에서도 스크린의 불은 꺼질 줄 모른 채 밝기만 하다.

<분열>

우리가 알던 일상으로의 복귀와 영화제의 정상화. “지구상에서 영화는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던 봉준호 감독의 선언으로 문을 연 2021년 칸영화제는 코로나19 확산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영화제를 목표로 달려가고 있다. 2019년 황금종려상 수상자를 굳이 모셔와서 연속성을 부여하려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완벽히 예전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코로나19로 극장이 문을 닫고 모든 것이 멈췄던 만큼 예전보다 다소 많은 24편의 경쟁작에도 불구하고 영화 한편이 공개될 때마다 꼼꼼한 관심과 다양한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다. 레드카펫 행사와 스타들의 연이은 포토콜, 관객과의 만남이나 영화마다 이어지는 기자회견까지 최소한 겉보기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 영화제의 일상을 되찾은 것만 같다.

코로나, 스트리밍 서비스, 환경보호

<프렌치 디스패치>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현실은 익숙한 듯 미묘하게 달라졌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크고 작은 변화들이 코트다쥐르 해안의 풍경을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우선 입장할 때마다 확인하는 코로나19 패스는 물론이고 인터넷 티켓 예약이 의무가 되면서 영화를 보기 위해 길게 늘어선 줄이 사라졌다. 바뀐 규칙에 맞춰 유연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크고 작은 마찰과 변화를 따르지 못한 균열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칸의 코로나19 방역이 의외로 촘촘하지 못하다는 <뉴욕타임스>의 지적을 시작으로 프랑스 언론에서도 칸의 상황에 연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칸이 속한 알프마리팀 지역은 프랑스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온 곳(10만명당 61명)이기도 하다. 일각에선 백신에 대한 불안감도 번졌다. 프랑스 배우 레아 세두가 백신을 맞고도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으며 영화제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레아 세두는 세편의 경쟁작(<프렌치 디스패치> <더 스토리 오브 마이 와이프> <프랑스>)과 한편의 프리미어 초청작(<디셉션>)에 출연하여 행사를 앞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칸 곳곳에선 마스크를 제대로 쓰지 않은 채 악수와 포옹 등 밀접 접촉을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개막작이 시작되자 주변 관객 중 4분의 3이 마스크를 벗었고, 기립박수가 길어지자 레오스 카락스애덤 드라이버는 극장 안에서 담배를 피웠다”며 극장 풍경을 전했다. 마스크를 쓰지 않는 스타와 관객을 향한 항의가 SNS를 통해 번지자 집행위원장 티에리 프레모는 “마스크가 칸영화제를 끝까지 이어갈 수 있는 법”이라고 호소했다. 조직위원장 피에르 레스큐어는 아예 상영 시작 전 내보낼 메시지를 녹음하기도 했다. 다행히 영화제의 반환점을 돈 지금까지도 확진 사례는 나오지 않았다. 운영위원회측에서도 초반 다소 느슨했던 방역 규칙을 점차 강화해나가는 중이다.

코로나가 바꿔놓은 건 거리의 상황뿐만이 아니다. 칸영화제가 구체적으로 당면한 도전 과제는 어쩌면 코로나가 아니다. 표면적으로는 빠르게 성장한 플랫폼 산업과의 관계 재정립, 그리고 기후 재앙에 대비한 환경문제에 대한 화답이 더 두드러졌다. 영화 수입사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마켓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데, 넷플릭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긴장관계는 일정 부분 여전한 가운데 이들과의 공존이 불가피한 만큼 거리를 좁히려는 시도들이 발견된다.

일례로 개막작 <아네트>와 경쟁작 중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줄리아 뒤쿠르노 감독의 <티탄>, 미국 독립영화계의 신성이자 한국계 영화감독 코고나다의 <애프터 양>의 판권을 단독으로 사들인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한국의 스트리밍 업체 왓챠다. 또 하나의 화두인 환경보호에 관한 인식 변화를 위해 칸은 이른바 ‘슈퍼 그린’을 제창하는 중이다. 특히 이번 칸영화제에서는 과시적인 행사를 축소하는 것은 물론 환경영화를 위한 섹션을 마련하고 필요성을 홍보하는 등 공을 들이고 있다. 프랑스의 한 라디오 매체는 심사위원장인 스파이크 리 감독이 2018년 칸에 들고 왔던 <블랙클랜스맨>이, 환경영화제가 주는 상(그린 실 EMA 어워드)을 수상한 바 있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정치적이고도 예술적인

<페트로프의 플루>

익숙한 듯 미묘하고 사소한 변화는 24편의 경쟁작을 둘러싼 분위기에서도 감지된다. 16편의 작품이 공개된 7월 14일 현재, 확실한 황금종려상 후보라고 할 만한 화제작이 나오지 않아 누구도 수상작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단독으로 치고 나가는 작품이 없는 대신 몇편을 제외하곤 후보들 사이에 편차가 거의 없다는 점이 올해 도드라지는 특징 중 하나다. 대체적으로 작품마다 각자의 매력을 뽐내며 고르고 무난한 반응을 얻고 있지만 지배적인 예측이 없는 건 아니다.

결국엔 심사위원단이 정치적인 주제를 다룬 작품에 손을 들어줄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 언론의 반응이다. 조망하는 주제, 세계관, 인물과 시대를 다루는 방식 등이 서로 겹치지 않는 가운데서도 거의 모든 작품에서 사회적인 균열을 포착하고자 하는 열망과 에너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프랑스 평론가 장 미셸 프로동은 “직접적이건 그렇지 않건 올해 칸에 소개된 작품들은 사회적 균열을 다룬 작품들이 많다. 여기서 균열이란 사회구성원간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하는 계층의 분리 현상을 말한다”라고 진단했다. 계층 분리에 따른 균열은 올해만 특별한 것이 아니다. 2019년 황금종려상을 차지한 <기생충>이 대표적이다. 그 영향인지도 모르지만 올해는 특히 유사한 문제의식을 가진 작품 편수가 늘어난 상황이다.

<베네데타>

비단 경쟁작뿐 아니라 감독주간에 선보인 에마뉘엘 카레르 감독의 <위스트르앙>, 비평가주간 사뮈엘 테이스 감독의 <리틀 네이처> 등 여타 섹션에서도 사회적 균열을 소재로 한 영화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경쟁부문에서도 카트린 코르시니 감독의 <분열>이나 유호 쿠오스마넨 감독의 <6번의 칸>, 어머니의 죽음과 자유의 상실을 고찰하는 나다브 라피드의 <아헤드의 무릎>, 소비에트연합 해체 시기의 비이성과 폭력을 정면에서 응시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페트로프의 플루>, 아시가르 파르하디의 <히어로> 등 적지 않은 작품이 계층 갈등에서 촉발된 개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러시아에서 출국금지당한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경우 화상으로 기자회견을 가지기도 했으며 칸측은 극장에 그의 자리를 상징적으로 비워두었다. “가택 연금을 받는 동안 쓰여진 이 영화는 억압을 향한 당당하고 짜릿한 복귀”(<버라이어티>)라 할 만하다.

그중 대표적으로 <분열>은 이별을 앞두고 있던 두 여자가 프랑스의 노란조끼운동 시위로 병원에 갇히면서 일어나는 사건을 다룬다. 단순하지만 명료한 방식으로 개인과 집단 사이의 충돌을 표현한 이 작품은 “사회운동이 개인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미치는 영향을 예리하게 포착”(<스크린 인터내셔널>)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평단의 반응은 평범하지만 정치적 메시지가 두드러지는 <분열>이 황금종려상에 오른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인다.

전반적으로 고른 평가가 나오는 가운데 두각을 드러내는 작품은 개막작 <아네트>와 폴 버호벤 감독의 <베네데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 정도다. <르 필름 프랑세즈>는 “레오스 카락스가 아직 칸에서 한번도 상을 받지 못했다”는 걸 상기시키며 애덤 드라이버의 남우주연상을 비롯해 어떤 상이든 주어질 것이란 예상을 내놓았다. 여우주연상 후보로는 <베네데타>의 비르지니 에피라, <최악의 사람>의 레나트 레인스베, <분열>의 발레리아 브루니 테데스키가 거론되는 상황이다.

지금까지의 승자는 <드라이브 마이 카>

<드라이브 마이 카>

한편 지난해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이자 오랜 기대작이었던 웨스 앤더슨의 <프렌치 디스패치>는 대체로 평이한 반응이다. 68혁명을 배경으로 하되 프랑스의 한 가상도시를 무대로 한 이 영화는 <뉴요커> 스타일의 잡지 뒤에 있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짧은 챕터들을 여러 개 이어나가는 방식은 마치 영화를 하나의 잡지처럼 보이도록 구성했다.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웨스 앤더슨의 스타일은 여전한 가운데 프랑스 뉴웨이브 실험에 가까워진, 혼란스런 앙상블”(<인디와이어>)이라는 평이다. “에피소드는 물론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콜라주, 재창조하는 과정에서 여러 영감을 제공하지만 한편으론 익숙한”(<텔레라마>) 연출과 주제라는 한계도 지적된다.

화제작 중 하나인 폴 버호벤의 <베네데타>는 아마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영화일 것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공식 선정작 중 한편이었던 이 작품은 1987년 발간된 논픽션 <수녀원 스캔들: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한 레즈비언 수녀의 삶>을 원작으로 한다. “숭고함에 도달하기 위해 성적 환상과 에로틱한 장면을 뒤섞는 위험을 감수하는”(<포지티프>) 이 영화를 두고 <프리미어>는 “역사적인 동시에 로마네스크적 특성을 지닌 버호벤식의 훌륭한 이야기”라고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았다.

반면 프랑스 시사 일간지 <르 피가로>는 “이런 유치함은 놀이터나 광대쇼에서나 허용된다”라며 폴 버호벤의 작가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여러 각도에서 촬영된 에피라의 육체는 지나치게 현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일 만큼 명료하다”는 <텔레라마>의 평을 통해 여러 측면에서 이 영화의 성취와 한계를 짐작할 수 있다.

<스크린 데일리>는 물론 <카이에 뒤 시네마> <르 필름 프랑세즈>의 별점 모두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이끌어낸 건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다. <포지티프> <텔레라마> <레쟁록> 등 프랑스 언론 중 세곳이 이 영화를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으로 전망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는 아내를 잃은 연극 감독의 여정을 따라간다. 각본을 쓰던 파트너이기도 했던 아내를 잃은 남자는 작품 연출을 위해 히로시마로 간다. 말이 없는 한 여성이 그의 운전기사로 고용되면서 두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고요한, 하지만 산산이 부서지는 고통을 응시하는 이 영화는 “3시간의 러닝타임이 모자랄 정도로 농밀하다”(인디와이어). 산산이 부서진 세계에서 오늘을 버티고 살아가야 하는 시간은 히로시마라는 상징적인 공간과 연극 무대라는 극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찬찬히 흩뿌려진다. “3시간 동안의 완벽한 경험, 꿈처럼 흘러가는 러닝타임, 죽은 시간도 없고 단 한번의 서두름도 없는 마스터의 솜씨”(<프리미어>), “연금술과도 같은 침묵”(<르 몽드>) 등 찬사가 쏟아지고 있다.

사건과 사건 사이의 시간을 찍은 뒤 편집이라는 영화적 운동을 통해 리듬을 창조해내는 하마구치의 연출이 정점에 달했다는 평이다. 하마구치의 필모그래피 중 최고작이라는 반응이 이어지는 가운데 조심스럽게 황금종려상에 제일 가까운 영화로 거론 중이다. 어느덧 반환점을 돌았지만 숀 베이커의 <레드 로켓>, 일디코 에네디의 <내 아내의 이야기>,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메모리아>, 브루노 뒤몽의 <프랑스> 등 쟁쟁한 기대작들이 아직 베일에 싸여 있는 만큼 섣부른 예측은 금물이다. 올해 칸의 성과가 풍요 속의 빈곤이 될지, 기념비적인 풍년이 될지는 아직 좀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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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SHUTTERSTO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