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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우리, 둘' 노년의 레즈비언을 소재로 삼은 작품
이보라 2021-07-23

복도를 사이에 둔 이웃 니나(바르바라 수코바)와 마도(마틴 슈발리에)는 사실 오랜 레즈비언 커플이다. 이 연인의 성격과 환경은 판이하다. 니나는 욕망에 충실히 살아온 듯 자유로운 반면, 마도는 남성과 결혼한 적이 있으며 자식들이 장성한 뒤에도 여전히 커밍아웃에 어려움을 겪는다. 둘은 그들이 처음 만났던 로마로 떠나 함께 여생을 보내기로 약속하지만, 마도의 소극적인 태도에 니나는 실망하며 돌아선다. 제대로 화해도 못한 사이 마도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이제 니나는 마도의 간병인에게 자신을 그저 친구라고 뭉뚱그리며 매일 드나들던 그 집 앞을 걱정스럽게 맴도는 처지가 된다.

필리포 메네게티 감독의 <우리, 둘>은 퀴어 멜로의 계열에서도 드물게 다뤄지는 ‘노년의 레즈비언’을 소재로 삼았다. 초반부에 마도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이야기는 그가 쓰러져 말을 잃게 되면서부터 니나에게로 시점이 옮겨간다. 영화는 두 인물 각각의 입장을 섬세하게 조율하면서 퀴어 서사의 클리셰를 이리저리 피해간다. 무엇보다 이들이 연인으로서 함께할 방법을 집요하게 탐문하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은 데뷔작이다.

<우리, 둘>은 숨바꼭질을 하는 두 소녀 중 한 친구가 홀연히 사라져버리는 도입부로 시동을 건 뒤 내내 실종과 유폐의 모티프를 반복한다. 이동을 향한 열망과 거동이 불편한 몸이라는, 상충되는 두 요소는 이들의 사랑이 불가피하게 지니는 도주와 은둔의 속성을 환기한다. 묵직한 상징들이 돋보이며, 공간과 사운드를 활용해 정서를 쌓는 스타일도 주목할 만하다. 서로를 뜨겁게 아끼는 연인을 생생하게 연기한 두 주연배우는 제46회 세자르영화제에서 나란히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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