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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AI 시대, 좌파란?
우석훈(경제학자) 2021-08-12

영화 <아이, 로봇>

몇달간 좌파 에세이를 쓰면서 진보라는 개념과 좌파라는 개념에 대해서 깊게는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졌다. 좌우 구분이 기본이고, 진보는 보완적으로 쓰이는 개념이다. 우리에게는 북한이라는 민족사의 비극과 함께 보도연맹 사건으로 좌익으로 몰리면 그냥 사형시키던 시절이 있었다. 좌파라는 말을 쓰지 못했고, 그러다 보니 진보라는 애매한 개념으로 자본주의 모순에 대처했다. 보수는 상대적으로 정의하기가 쉽다. 그렇지만 진보는 정의하기가 아주 어렵다.

이 고민을 하다가 AI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질문을 해보았다. 영화 <아이, 로봇>에 나오는 AI인 비키(VIKI)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인간을 통제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유사한 결론은 <매트릭스>에서 이미 본 적이 있다. 인간을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어떻게 믿느냐는 네오의 질문에 소스 코드는 “우리는 인간이 아니니까”, 이런 뒤통수 때리는 얘기를 한다.

현실의 세계에서 아직까지 AI는 인간의 판단 심지어는 편견까지도 그대로 답습한다. 프로그래머의 기호가 반영되니까, 백인에게 더 호감을 갖거나 여성에게 공격적인 성향이 나오기도 하였다. 스캔들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서 정말로 인간의 사회를 나름대로 관찰하고 학습하는 AI가 나온다면, 그 AI는 어떠한 입장을 가질 것인가? 자본주의를 옹호할 것인가, 아니면 기본소득을 옹호할 것인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얘기한 대로 로봇 원칙 같은 게 AI에도 적용된다면,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AI는 좌파의 입장을 가질 확률이 높을 것 같다. 강자가 너무 강해지면 결국 코너에 몰리는 인간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런 사람들에게 AI가 특별한 보호를 더 하지 않을까? 존 롤스가 <정의론>에서 얘기한 맥스민, 최소점을 최고로 높인다는 정의의 원칙은 단순하기 때문에 AI 시대에도 유효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그런데, 집에 있는 로봇청소기를 못 쓴 지 벌써 몇년이다. 아이들이 장난감과 읽고 난 책들을 아무 데나 던져버리기 때문에 로봇이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는 그걸 먼저 치워야 한다. 그걸 치우느니, 그냥 진공청소기 들고 청소해버리는 게 훨씬 빠르다. 현실은 그렇지만, 각종 철학 문제에서 “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생각 대신 “AI라면 어떻게 판단할까”, 얼마 전부터 나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AI 좌파, 새로운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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