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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추천도서 <최애, 타오르다>
이다혜 사진 오계옥 2021-09-14

우사미 린 지음/이소담 옮김/미디어창비 펴냄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멤버를 ‘최애’라고 부른다. 가장 좋아한다는 말에는 어쩌면 자기 자신보다 더 좋아하는 대상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최애, 타오르다>를 읽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최애가 불타버렸다”는 문장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유사한 뜻으로 땔감이나 장작이 된다는 표현이 있다.) 팬을 때렸다고 한다. 즉각적으로 SNS에서 논란이 되었다. 소설의 화자인 아카리는 퍼지고 재생산되는 글을 보며 최애 우에노 마사키만 걱정하는 중이다. 친구에게서 “무사해?” 하는 문자가 온다. 아카리는 의연하게 학교에 가지만, 사실 학교생활은 진즉에 위기에 처해 있다. 아카리는 수업에 잘 집중하지 못하고, 최소한을 하려고 해도 있는 힘을 다 끌어올려야 할 판이다. 최소한만 하려고 해도 의지와 육체의 연결이 끊어진다. <최애, 타오르다>의 전반은 아카리가 쓴 블로그 글과 최애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의 기억을 바탕으로 진행되는데, 후반부에 이르러 급변하는 현실로 중심 내용이 이동한다. 현실을 무시할 수 없을 때까지.

아카리에게 최애는 삶의 구심점이다. 아카리의 최애가 처한 상황은 현실에서 아이돌과 관련된 이슈가 진행되는 방식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예측할 수 있는 방식으로 꼬여가고, 아플 때도 건강할 때도 최애를 파겠다는 아카리의 단단한 마음은 시험에 놓이고 시련을 겪게 된다. 지금껏 아카리는 최애의 말과 행동을 꾸준히 모니터하며 블로그에 글을 써 나름 유명한 팬 블로거로 성장했다. 블로그에서, 아카리는 반은 픽션과 같은 존재로 참여할 수 있었다. 같은 최애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최애를 예뻐하고, 불평불만을 털어놓으며 통근이나 통학을 하고, 재잘대며 함께 밤을 새웠다.

블로그의 아카리는 차분하고 야무진 사람. 하지만 최애의 상황이 불안정해질수록 아카리의 현실 역시 간신히 지탱하던 안정을 잃는다. 소설의 “최애는 인간이 됐다”라는 문장에 시선이 멎는다. 엉망진창이 되어버리는 것들을 버티게 하는 힘이기 때문에 인간 이상이어야 하는 존재인 최애, 그리고 그가 엄연한 인간이기 때문에 예견된 파국. 일평생 응원할 대상이 떠난 뒤에는 무엇이 남을까. 아포칼립스물의 첫 장면처럼 끝나는 이 소설의 여운이 길다.

반쯤 픽션으로 존재하는 나

여기에서는 내가 차분하고 야무진 사람이라는 이미지로 통하듯이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실제 자신과는 조금씩 다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반쯤 픽션인 나로 참여하는 세계는 따스했다. 모두 최애를 향해 사랑을 외치는 것이 일상생활에 뿌리를 내렸다.(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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