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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2호 [인터뷰] 발굴과 소개, 영화에 스며들기 위한 시간
송경원 사진 오계옥 2021-10-07

박가언 프로그래머

코로나 이후 바뀌는 건 영화제의 상황만이 아니다. 출품되는 작품의 주제나 면면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월드 시네마 부문을 담당한 박가언 프로그래머는 올해야말로 코로나 이후 영화 내적으로 일어난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결산의 장이라고 표현했다. “유럽의 경우 올해 상황이 괜찮았다. 명확한 제작기준과 가이드라인으로 통제된 환경에서 꾸준히 촬영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중남미권은 제작이 확연히 축소된 양상이다. 결과적으로 코로나로 인한 제작 편수의 차이를 실감한 한 해였다.” 이미 만들어진 영화의 개봉일시를 조정하는 단계였던 2020년과 달리 올해야말로 코로나 이후의 영화들에 대해 본격적인 변화가 증명된 자리라는 설명이다. 그 결과 영화는 코로나로 인해 단순히 축소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이다. 늘 그렇듯 위기는 기회이기도 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그 흐름과 경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에 축소 상영했던 어려움을 딛고 점차 정상화 되는 분위기다.

=2020년 초 코로나가 전 세계에 밀어닥친 후 작년 영화제는 최악의 상황을 넘겨야 한다는 비상한 각오로 치렀다. 코로나가 장기화됨에 따라 각국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있고 이제 그 결과물들의 차이가 보인다. 영화제 개최를 중심으로 보면 전반적으로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고 있지만 영화 제작 단위에서 보면 아이러니한 부분도 있다. 작년의 경우 코로나가 닥치기 전에 만든 작품들이 많았기에 완성된 영화의 공개시기를 조율하는 측면이 강했다. 하지만 제작의 축소가 올해 나타나고 있는 국가들도 있다.

-월드 시네마 부문은 그런 변화들이 확연히 드러나겠다. 주목할 만한 영화를 몇 편 꼽아본다면.

=프로그래머 입장에선 모든 영화를 꼽을 수밖에 없다. 다 재미있고 의미 있다.(웃음) 선댄스영화제부터 베를린국제영화제까지 올해는 동유럽영화들이 편수도 많았고 강세였다. 선댄스의 경우 그 동안 동유럽권에 관심이 덜했던 것이 사실인데 올해 양상은 달랐다. 북, 동유럽 모두 드라마적으로 탄탄한 영화들이 제작되고 있고 여러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보이는 중이다. 가령 베를린국제영화제의 경우 동유럽권 영화가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대표성이 있는 영화를 고른다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 감독상, 관객상을 석권한 블레르타 바숄리 감독의 데뷔작 <하이브>가 먼저 떠오른다. 코소보 출신의 작가 겸 감독인 블레르타 바숄리는 그동안 북미를 중심으로 활동해왔는데 좋은 기회를 얻었다. <하이브>는 전쟁 후 생존을 위해 노동하는 여인의 실화를 다룬다. 솔직히 미국의 메인 스트림에서 관심을 가져오지 않았던 소재의 색다른 영화였지만 올해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전 세계적인 영화 수급의 변화와도 무관하지 않아도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아쉬운 지역은 어디였나.

=작품이 없어서 아쉽다기보다는 코로나로 인해 영화를 가져오기 어려운 지역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영화들은 올해 주목해야 한다. 좋은 영화, 특히 젊은 여성감독들이 다수 활약했다. 다만 감독과 배우의 초청이 어려운 상황이라 영화만 가져오기 힘든 경우가 많았고 인연이 있거나 오래 기다려온 작품들만 소개하는 형편이다. 꼭 부산이 아니더라도 지금 러시아영화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소개될 것이라 생각하고,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만큼 강렬했다. 물론 부산에서도 전체적인 편수는 조금 줄었지만 그만큼 엄선된 중요한 작품은 대부분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부산은 전 세계 영화제 수상작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발굴과 소개라는 두 가지 원칙으로 움직였다. 우선 비 아시아권의 신인감독들을 소개하는 플래시포워드 부문에서 초청기준을 완화하여 아시아 프리미어영화까지 선보이기로 했다. 작년부터 논의되어 왔던 건데 좋은 영화들을 좀 더 많은 관객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코로나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관객들이 정말 보고 싶어하는 영화들을 소개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올해 플래시포워드에는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6번 칸>이나 베를린 경쟁부문에 초청된 <하늘을 바라본다, 바람이 분다> 등 베를린과 칸 수상작들이 부산에서 리턴 매치를 한다고 봐도 좋겠다. 부산영화제 관객들의 선택이 궁금하다. 그 밖에 올해 선댄스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로 다큐멘터리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나의 집은 어디인가>도 꼭 보시면 좋겠다. 아프가니스탄 난민의 기억을 더듬는 작품이다. 내용도 충실하지만 일단 작화가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그림의 애니메이션이다.

-코로나로 쉽지 않은 상황임에도 부산을 방문하는 감독들이 적지 않다.

=감사한 일이다. 부산과의 각별한 인연이 있는 분도 있고 아시아 시장에 적극적으로 문을 두드리고자 하는 흐름도 있다. 사실 유럽권 영화가 아시아영화제에서 첫 공개를 하기로 선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의미로는 코로나가 인식을 바꾸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관객과의 만남, 영화제라는 공간이 그만큼 중요해진 거다. 신작 <더 아일랜드>를 들고 부산을 방문하는 안카 다미안 감독은 전작 <환상의 마로나>(2019)를 통해 국내에도 잘 알려진 분이다.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부산영화제에서 월드프리미어로 신작을 소개한다. 칸 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상을 수상한 <디저티드>의 카드리 크뢰우사르 감독도 내한한다. 예전 같으면 기간이 겹치는 영화제들을 동시에 갈 수 있었지만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다른 곳을 포기하고 부산에만 오시는 분이 많다. 관객과의 만남을 통해 영화를 향한 서로의 진심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

-올해 영화제를 즐길 팁을 하나 주신다면.

=사실 시네필들의 정보력이 때론 프로그래머들보다 탁월하다. 우리보다 더 빨리 기대작을 고르고 판단이 정확하시다. 내가 아는 화제작들은 이미 다 아시더라.(웃음) 그래서 화제작을 추천하는 건 의미 없을 것 같고, 식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올해 부산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들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바란다. 홈페이지 프로그램 리스트를 자세히 보시면 해당영화의 수입사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나중에 개봉할 화제작들은 또 다시 기회가 있으니 초조해하지 않으셔도 좋을 것 같다. 아까 언급한 것처럼 영화제는 소개만큼 발굴이 중요하다. 저변을 확대하고 낯설고 어렵다는 심리적인 벽을 낮추는 게 우리의 몫이다. 여러분에게 영화가 스며들 수 있도록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으니 극장에서 새로운 얼굴을 만나시고 그 의미를 더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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