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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2호 [인터뷰] 1%의 관객과 99%의 관객을 생각하며
이주현 사진 오계옥 2021-10-07

서승희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프로그래머

서승희 프로그래머는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등 이른바 전통적으로 “영화 강대국”이라 불리는 서남 유럽과 중부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 영화를 담당하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로 2년만에 열린 칸국제영화제에 홀로 출장을 다녀온 터라 그 어느 때보다도 어깨가 무거웠다. 챙겨봐야 할 영화가 많아 출장의 업무 강도는 셌지만 그만큼 관객들이 궁금해할 화제의 영화를 한아름 선정해서 부산으로 돌아왔다.

-코로나19로 인해 칸국제영화제엔 2년만에 참석했다. 일은 많았지만 발견의 기쁨도 큰 출장이었겠다.

=우선 한명의 시네필의 입장에서 좋은 영화들을 스크린에서 마음껏 볼 수 있어 좋았다. 팬데믹 상황에서도 거장들이 칸에 영화를 들고 왔고, 눈물이 글썽한 채로 함께 영화 보는 것의 기쁨을 피력하는데 덩달아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다. 이런 게 영화제의 역할이고 존재 이유라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 칸의 라인업은 특정 작품이 좋았다고 얘기하기 어려울 만큼 전반적으로 풍성해서 프로그래머로선 행복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폴 버호벤의 <베네데타>도 오픈 시네마 섹션에서 선보일 수 있게 돼 좋고, <아네트>의 레오스 카락스님도 부산에 초청하게 돼 기쁘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비아시아권 상영작 라인업이 상당히 화려하다.

=지난해 칸영화제가 열리지 않으면서 묵혀 있던 영화들이 올해 한꺼번에 공개된 측면도 있다. 부산영화제 월드영화 프로그래머로서는 두가지 책임감에 대해 생각한다. 우선 관객이 보고 싶어 하고 기대하는 영화, 그래서 책임지고 틀어야 하는 영화들이 있다. 유명 감독의 작품이라고 무조건 선정하는 일은 없지만, 관객이 보고싶어하는 영화가 뭔지는 늘 생각한다. 다른 한편으로 1%의 관객만이 좋아하더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틀어야 하는 영화들이 있다. 그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한다. 비아시아권 신인 감독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플래시 포워드 섹션의 영화들은 도전적이고 새로운 기운의 작품들로 선정하려 하는데,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그랑프리 수상작인 오마르 엘 조하이리의 <깃털>,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개막작이었던 아서 하라리의 <오노다, 정글에서 보낸 10 000일>도 추천할만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3시간에 육박하는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굉장히 짧게 느껴졌고, 베르너 헤어조크가 떠오르기도 하는 영화였다. 월드 시네마 섹션의 <비트>는 뱅상 마엘 카르도나 감독의 첫 장편영화인데, 음악을 사랑하는 젊은 형제의 운명을 다루는 음악 영화다. 영화 음악도 좋고 어떤 한 시퀀스는 가슴을 칠만큼 좋았다. 유명한 감독의 유명한 영화는 아니지만 정말 소개하고 싶은 작품들이고, 관객들이 이 영화들을 놓치지 말았으면 좋겠다.

-유명 감독들의 작품 중 언급하고 싶은 영화는 무엇인가.

=브루노 뒤몽의 <프랑스>는 칸에서 소개됐을 때 썩 좋은 평을 받진 않았지만, 내게 이 영화는 아름다운 희비극으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레아 세이두의 연기도 빛이 나고, 마지막 장면에선 전혀 다른 종류의 영화지만 마치 <서편제>를 봤을 때의 슬픔 같은 것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폴 버호벤 감독을 무척 좋아하는데, 첫 영화 때부터 폴 버호벤의 팬이었다. 공기놀이하듯 영화를 가지고 노는 대가라고 생각한다. <베네데타>도 궁금한 마음으로 기다렸던 영화다. 영화를 보는 데 단 한번도 지루한 순간이 없었다. 역시 대단한 감독이다. <베네데타>에 걸작이란 표현을 아끼지 않았던 정성일 평론가에게 따로 한줄 평을 부탁했더니 “당신이 보기 전에 무얼 상상하건 그보다 사악한 장면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과연 폴 버호벤이다”라고 보내주었다. 이 영화를 오픈 시네마에서 틀 수 있어 기쁘다. 뿐만 아니라 미아 한센 로브의 <베르히만 아일랜드>, 베를린영화제 상영작 중 나의 원픽 영화였던 도미니크 그라프의 <파비안>도 좋았다. 베니스영화제 상영장 중엔 미켈란젤로 프라마르티노의 <일 부코>와 파올로 소렌티노의 자전적 영화 <신의 손>이 인상 깊었다.

-올해의 빅 게스트인 <아네트>의 레오스 카락스 감독의 내한은 어떻게 성사시켰나.

=칸에서 프랑스 배급사와 미팅을 하면서 올해 꼭 감독님을 부산에 모시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설득을 했다기보다 실질적인 문제들을 조율하며 내한 얘기를 진전시켰다. 마스터클래스를 자주 하는 감독이 아닌데 감사하게도 부산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시기로 했다. 제20회 부산영화제 때 레오스 카락스 감독님이 부산에 온 적 있는데, 그때 영화제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영화 상영 전 본인이 직접 테크니컬 테스트를 하신다는데, 본인의 영화에 대한 책임감, 애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거장이다. (웃음)

-그 외 초청한 게스트에는 누가 있나.

=플래시 포워드 섹션 상영작인 <엘 플라네타>의 아말라이 울만 감독도 오고, 스페인 영화 <견습공의 일주일>의 네우스 발루스 감독, 프랑스 영화 <비트>의 뱅상 마엘카르도나 감독, 작년에 선정했고 올해 특별상영 하는 <다함께 여름!>의 기욤 브락 감독도 부산을 찾을 예정이다. 유연석올가 쿠릴렌코가 주연한 프랑스 영화 <배니싱>의 드니 데르쿠르 감독도 배우들과 함께 부산에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부산에서 관객과의 대화를 가진 감독들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 영화에 대한 이해에 많이들 감격한다. 무엇보다 영화제는 축제이기 때문에, 코로나19가 빨리 종식돼 더 많은 감독과 배우들이 부산의 열정 가득한 관객들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담당 권역인 남서유럽과 아프리카에선 팬데믹의 영향 없이 꾸준히 좋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나.

=서유럽은 전통적인 영화 강대국이고, 주요 영화제에서 선정되는 유럽영화의 70%는 프랑스 영화다. 한가지 느끼는 건 부익부 빈익빈이 강해지고 있다는 거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경우 코로나 상황에서도 영화 제작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국가에서도 보조를 많이 해줘 좋은 영화들이 계속 나온다.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는 큰 영화뿐 아니라 적은 예산으로 현재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도 반갑다. <더 트스거오 다이어리>는 코로나19를 소재로 활용한 영화고, 올해 베를린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받은 <배드 럭 뱅잉>은 배우들이 마스크를 쓰고 나온다. 위드 코로나 시대에 만들어진 흥미로운 영화들이다. 아프리카의 경우 유럽과 공동제작되는 작품이 많은데, <링귀, 모녀는 용감했다>도 차드와 프랑스, 벨기에 , 독일이 공동제작한 영화다. 칸에서 <드라이브 마이 카>가 호평받은 것처럼, 유럽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좋은 영화들은 그래도 계속 만들어지는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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