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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착역'이 네명의 주인공을 담아내는 방식
이보라 2021-10-13

하나와 셋의 거리

<종착역>의 초반부는 전학생 시연(설시연)이 사진 동아리 ‘빛나리’ 부원인 세 친구 틈으로 합류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시연이 동아리실로 들어서고, 화면의 왼편에서는 눈에 처음 렌즈를 끼느라 긴장한 송희(한송희)와 렌즈를 직접 끼워주는 연우(배연우),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서서 상황을 중계하는 소정(박소정)이 있다. 렌즈가 떨어져 세 친구가 교실 바닥을 헤매자, 멀찍이 자리에 앉아 있던 시연이 그들쪽으로 다가가 휴대폰으로 빛을 더해준다. 덕분에 렌즈를 찾은 이들은 하던 일에 마저 돌입하고, 소정이 시연의 옆자리에 (그러나 약간의 거리를 두고) 앉으면서 한 프레임 내에 네 친구의 형상이 나란히 이어진다. 시연이 세 친구의 자리에 완만하게 입장하는 이 장면은 이들이 넷으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이 거리 조절이라는 일상적인 방식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예증한다.

안경을 벗고 렌즈를 끼는 행위는 사춘기 여중생들이 미용에 갖는 관심을 드러내는 익숙한 설정이기도 하지만, <종착역>에서 이는 단순히 소녀를 재현하기 위한 소재만으로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이것이 무언가를 보기 위한 행위라는 점에 주목하면 어떨까. 물론 그보다 더 도드라지는 것은 이를 옆에서 모두가 돕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이들이 서로에게 빛을 건네는 사이, 그리하여 무언가를 바라보도록 이끌 사이임을 아주 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그러니 합기도장에서 술래의 눈을 수건으로 가린 채 판수놀이를 하는 장면도 무심히 지나칠 수 없는 대목이다. 돌아가며 술래를 맡는 이 놀이에서 한 사람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눈을 뜨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이들은 각자의 거리를 계속 조정하는 운동에 가담한 셈이다.

처음부터 넷이라는 착각

많은 리뷰에서 말하고 있듯 <종착역>은 ‘네 친구가 방학 숙제를 하려고 짧은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성장한다’라는 식으로 쉽게 요약 가능하며, 그렇게 틀린 진술도 아니다. 여기서 더 찬찬히 뜯어볼 단어가 몇개 있겠지만, 지금은 ‘네 친구’라는 말에 주목하고 싶다. <종착역>의 네 친구는, 정말 그렇게 쉽게 네 친구라고 일컬을 수 있을 만큼 처음부터 온전하고 단일하며 무람없는 관계일까? 이 글의 도입에서 언급했듯 시연이 세 친구의 자리에 합류하는 장면은 자연스럽고 유려하게 그려지나, 사실 이 대목이 명확히 가리키는 것은 각자가 갖는 기존의 거리(감)를 인지하는 데 있다. 그러니까 합류를 위해서는 우선 우리 사이에 명백한 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리고 이를 조정해야만 관계가 성립되거나 발전할 수 있다는 전제가 선결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이들은 ‘시연과 세 친구’라는 관계가 무겁게 확보된 채로, 하나와 셋의 거리가 분명히 존재하는 채로 엉겁결에 여행길에 오른 셈이다. 그리고 이 여정이 이들의 어떤 부분을 조금 바꿀 것이다. <종착역>은 네명이라는 인원 안에서 하나와 셋, 둘과 둘 등으로 관계를 끊임없이 순환시키고, 숏과 숏의 연결 또는 숏 내부의 방향과 위치를 통해 인물들이 각자의 거리를 가늠하게 만들면서 네 친구라는 주어의 가능성을 슬며시 발견하는 과정을 그린다. 에드워드 양의 영화 제목을 무모하게 비틀어 말하자면 여기에서 네 친구는 사실 ‘하나 그리고 셋’에서 시작해 점차 넷으로 또는 네개의 하나로 나아가는 길에 놓여 있다.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하교하는 세 친구 중 송희와 소정이 횡단보도를 황급히 건너자 혼자 남은 연우가 장난스럽게 짜증을 내며 헤어진다. 그러면 다음 장면에서는 아직 아무와도 같은 길을 공유하지 않은 시연이 혼자 저녁의 어스름을 지나며 걷고 있다. 이후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시연과 세 친구는 이전보다 가까워지지만, 영화는 이들의 거리가 섣불리 좁혀지지 않도록 작은 틈을 마련해둔다. 넷이서 함께 계단을 내려가다 자신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그 계단을 내려가면 안된다는 걸 깨달은 시연이 다시 계단을 올라 안녕을 외치는 장면이 그 지점을 시사한다.

또는 넷이서 떡볶이를 먹으며 대화하다가도 다음 장면에서는 혼자 지하철역 벤치에 앉은 시연이 벽에 붙은 지도를 바라보고 있다. 이는 시연과 세 친구가 다른 동네에 살고 있다는 설정을 유추하게 만드는 동시에 장면과 장면으로 이어진 영화 안에서 이들을 한 프레임의 내부로 고정하여 물리적 거리를 좁히는 데는 얼마간의 시간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지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시연을 제외한 세 친구가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과자를 먹는 장면과 이후 이어지는 신의 흐름은 특히나 인상적이다. 이 장면 다음 1호선 지하철에서 하차한 시연이 역사 계단을 오르는 장면이 등장하며, 곧장 넷이서 합기도장에서 대화하는 장면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흐름은 넷이 모이기 이전에 이미 세 친구가 시연 없이 만났다는 것을 의미하며 아직 이들은 시연 없이 함께 시간을 보내도 딱히 불편할 게 없다는 사실 또한 방증한다. 셋일 때 충분히 완성형이었던 이들의 세계는 시연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맞이하면서 다시금 거리를 조정하는 행위를 이행하게 되는 것이다.

오로지 넷의 시간

그리고 네 친구는 세상의 끝을 찍기 위한 숙제를 시작하면서, 천안에 잘못 도착하고 다시 열차를 타 신창에 도착한 뒤 옛날 신창역까지 찾아가는 헛수고를 반복하면서도 틈틈이 예측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하는 모든 순간을 (셋이 아니라) 넷이 모두 오롯하게 가져가야 할 추억으로 포섭하게 된다.

여기서 별안간 송희가 사라진다. 시연, 연우, 소정이 소리를 지르며 송희를 찾는다. 몇신 지나지 않아 저보다 더 여린 존재인 고양이를 보살피고 있는 송희의 모습이 등장한다. <종착역>은 실종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머쓱할 정도인 이 잠깐의 해프닝을 통해 네 친구가 동일하게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발설한다. 사라지는 인물이 시연이 아니라는 점에서, 영화는 넷이 함께인 이 여정이 도달할 만한 아주 사소한 변화를 꾀할 뿐이다.

물론 거리의 변화가 곧장 관계의 위상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밤이 늦고 집에 연락할 수단도 없자 이들은 2 대 2의 구도가 되어 소소하게 언쟁을 벌인다. 시연과 연우는 그냥 마을회관에서 자고 내일 집에 가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송희와 소정은 그래도 얼른 집으로 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이 언쟁은 2 대 2로 형성된 이 갈등의 성격답게 자연히 공간을 둘과 둘로 분리한다. 당장 내 의견에 동의한다는 이유로 평소 저쪽에 품고 있던 서운함을 앞사람에게 은밀히 토로하던 이들의 담화는, 그러나 전체에 균열을 일으킬 만큼 유해한 사건으로 나아가진 않는다. 이는 도리어 어느새 시연이 이 넷에 소속되었기에 달성될 수 있는 균형을 상기하게 만드는 작은 일화일 뿐이다.

갈등은 짧게 마무리된다. 인상적인 건 방금 전만 해도 “너랑은 통하는 게 있다”던 연우의 말에 내심 뿌듯했을 시연이 자신만 빼고 송희의 부모님이 만나게 된 사연을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는 데서 불쑥 소외감을 느끼는 듯 보이는 대목이다. 이렇듯 영화는 시연이 세 친구에게 갖는 거리감을 여전히 완벽히 해결하지 않는 상태로 공백을 남겨둔다. 눈에 보이는 끝이란 없듯이 이들의 우정에도 더 많은 과정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듯 영화는 인물들로 하여금 여전히 미미하게나마 심적인 거리감만큼은 내장하게 둔 채로, 미결의 여행을 완성하기 위해 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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