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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F #1 [인터뷰] 강릉국제영화제 김홍준 예술감독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21-10-22

영화의 담론을 만드는 영화제가 되길

이번 강릉국제영화제의 슬로건은 ‘TURN THE PAGE!’이다. 더 이상 과거에 연연하거나 혹은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 움츠러들지 말고 삶의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기 위한 다짐이자 기원을 담았다. 팬데믹으로 인한 영화제의 변화는 물론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이미 진행 중이었던 영화 산업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말이다. 하지만 강릉국제영화제는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신생 영화제이기 때문에 보다 새로운 시도도 과감하게, 지키고 싶은 정체성은 고집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있다. 영화제의 콘텐츠를 책임지는 자리에 위촉된 김홍준 예술감독은 누구보다 영화제 초기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만드는데 적합한 인물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충무로국제영화제, 충무로뮤지컬영화제의 기반을 닦았던 그는 강릉국제영화제의 출범도 함께 하게 됐다. 김홍준 예술감독에게 프로그램 전체의 어드바이저 역할은 물론 강릉의 여러 문화 관계자들은 만나며 강릉국제영화제의 색깔을 고민한 시간에 대해 들었다.

- 강릉국제영화제가 3회를 맞았다. 지난 2년을 자평해본다면 어떤가.

= 첫 해에는 영화제를 3~4개월 앞두고 합류했기 때문에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강릉에 온 건 초당두부 먹으러 온 게 전부였을 만큼 연고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컨셉을 먼저 정한 후 그에 맞춰 영화제의 표준적인 틀을 맞췄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엔 개•폐막식과 부대행사 및 많은 전시를 강릉아트센터에서 진행했고 상영은 CGV 강릉 등 시내에서 했다. 즉, 영화제가 이원화되어 있었다. 2회는 코로나19 때문에 많은 부분을 취소하고 핵심적인 프로그램만 남겨서 3일 동안 영화제를 치렀는데, 그럼에도 그에 대한 반응이 고무적이었던 것 같다. 올 초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영화제를 열리는 10월 즈음엔 코로나19 상황이 어떨 것인가 예상하고 온라인 상영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었다. 그래도 영화제가 열리는 10월에는 적어도 과도기에 진입할 것이라 생각했다. 극장이 위축되면서 많은 영화제들이 온라인 상영을 병행한다. 강릉국제영화제는 축제로서의 영화제 성격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 들어서 온라인 상영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아예 가능성을 배제했다. 대면으로 하거나 아예 영화제를 치르지 못하거나, 어떻게 보면 배수의 진을 친 거다. 3회가 되면서 비로소 강릉에 대해 공부했던 내용을 페스티벌에 많이 반영시킬 수 있었다.

- 예술감독으로서 강릉시와 가까워지는 스킨십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 영화제가 지속 가능성을 갖기 위해서는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아직 강릉국제영화제의 지지 기반은 없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국제영화제가 생길 때 동력을 제공했던 것은 자발적으로 영화제에 참여했던 관객들의 힘이다. 그들의 참여가 담론을 형성하고 때로는 그들이 자원 활동가나 스태프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제의 지지 기반이 생기고 안정감 있게 행사를 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강릉국제영화제는 후발주자다. 영화제는 국제행사이면서 동시에 지역 축제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지역에 사시는 사람들이 영화제를 자신들의 문화적 자산으로 인정하기까지는 어느 영화제나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강릉 사람들은 축제가 왜 필요한지 너무 잘 알고 있다. 천년 동안 해온 단오제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때도 625 때도 박정희 정권 때 무속을 탄압할 때도 했다. 축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다. 강릉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가장 관심을 갖고 참여할 수 있는 사람들이 누군지 찾기 위해 강릉의 젊은 예술가들, 문화인들, 카페를 운영하는 분들 등을 만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영화제의 잠재적인 관객은 누구인지, 그분들이 원하는 건 무엇일지 굉장히 다양한 측면에서 고민했다. 동시에 영화제와 컬래버레이션을 할 수 있는 인프라나 콘텐츠를 꾸준히 찾았다.

- 후발주자로서 자리 잡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무엇이었나.

= 크게 3가지가 있다. 영화 산업의 변화, 팬데믹 그리고 강릉이라는 도시에 영화제라는 새로운 문화 인프라를 정착시키는 것. 기존 영화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거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고민이 있을 것이고 새롭게 출발하는 영화제는 후발주자로서 이미 불리한 가운데 새로운 환경에 새로운 방식으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다. 지금까지 영화 배급의 중심은 영화관이었다. 극장 수입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것이 산업의 취약점이었고 스크린 독과점 문제가 계속 제기됐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제시되지 않는 상태에서 OTT가 성장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급격하게 극장 중심의 영화 산업이 완전히 새롭게 재편되고 있다. 원래 영화제는 극장 관람 경험, 국제적인 세일즈 네트워크와 시스템을 전제로 설계되어 있다. 여기에 지역성이나 영화제 컨셉이 가미되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전제가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작년 같은 경우 칸국제영화제가 아예 영화제를 열지 않고 명단만 발표했다. 어떤 영화제는 온라인으로 상영하고 어떤 영화제는 온라인을 병행한 하이브리드로 가지만 강릉에게 맞는 건 원래 축제의 형식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극장의 의미가 축소된다고 할지라도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영화제는 더 극장에서 열려야 한다. 그래서 영화관에서 소수의 관객이라도 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전제로 계획을 짰다. 마지막으로 강릉이라는 도시가 갖고 있는 특성, 강릉 시민들의 문화적인 요구, 그들이 영화제에 갖고 있는 시선을 생각해야 했다. 올해 개•폐막식만 강릉아트센터에서 하고 모든 상영과 행사를 도심에서 진행한다. 강릉 시민들에게 영화제가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고 싶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거다.

- 영화를 상영하는 CGV 강릉,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강릉대도호부관아는 물론 다른 이벤트가 열리는 곳도 모두 가까운 곳에 있더라.

= 가장 멀리 떨어진 명주예술마당에서 구슬샘 문화창고까지 1.4km 정도라 충분히 다 걸을 수 있는 거리다. 그리고 이 안에 예쁜 골목도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들도 많다. 강릉시민들에게는 평상시 왔다 갔다 하는 거리가 영화의 거리처럼 될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하고 싶다. 이런 부분을 기획하고 연구하고 설계하는 것이 내 역할이다.

- 그런데 강릉 혹은 강원도에 관한 영화를 트는 섹션이 따로 있지는 않다.

= 그건 이미 다른 영화제들이 하고 있다. 독립영화인들의 페스티벌로 자리 잡은 정동진독립영화제라든지 기존의 독립영화 생태계가 존재한다. 그들과 일종의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형식적으로 강원도에서 찍은 영화를 튼다거나 강원도에 연고를 가진 영화인들의 영화를 모아 트는 게 강릉국제영화제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릉이라는 지역의 특성에 더 집중했다.

- 코로나19 상황에서 작품을 수급하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팬데믹 이전에는 사전에 영화 관련 정보를 입수해서 초청한다거나 새로운 영화를 찾기 위해 특정 마켓에만 직접 출장을 갔는데, 이제는 마켓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모든 마켓에 전부 가야 한다. 칸이나 베니스, 베를린에서 큰 상을 받았다거나 주목받는 거장의 대표작은 특별한 이유가 있지 않는 한 강릉국제영화제에 오는 것이 쉽지 않다. 오히려 수많은 영화제 프로그램의 경쟁 속에서 놓쳐진 영화들을 관객과 만나게 하는 것이 원래 영화제가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싶다.

- 강릉국제영화제에는 크게 ‘영화와 문학’과 ‘마스터즈 & 뉴커머즈’ 섹션이 있다. 그리고 매년 강릉포럼을 개최한다. 어떻게 자리 잡게 된 구성인가.

= 강릉국제영화제는 조그만 규모의 문학 영화제로 시작했다가 준비 과정에서 강릉시가 국제영화제로 확대하기로 결정한 것이고, 이후에 김동호 위원장과 내가 오게 됐다. 이곳에 오자마자 한 일이 영화제의 키워드를 정하는 것이었다. 강릉시민들은 이곳이 문향(文鄕)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이 있다. 그렇게 먼저 정해진 ‘영화와 문학’이라는 컨셉에서 고전의 비중을 키우자는 생각에 ‘마스터즈 & 뉴커머즈’ 라는 키워드를 덧붙였다. 엄격히 말하면 강릉국제영화제에 단순한 회고전이라는 개념은 없다. 대신 그해 충분히 소개될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덜 알려진 거장들의 작품들을 프로그래밍을 하는 한편 신인 감독들의 영화를 발굴해 동등하게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 위원장님은 포럼을 제시했다. 영화제 집행위원장들이 매년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고 친분을 다지는 ‘영화제의 영화제’를 만드는 것이다. 당장 팬데믹에 대한 해결책이 나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각국의 다양한 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디렉터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대응하고 있는지 역사적인 증언 내지는 기록은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중요한 키워드가 ‘강릉다움’이다. 가령 배롱야담을 하는 장소 중 시네필들이 많이 찾는 봉봉방앗간이란 카페가 있다.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도 그 앞에서 찍었다. 봉봉방앗간 대표는 강릉의 인디 영화에 많은 지원을 해왔던 분이다. 그 밖에 공예나 음악을 하시는 분들과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영화제가 접점을 찾으려고 한다. 다른 평론가가 했던 말을 인용하자면, 영화제가 영화에 대한 어떤 담론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했으면 좋겠다.

- 올해 강릉 포럼 주제는 “당신은 여전히 영화(관)를 믿는가?”이다. 영화제가 선택한 길을 보면 강릉국제영화제도 이에 대해 어떤 답을 한 거 아닌가.

= 도발적인 질문이다. 어쩌면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가 동시다발로 닥친 것인데, 이런 시기에 과연 영화제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강릉국제영화제는 사실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영화제에서 비본질적인 것들은 다 빼자, 가령 행사라 하더라도 이 행사를 왜 해야 하는지 확실한 확신이 없다면 다시 고민하자고 해서 행사 자체가 많지는 않다.

- 개막식 때 특별한 상영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 우연치 않게 KBS 본사가 40년 전에 강릉시를 찍은 뉴스 필름을 디지털화한 아카이브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KBS <모던코리아>의 지역 버전을 만들 수 있는 거다. 70년대 이전 자료는 남아있지 않고 80년대에는 비디오로 넘어갔는데, 1978년부터 1982년까지는 필름이 보존되어 있다. 당시 카메라 기자가 찍은 영상을 쓰기로 했다. 일종의 파운드 푸티지인 거다. 편집되지 않은 오리지널 영상을 무성영화로 편집해서 강릉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밴드들이 내일 라이브로 연주를 하기로 했다. 내가 알기로 영화제에서 이런 공연을 한 건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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