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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영화의 현재를 만나다
김성훈 2021-10-26

대만콘텐츠진흥원이 선보이는 가장 최신의 대만영화 9편

대만 로맨스영화는 한국 극장가의 오랜 스테디셀러다. <말할 수 없는 비밀>(2008),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2011), <나의 소녀시대>(2015) 등 많은 청춘영화들이 국내 관객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도 대만 청춘영화의 인기는 꺼질 줄 몰랐다. 지난 1년 동안 <남색대문> 극장판 <상견니> <해길랍> 등 여러 대만 로맨스영화가 침체된 한국 극장가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대만 영화산업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청춘영화만 있는 게 아니다. <씨네21>은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 기간 동안 한국을 찾은 대만콘텐츠진흥원(TAICCA)을 통해 대만 영화산업의 트렌드와 다양한 개성의 대만영화 신작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대만콘텐츠진흥원은 2019년 6월 설립된 대만 문화부 산하의 기관이다. 영화뿐 아니라 텔레비전, 대중음악, 출판, 패션, 예술, 문화 기술 등 대만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 산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3월 말, 대만콘텐츠진흥원은 대만 영화산업의 성장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뉴스를 발표했다. 대만의 4대 멀티플렉스가 모여 만든 법인 굿 핸즈 필름(Good Hands Film)과 함께 제작사 볼 필름을 설립해 대만 자국영화를 직접 제작, 배급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가 극장과 함께 제작사를 차리고, 그 제작사를 통해 매년 3~5편의 자국영화를 만들고 글로벌 OTT와 극장에 배급하겠다는 발표는 한국 영화산업에도 시사하는 점이 크다. 딩샤오칭 대만콘텐츠진흥원 회장은 “볼 필름은 제작 초기 단계부터 관객의 인사이트와 마케팅 트렌드를 반영할 거고, 이러한 시도는 대만 영화 및 TV 산업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직접 나선 셈이다.

장르가 다양해진다 - 다큐멘터리부터 범죄, 액션까지

이처럼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하고 있는 대만영화의 현재는 얼마 전 막을 내린 제26회 부산영화제에서 보다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올해 부산영화제에 초청받은 대만영화는 총 10편(영화제 초청작 9편과 아시아 프로젝트 마켓 선정작 1편)이다. 사실 한국 관객에게 대만영화 하면 에드워드 양, 허우샤오시엔 등 두 거장으로 상징되는 대만 뉴웨이브나 <남색대문>(감독 이치엔, 2002), <말할 수 없는 비밀>(감독 주걸륜), <상견니>(감독 황천인, 2019, 왓챠에서 공개된 버전은 21부작이고 국내 극장가에선 12부와 13부를 극장판으로 상영된 바 있다. <상견니>는 국내에서도 리메이크하기로 확정됐다.-편집자),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감독 구파도) 같은 청춘 로맨스영화가 익숙한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 부산에서 공개된 작품들을 포함한 최근 대만영화는 장르가 다큐멘터리, 스릴러, 범죄, 드라마, 액션 등으로 다양하고, 장르의 틀 안에서 젊은 감독의 개성과 에너지를 과감하게 드러내며, 대만 사회의 현실과 문제를 섬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엔 씨의 수행>

먼저 부산영화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서 상영된 영화 <옌 씨의 수행>은 중산층 가정에서 살아가는 중년 여성 옌 부인의 억눌린 감정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복수극이다. 겉으로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큰 응어리가 자리하고 있다. 어느 날 남편의 과거 내연녀가 치매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남편에게 복수할 길을 찾는다. 촬영감독이기도 한 치엔시앙 감독은 중년 여성의 무미건조한 일상과 거세된 욕망을 섬세하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청몽홍, 차이밍량 등 대만 감독과 오랫동안 작업한 베테랑 배우 천샹치는 옌 부인의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모습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머니보이스>

역시 아시아영화의 창 부문에서 선보인 영화 <머니보이스>(감독 이린보천)는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이주한 청춘의 사랑과 경제적 고민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LGBT 서사다. 애인 샤오레이와 동거하는 페이(가진동)는 성매매로 돈을 벌어 시골 마을에 사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어느 날 페이가 고객으로부터 폭력을 당하자 샤오레이가 그를 찾아가 복수를 한다. 하지만 고객의 부하들이 샤오레이를 찾아가 보복하자 페이는 샤오레이를 피해 그곳을 떠난다. 그로부터 5년 뒤 페이는 또 다른 도시로 이주해 접대부 생활을 이어간다. 경제적 문제 때문에 시골을 떠나 도시에서 살아가는 청춘의 사랑과 도시에서 겪게 되는 경제적 문제 그리고 고향을 떠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시골의 전통적 가치관이 이야기와 인물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스타 배우 가진동이 게이 청년 페이를 연기했다. <머니보이스>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부문에 초청됐다.

와이드앵글 부문 다큐멘터리 경쟁에 초청받은 <야생 토마토의 맛>(감독 라우 켁 후앗)은 대만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2·28 사건을 스크린으로 불러낸 다큐멘터리다. 1947년 장제스가 이끄는 중화민국 국민당 정부는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 패배하고, 대만으로 도주했다. 국민당 정부가 대만을 장악하기 위해 고압적인 정책을 실시하자 민심이 폭발해 가두 시위를 벌인다. 정부는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2월28일부터 5월16일까지 조직적으로 국민을 대량 학살했다. 대만 계엄령의 시발점이 된 이 사건은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까지 대만 사회에서 언급되는 것 자체가 금기였다. <야생 토마토의 맛>은 2·28 사건에 대한 가오슝 지역 사람들의 집단 기억을 끄집어낸다. 일본군의 중요한 군사 지역이던 가오슝 지역의 역사부터 2·28 사건의 피해자와 그들의 자손까지 이어지는 깊은 상흔을 어루만진다.

<크로싱 엔드>

역시 다큐멘터리 경쟁작인 <크로싱 엔드>(감독 시요룬)는 2002년 한 커플이 다리 위에서 이별을 하는 과정에서 여자가 추락해 사망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범죄 다큐멘터리다. 남자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해 구급차를 부르지만, 여자는 병원으로 가는 길에 죽는다. 목격자가 최초의 진술을 뒤집고 그들이 여자를 난관 아래로 던지는 걸 봤다고 진술하면서 남자와 그의 친구는 수감된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뒤, 시요룬 감독은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무고한 사람을 지원하는 민간 조직인 ‘대만 결백 프로젝트’와 함께 이 사건을 재구성한다. 영화는 대만 결백 프로젝트가 두 남자가 살인사건의 범인인지를 입증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억울하게 감옥에서 10여년을 보내게 된 이 사건이 두 남자와 그들의 가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공들여 다룬다. 관객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고 이야기에 집중시키는 힘이 있는 작품.

<2020년의 비>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에 초청받은 <2020년의 비>(감독 리용차오)는 리용차오 감독이 미얀마의 옥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이자 젊은 가장 아티안과 그의 가족의 사연을 7년 동안 카메라에 기록한 이야기다. 두 아들과 어머니의 생계를 책임지는 아티안의 삶은 고단하다. 수백명이 사망한 광산 붕괴 사고 때문에 늘 불안감에 시달리며 일하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미얀마의 폭우는 온 집을 물에 잠기게 한다. 게다가 코로나19 때문에 자신을 포함해 아이들이 바이러스에 감염될까봐 걱정이 많다. 아티안의 친형이기도 한 리용차오 감독은 아티안, 어머니, 조카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위험에 노출된 개인의 노동과 생활이 국가와 자본의 구조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사실을 강조한다.

동시대 관객의 관심사를 탐색하다

<다리>

이 밖에도 <다리>(감독 창요성)는 댄서 옥영(계륜미)이 사고 때문에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다가 사망한 남편의 다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다. 아내가 남편의 다리를 찾는 현재와 부부가 처음 만나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과거가 교차로 오가며 전개된다. 범죄, 스릴러, 코미디 등 여러 장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서사를 흥미진진하게 펼치는 에너지가 있다. 대만의 스타 배우 계륜미가 남편의 다리를 찾는 아내를 연기했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짱개>(감독 장지위)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는 화교 청춘을 그린 영화다.

<가타오 외전: 최후의 방랑자>

<가타오 외전: 최후의 방랑자>(감독 강서지)는 어린 시절 함께 성장했던 두 남녀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누아르영화로 넷플릭스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쓰레기 도시의 리프>(감독 치엔이)는 16살 소년 리프가 가출해 쓰레기 도시로 가서 30년 된 비닐봉지 배기를 만나 일련의 사건이 벌어지는 애니메이션이다. 리프와 쓰레기 동료들을 해방시킬 배기의 모험을 통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한 메시지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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