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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FF #6호 [인터뷰] '강원도' 박기용 감독
임수연 사진 백종헌 2021-10-27

캐주얼하게 영화 만들기

<강원도>는 <모텔 선인장><낙타(들)>을 연출하고 한국영화아카데미 원장•시네마디지털서울 집행위원장을 거쳐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는 박기용 감독이 강원도를 배경으로 찍은 신작이다.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일부 요소를 따와서 아버지를 찾아다니는 젊은 남자, 남편으로부터 도망친 여자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구성된다. 박기용 감독은 올해 초 영화진흥위원회 신임 위원으로 임명되어 영화계를 위해 공적 영역에서도 든든한 힘을 보태고 있다.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에 이어 올해 역시 강릉을 찾아 도시를 향한 애정을 보여준 그를 만났다.

- 강원도 일대에서 촬영한 이번 영화는 제목부터 <강원도>다. 이 작품을 만들게 된 배경은.

= 강원도립극단에서 영화 제작을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는 의뢰를 받았다. 가능하면 그동안 극단에서 공연했던 연극을 바탕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대표 작품이 <메밀꽃 필 무렵>이었다. 개인적으로 5일장에 관심이 많아 이를 현대적으로 바꾸어 장돌뱅이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5일장이 폐쇄되면서 그 계획은 어렵게 됐다. 촬영 헌팅을 다니며 흥미를 느꼈던 공간을 중심으로 방향을 틀었다. 처음부터 제목이 <강원도>는 아니었다. <깊은 겨울> <강의 시작> 같은 제목도 있었는데 최종적으로는 <강원도>로 결정됐다.

- 코로나19가 직접 언급되고 등장인물들이 마스크를 끼고 등장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영화를 찍는다고 전부 이런 선택을 하진 않는데 <강원도>에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끌어온 이유가 있나.

= 우리가 촬영하기로 한 5일장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면서 시장이 폐쇄됐다. 강원도가 꽤나 긴장하면서 촬영을 최대한 늦춰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래서 방역 수칙을 지키는 게 우리에겐 되게 민감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출연자들만 마스크를 벗고 연기한다는 게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마스크를 쓰는 게 당연했다.

- 설정상 철원에서 속초로, 속초에서 철원으로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강원도 곳곳의 모습이 영화에 등장한다. 영화를 다 찍어 놓고 보니 감독님이 영화에 담고 싶었던 강원도의 모습은 무엇이었던 것 같나.

= 평창 동계 패럴림픽 기록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 그때 강원도 정선•강릉 일대를 상당히 많이 돌아다녔다. 그래서 그쪽은 웬만큼 알고 있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봉평이라 원래 그쪽도 생각했는데, 5일장 설정을 포기하면서 내가 잘 아는 남부보다는 북부를 가보자고 생각을 전환했다. 강원도 전역을 다 커버하기엔 일정이나 제작방식에 있어 무리하겠다는 판단이 들어 선택과 집중을 했다. 인제, 원통, 양구. 화천 같은 곳을 돌아다녔다. 여자가 마지막에 도착하는 고향집을 철원 민통선 안에 있는 양지리에서 촬영하려고 준비를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군부대에서 허락을 내주지 않았다. 거기서 마지막 촬영을 하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검문소를 지나야 하고 마을 옆에 철책이 보여서 우리가 분단국가라는 점이 굉장히 강하게 느껴지는 동네다. 철새 도래지이기도 하다. 영화에 나오는 아바이 마을(한국전쟁 때 생긴 피난민들이 모여 사는 마을)과 연결됐으면 더 좋았을 텐데.

- <메밀꽃 필 무렵>의 요소를 가져왔지만 소설과 달리 독립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 인물들이 만나지는 않는다.

= 그냥 아버지를 찾는다는 설정과 5일장 정도만 가져왔다. 결국 5일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진 못하게 됐지만. 그리고 극단 전속 배우가 총 6명인데 6명의 이야기를 한 이야기에 몰아넣기는 좀 어려운 면이 있었다. 예전부터 아무 관련 없는 병렬적인 이야기 구정을 해보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2개의 이야기로 나누게 됐다.

- 아버지를 찾는 젊은 남자 이야기는 2:1, 도망친 여자 이야기는 1:1 화면비다.

= 디지털로 바뀌면서 화면비를 바꾸는 게 굉장히 쉬워졌다. 필름 시절에는 처음부터 촬영을 그렇게 하든가, 따로 찍고 나중에 섞는 것도 기술적으로 난이도가 높고 복잡했는데 지금은 아주 쉽게 할 수 있다. 원래 화면비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그동안 여러 시도를 해왔다. 하지만 한 영화에 두 가지의 비율을 사용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버지를 찾는 이야기는 2:1이 적절하다고 판단했고, 도망친 여자 이야기는 1:1 화면비로 가되 광각렌즈로 촬영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후자는 대사 없이 거의 무성영화처럼 진행되기 때문에 폴라로이드 사진 비율처럼 촬영하는 법에 대해 논의했다.

- 제1회 강릉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에도 계획에 없던 임신이나 아버지의 부재와 같은 테마가 등장하는데.

= 그건 우연히 겹친 거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는 호주에 있는 어느 대학원 워크숍에서 만든 영화다.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와 <강원도>의 공통점이 있다면 캐주얼 시네마 방식으로 만들었다는 것 정도다.

- 팬데믹 때문에 영화가 포기한 부분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변수가 있기에 만들어진 부분들이 있을 테다.

= 방금 언급했던 ‘캐주얼 시네마’는 원래 없던 용어인데 단국 글로벌영상콘텐츠 연구소에서 만든 거다. 이번에 강릉국제영화제에서 하는 세미나를 준비하며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모텔 선인장>부터 그동안 내가 만들었던 영화들이 전부 캐주얼 시네마였다는 걸 깨달았다. 캐주얼 시네마는 느슨한 계획을 세워 두고 진행을 하다 우연히 무언가를 얻는 거다. 팬데믹도 촬영지 섭외도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그런 것도 다 수용하고, 또 역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촬영하며 새롭게 발견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아까 ‘아쉽다’고 표현한 것은 적절치 않다. 그때그때 그 상황에 맞게 영화를 만드는 게 맞다.

- 그럼 시나리오는 어느 정도 나와 있었나.

= <강원도>는 시나리오가 없었다. 출연 배우들과 얘기를 나누며 캐릭터를 구축했고 그걸 바탕으로 아주 간단한 아웃라인 정도만 만들었다. 대사도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만들었다.

- 출연 배우들이 강원도 지역 기반의 극단 배우들이다.

= 강원도립극단에 있는 배우 6명 그리고 그들을 통해 속초, 춘천의 극단 배우들을 또 캐스팅했다. 그게 강원도에 관한 영화의 취지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선택의 폭이 좁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그 역시도 캐주얼 시네마라는 개념에서 수용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영화를 찍는 공간, 말투, 정서에 대한 이해도가 훨씬 높아서 그런 것도 도움이 됐다.

- 한국영화아카데미나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서 학생들을 지도했고, 시네마디지털서울에서 새로운 영화를 발굴하는데 힘썼다. 이러한 경험이 지금 영화를 만드는 데 어떤 영향을 주고 있나.

= 그건 다 계획에 없던 일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어쨌든 내가 누굴 가르친다기보다는 그들에게 자극을 받고 배운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것을 말하거나,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데 그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할 때 항상 수용하려고 한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건 아니라고 본다. 내가 가르칠 능력이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경험이 좀더 있으니 코칭을 한다는 정도만 생각하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다. 그게 영화 작업에 상당히 중요한 요소가 된다.

- 그럼 학생들의 영화를 코치할 때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나.

= 가장 중요한 건 영화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다. 끊임없이 새로운 고정관념이 생기니까 항상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길을 찾아야 한다. 나 자신에게도 항상 하는 이야기다. 똑같다.

- <강원도>의 형식적인 실험이 집행위원장으로 있었던 시네마디지털서울의 방향과도 맞닿는 거 같다.

= 당연히 연계되어 있다. 사실 시네마디지털서울 집행위원장도 어쩌다 하게 된 거였는데 그런 성격의 영화제가 아니었으면 나도 안 했을 거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커리큘럼으로 수업하는 일반적인 영화학교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거다.

- 올해 초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신임 위원으로 임명됐다. 코로나 시국에 영화계가 많이 어렵다. 영진위가 당면한 과제들이 중요하다.

= 내가 담당하는 독립예술영화인정소위에 국한해서 활동하고 있다. 독립예술영화 정책을 관정하는 건 아니라 함부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지만, 상식적인 선에서 보자면 팬데믹뿐만 아니라 생태계 자체가 급변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야 한다. 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인지 영진위에서 선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 말씀하신 것처럼 OTT의 성장으로 독립예술영화계도 변화의 급 물살을 타고 있다. 단편영화를 유튜브나 왓챠 등 OTT를 통해 보는 경우도 많아졌고, 넷플릭스에서 독립영화를 적극적으로 수급하고 있다.

= ‘캐주얼 시네마’에서 두 가지를 생각한다. 캐주얼하게 영화 만들기 그리고 캐주얼하게 영화 보기. 팬데믹을 거치면서 영화를 반드시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건 아니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지금까지 영화는 영화관에서 본다는 것을 전제로 만들어졌지만 그에 따른 여러 가지 한계가 있었다. 만약 영화가 극장 상영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영화 만들기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 본인의 영화를 다양한 플랫폼에서 공개할 계획이 있나.

= 그동안 만든 장편영화가 10편이 넘는다. 내가 저작권을 가지지 못한 영화를 제외하면 보고 싶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준비가 되는 대로 유튜브 같은 곳에서 공개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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