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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심사위원장, <항구의 니쿠코>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
송경원 사진 최성열 2021-11-04

누구에게나 머물고 싶은 장소가 있다

물, 바다, 생명 그리고 우주. 극장판 <도라에몽> 시리즈로 국내 관객에게도 친숙한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은 2019년 <해수의 아이>를 통해 그간 축적해온 구상과 비전을 아름답게 실현한 바 있다.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의 신작 <항구의 니쿠코>는 올해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이하 BIAF)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어 첫선을 보였다. <항구의 니쿠코>는 항구의 배를 거처로 삼는 두 모녀 니쿠코와 키쿠코가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랑스러운 모습을 담았다. 개막작뿐 아니라 올해 BIAF의 포스터와 심사위원장까지 맡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와타나베 아유무 감독을 만났다.

- BIAF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전작 <해수의 아이>가 지난해 BIAF 장편부문 대상을 받았다. 올해는 신작 <항구의 니쿠코>가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다. 거기에 심사위원장까지 맡았는데.

= 지난해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방문하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BIAF는 쉽게 접하기 힘든 애니메이션들을 발굴하고 소개하는 보기 드문 영화제다.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고 할까. 작품의 규모, 화제성, 흥행 성적과 무관하게 작품 자체의 가치를 소중하게 대해주는 태도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이 영화제에서 수상해 영광이었고 제대로 하고 있다는 응원을 받는 기분이었다. 기회가 되면 방문해서 어떻게든 보답하고 싶었는데 마침 심사위원장을 요청해주셔서 흔쾌히 수락했다.

- 올해 포스터도 제작했다. ‘여름의 눈동자’라는 제목인데 소녀와 우주를 서로 다른 프레임에 배치한 기하학적인 디자인이 눈에 띈다.

= <항구의 니쿠코>를 제작하면서 동시에 만들었다. 좀처럼 형태를 잡기 어려울 때 부천에서 상을 받은 게 왜 특히 의미 있고 기뻤는지를 되돌아보았다. 아마도 동료들에게 인정받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영화제에 오면 애니메이션이라는 공통의 창문을 통해서 같은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 <우주형제#0>(2015), <해수의 아이>(2019), <항구의 니쿠코>(2021)까지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를 고른다면 ‘물’을 꼽을 수 있다.

= 이번에 <항구의 니쿠코>를 제작할 때 스탭들이 ‘또 바다야?’라고 놀리기도 했다. (웃음) 모든 사물에 생명과 각각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작품마다 스타일이 다를 수는 있지만 물의 유기적인 질감에 항상 끌린다. 물의 점성이랄까, 부드러운 곡선의 움직임에 매혹되곤 한다. 물 자체보다는 물이 어떤 대상에 휘감겨 얽혀드는 느낌이 중요하다. 물을 직접 그리지 않더라도 거기에 ‘물이 있겠구나’ 하고 느낄 수 있도록 구상한다.

- 또 다른 키워드는 ‘우주’다. 당신이 그리는 물은 생명과 우주로 연결된다.

= 업계에 들어온 뒤 <도라에몽>의 작화감독을 오랫동안 맡아왔고 2006년 <도라에몽>으로 장편 감독에 데뷔했다. 우연이지만 도라에몽과 생일도 같다. (웃음) 돌이켜보면 원작 만화가 후지코 F. 후지오 선생의 영향을 받아왔던 것 같다. 온갖 상상력을 발휘한 <도라에몽>은 포괄적으로 보면 SF지만 후지코 선생은 이를 ‘주변에 있는 살짝 신기한 일’이라고 표현한다. 어린 시절에 공룡을 무척 좋아했다. 후지코 선생이 만화에 많이 그리기도 했고. 로망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들이 왜 멸종했는지를 생각하다보니 생명의 기원과 역사로 시야가 점차 넓어졌다. 어떤 작품을 만난다고 해도 바탕에 생명과 우주를 떠올리게 된다. 개인적인 테마라고 해도 좋겠다.

- 니시 가나코 작가의 베스트셀러 <항구의 니쿠코>의 애니메이션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 일본의 유명 코미디언 아카시야 산마가 프로듀싱했다. 그는 도쿄와 오사카를 오가면서 신칸센에서 항상 책을 읽는데 어느 날 <항구의 니쿠코>를 발견하고 꼭 영상화하고 싶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실사영화로 만들려고 했지만 문제가 있었다. 니쿠코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때 산마씨가 할 사람이 없으면 그리면 되는 거 아니냐고 제안해서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됐다.

- 신의 한수다. 애니메이션이었기 때문에 표현이 훨씬 풍성해졌다고 본다.

= 맞다. 덕분에 원작의 정서를 담아낼 수 있는 자유도가 극적으로 늘어났다. 이 작품의 가장 판타지적인 지점은 다름 아닌 ‘니쿠코’다. 니쿠코는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문자 그대로 ‘지나치게 좋은’ 사람이다. 인간의 악의에 상처받지 않고 한없이 품어준다. 존재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존재라고 할까. 니쿠코의 캐릭터 디자인을 보면 현실 속 사람을 세밀하게 그리는 게 아니라 마치 캐리커처처럼 특징적인 요소를 과장되게 표현했다. 바다나 항구에 인격이 있다면 딱 이렇게 생겼을 것이다. 둥글고 푸근한 외형을 통해 보자마자 직관적으로 인간끼리의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길 바랐다. 반면 딸인 키쿠코는 니쿠코와 반대로 사실적인 미소녀로 접근했다. 소설에 몇 가지 묘사가 있긴 했지만 그대로 옮기면 전형적인 인물처럼 보일 것 같았다. 다부지고 성숙한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선머슴 같은 쇼트커트로 디자인했다.

- 또 하나의 주인공이 있다면 항구가 아닐까 싶다. <해수의 아이>의 세밀한 작화에 놀랐는데, 이번에도 공간 묘사가 상당하다.

= 토대로 삼은 장소가 있다. 이와테현의 오나가와항이다. 소설 후기에도 나오는데 니시 가나코 작가가 오나가와항의 가게에 가서 영감을 받고 이야기를 썼다고 한다. 원래 이 작품은 동일본대지진 전에 연재소설로 쓰던 건데 집필 도중에 대지진이 일어나 항구가 초토화됐다. 이후 니시 가나코 작가는 집필을 계속 이어갈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곳에 존재했던 풍경과 마음들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완성시켰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기본적인 모델은 오나가와항의 옛 모습을 토대로 했지만 일부러 구체화하진 않았다. 누군가에겐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 될 수 있으니. 대신 고향과 항구에 대한 보편적인 이미지, 마음속 원풍경을 재현하고자 했다. 상상을 통해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되살림으로써 응원을 보내고 싶었다.

- 그간의 작품들을 보면 이야기의 결과보다는 일어나는 과정을 항상 소중하게 다룬다. 이번에는 어떤 느낌들을 공유하길 바랐나.

= 감사하다. 누구에게나 머물고 싶은 장소가 있다. 당신이 왜 거기에 머물고 싶어 하는지를 한번 되돌아보면 좋겠다. 평소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재발견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니쿠코의 말버릇이 하나 있다. “평범한 게 제일 좋아.” 오늘 하루를 큰일 없이 보낼 수 있음에 매일 감사한다. 문화마다 비슷한 말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케 세라 세라’ 같은. 관객이 극장에서 소소한 일상을 마주한 뒤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기쁨을 맛보고 가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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