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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역사라는 공감대 - <성덕> 오세연 감독 인터뷰
김소미 사진 오계옥 2021-11-08

오세연 감독

“어느 날 오빠가 범죄자가 되었다. 나는 실패한 덕후가 되었다”라는 내레이션이 고백하듯, 오세연 감독은 TV에 출연해 스타에게 러브레터를 낭독한 적도 있는 이른바 성공한 덕후, 성덕이다. 그가 만든 2021년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다큐멘터리 경쟁부문 초청작 <성덕>은 가수 정준영의 성범죄 이력이 드러나자 오랜 팬 생활을 접은 오세연 감독 자신의 이야기로부터 출발한다. 자칭 ‘관종’, 덕후의 DNA를 타고난 그는 정준영으로부터 돌아서는 과정에서 자신을 성장시킨 과거의 긴 시간들이 통째로 ‘흑역사’가 되어버리는 비극을 마주했다.

<성덕>에서 오세연 감독은 자신의 혼란을 주변 친구들의 얼굴, 엄마의 얼굴에서도 찾아낸다. 누구에게나 “너무나 많이 사랑한 죄”는 있기 마련. 그렇게 <성덕>의 카메라는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박사모)까지 찾아가기에 이른다. 불편한 존재들을 응시하고 복잡한 내면을 끌어안은 결과, 범죄 앞에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연대하면서 여전히 각자의 새 덕질을 이어가는 여성들의 오롯한 역사가 완성되었다.

-사랑했던 스타가 사회면을 장식하는 범죄자가 되었을 때 팬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나뉜다. 분노, 죄책감, 허무, 부정, 회피 등등. 처음 영화를 구상할 때 감독은 어떤 상태였나.

=우리의 흑역사는 친구들 사이의 우스갯거리 정도지 영화의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런데 과거에 열심히 활동하던 팬카페에 탈퇴하려고 들어갔다가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남아서 여전히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 분노, 그리고 호기심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들에게 찾아가서 직접 물어보고 싶었다. 만약 나 혼자만의 프로젝트였다면 동력이 부족할 수도 있었는데, 기획안이 생각보다 빨리 제작지원작(2019 DMZ 인더스트리 기획개발지원사업)으로 선정되어서 어떻게든 추진할 수밖에 없게 됐다.

-감독 자신, 그리고 주변 친구와 가족의 목소리를 듣기까지 다큐멘터리의 기획 방향성에도 많은 재고의 과정이 있었을 듯하다.

=처음 영화를 만들 땐 팬덤 현상과 우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박사모와도 연결시켰고. 그런데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점차 우리 이야기가 훨씬 더 중요하고 내가 지금 잘할 수 있는 무언가라는 확신이 생겼다. 누군가의 팬이었던 적이 있으나 그로 인해 크게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가닿았으면 했다.

-매우 자기 고백적인 서사이고, 범죄자를 여전히 지지하는 사람들까지 비춘다는 점에서 일면 논쟁적이기도 하다. 혼자 촬영하는 과정에서 두려운 순간은 없었나.

=이렇게 막말해도 괜찮을까 싶지만 ‘그냥 남자 좋다고 쫓아다니다가 이렇게 된 주제’에 그걸로 영화까지 만드나, 내 안에서 자괴하는 목소리도 분명 있다. 여전히 팬카페에 남아 있는 팬들은 그 사람을 응원한다는 말로 가해 사실을 방조하는 2차 가해자들일 뿐이라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도 들었다.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왜곡된 선택과 모순을 더 자세히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배신당한 성덕의 서사이기 이전에 문화 시장의 소비 주체인 1020 팬층이 얼마나 손쉽게 타자화되고 여성 혐오적으로 간과되고 있는지도 드러내는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의 피칭을 준비할 때 어떤 친구가 내게 그러더라. “왜 죄다 네 또래 여자들이야?” 솔직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나와 가까운 친구들을 만난 것도 맞지만, 이 거대한 팬덤 현상에서 그 주체가 대부분 내 또래 여성인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팩트다. 빠순이는 빠순이를 빠순이라 할 수 있지만 다른 이가 우리를 비하하는 의미로 빠순이라고 하면 굉장히 기분 나쁘다. (웃음) 특정 세대, 성별, 나이대를 대상화하기 때문에 불쾌감이 배가되는 게 아닐까 싶다. 내 안에 상존하던 불편한 감각이 을 만들면서 본격화됐다. 남성 연예인을 좋아하는 여성 중심의 팬덤이 사회가 단순무식하게 정의하듯 ‘오빠만 쫓아다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준영의 불법촬영 혐의를 최초 보도한 기자를 찾아가 직접 사과하는 장면, 박사모 회원들을 만나는 장면 등이 파격적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언제인가.

=은빈이라는 친구를 인터뷰했을 때다. 결국 영화에는 넣지 못했지만 “그 사람이 죗값을 다 치르고 나서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했다. 큰 논란이 될 수 있는 발언이었기 때문에 뺐다. 하지만 그 말을 직접 들었을 때 어딘가 한대 맞은 느낌이 들더라. 감히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그러나 한때 열렬한 팬이었던 사람이 마음속으로 분명 가질 수도 있는 모순적인 감정이란 바로 그런 게 아닐까.

-피해자의 고통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상처받은 나’의 자리를 돌아보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영화를 만들 때 고려한 지점이 있나.

=정준영을 소재로 영화를 만드는 것 자체가 피해자 분들께 상처가 될 만한 일이라는 생각에 많이 고민했다. 최초의 기획 방향을 설정할 때, 추락하는 스타와 그들의 여전한 지지자를 부정적으로 조명하면서 우상화에 대해 말하려 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한때 성덕이었으나 이제는 피해자들의 편에 서기로 한 우리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어쩌면 연대하고 지지하는 더 솔직한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준영을 미워함과 동시에 과거에 그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평생 피해자들에 대한 미안함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한때 그에게 돈과 권력, 인기를 쥐어준 것이니까.

-영화는 죄와 벌은 가해자의 것이지 한때 팬이었던 사람들이 수치심을 느낄 일은 아니라고 위로하기도 한다. 물론 그럼에도 여전히 그런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려운 것이 성덕들의 보편적인 마음일 것 같다.

=맞다. 나는 모두가 행복하게 덕질했으면 싶고 불필요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희한하게도 마치 빠져나올 수 없는 굴레처럼 피해자 분들에게 자꾸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어진다.

-영화의 최종 결과물이 탄생하기까지 꽤 많은 장면을 삭제하는 과정도 있었으리라 추측되는데. 보여줄 것과 잘라낼 것을 정하는 편집의 기준이 있었다면.

=어떨 때는 ‘나쁜 놈 죽어라’ 하다가 어떨 때는 ‘그래도 옛날엔 이런 모습도 있었지’ 하는 식으로 동요하는 마음속의 혼란이 느껴졌으면 했다. 그리고 이 영화에 출연하는 누구도 울지 않았으면 했다. 사건을 접하고 또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많이 울고 홀로 찌질하게 고민하는 순간도 많았지만 언제나 내 결론은 ‘그 인간 때문에 왜 우리가 울어야 하지?’였다. 설마 우는 순간이 있더라도 이 영화에서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기차 안의 이동 장면들도 영화적 리듬을 만드는 요소다.

=이 영화가 기행문이라고 생각하고 만들었다.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마음이 완전히 다르기도 했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길이 하나씩 내 고민의 정류장을 건너가는 느낌이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출신인데 학교를 휴학하고 극영화가 아닌 다큐멘터리를 홀로 만든 것도 독특하다.

=10대 때 영화의전당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영화에 관심을 키웠다. 워크숍뿐 아니라 비평교실 수업을 들었고 부산영화제 시민평론단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에 합격했고 을 만들기 위해 1년 반 정도 휴학했다. 영화 만들려고 영화과 휴학한 사람이다. (웃음) 극영화 중심의 커리큘럼 속에서 학교를 병행하며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미투 시대 이후 많은 여성들이 굳이 성덕까진 아니더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예술가와 작품을 버리는 과정을 거쳤다. 이성적인 사유와 믿음의 다른 한편에는 어쩔 수 없이 상처받는 마음도 존재했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그 과정을 통과한 한 사람으로서 무엇을 얻었나.

=사실 내가 이 문제를 잘 극복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처음엔 분노가 동력이었지만, 이후 몇달 정도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더라. 빨리 세상에 영화를 내놓고 싶다는 마음으로 달리다가 어느 날 하루는 미친 사람처럼 하루 종일 눈물만 나기도 했다. 내게 결국 남은 것은 불신이다. 이 세상이 보여주는 모든 것, 특히 미디어에 대해서 불신할 수밖에 없어졌다. 하지만 그렇기에 강해졌다고도 말할 수 있다. 앞으로 덕질도 계속할 것이다.

-요즘은 무엇의 성덕으로 살고 있나.

=17살에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오민욱 감독의 (2015)을 보고 영화가 이렇게 멋질 수 있구나 처음 깨달았다. 이 다가오는 11월에 부산독립영화제에 간다. 이제는 영화제의 성덕이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