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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대표하는 창작 뮤지컬을 꿈꾼다
배동미 사진 최성열 2021-12-09

<세종, 1446> 제작한 김진오 여주세종문화재단 이사장, 이종금 문화공연팀 팀장

이종금 여주세종문화재단 문화공연팀 팀장과 김진오 이사장(왼쪽부터).

창작자의 상상력과 기관의 의지가 더해질 때 좋은 콘텐츠가 빚어지곤 한다.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극적으로 그린 창작 뮤지컬 <세종, 1446>(연출 김은영, 극본 김선미, 작곡 임세영·김은영)은 민과 관의 협력으로 탄생했다. 2018년 국립중앙박물관 내 극장 ‘용’에서 초연된 <세종, 1446>은 현재 전국 순회공연에서 전석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예술계가 활력을 잃었을 때조차 <세종, 1446>은 비대면으로 관객을 만났다. 지난해와 올해 한글날 네이버 TV로 생중계된 무대는 전세계 17만명이 시청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세종대왕릉을 품은 여주시는 세종 즉위 600주년을 기념해 뮤지컬 제작을 공모하였고, 그 과정에서 인물 중심 뮤지컬을 다수 제작한 HJ컬쳐와 협업해 작품을 완성시켰다. <세종, 1446> 제작과 공연의 전반을 책임지고 있는 여주세종문화재단의 김진오 이사장과 이종금 문화공연팀 팀장을 만나 노하우에 대해 물었다.

세종대왕 이야기를 뮤지컬로 만든 계기는 무엇인가.

김진오 여주시와 세종대왕은 뗄 수 없는 관계다. 역사적으로 여주시는 세종대왕의 묘소가 이장되면서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경기도 광주에 있던 세종대왕과 소헌왕후의 영릉이 여주로 이장되자 원주에 속했던 지역이 여주목으로 승격되었다. 여주 신륵사가 세종대왕의 명복을 비는 원찰로 지정되고 중건되기도 했다.

이종금 세종대왕, 도자기, 쌀, 이 세 가지가 여주시의 상징이다. 그중에서도 세종대왕은 문화콘텐츠로 개발할 수 있는 최적의 소재였다. 2017년 여주시는 공모를 통해 세종대왕을 소재로 한 뮤지컬 제작에 돌입했다. 실력 있는 뮤지컬 제작사들이 입찰에 뛰어들었고 <빈센트 반 고흐> <살리에르: 파리의 속삭임> <파리넬리> <라흐마니노프> <파가니니> 등 인물 중심 뮤지컬을 제작한 HJ컬쳐가 기획한 <세종, 1446>이 최종 선정됐다. 2017년 말 여주세종문화재단이 출범하면서 시에서 담당하던 뮤지컬 제작 업무가 이곳으로 이관되었다. 재단에서 <세종, 1446> 공연을 올린 지는 올해로 4년이 됐다.

김진오 고무적인 점은 <세종, 1446>이 매년 흑자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화콘텐츠가 완성도를 갖추지 못해 관객을 불러 모으는 데 실패한다면 관에서도 계속 공연을 올릴 동력이 없다. 하지만 <세종, 1446>은 하나의 특산물과 다름없을 정도로 성공적인 결과를 내놓고 있다.

이종금 <세종, 1446>은 한편의 뮤지컬 그 이상이며 여주시와 HJ컬처, 민과 관이 함께 만들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자체에서 뮤지컬을 제작하려는 시도는 이전에도 많이 있었고 여전히 여러 지자체에서 진행 중이지만 <세종, 1446>처럼 장기로 이어지는 사례는 드물다. 민관 협력의 좋은 사례로 손꼽히며 다른 지역에서 관심을 갖고 노하우를 물어오기도 한다.

시의 예산이 투입되기 때문에 선거 결과에 따라 문화 정책의 기조가 바뀔 가능성은 없나.

김진오 <세종, 1446>은 앞으로 여주시에 뮤지컬 한편 이상의 가치를 불러올 잠재력을 갖고 있다. 우리가 뉴욕과 런던에 여행을 가면 뮤지컬 한편은 반드시 보잖나. 하지만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 입장에서는 볼만한 뮤지컬이 마땅히 없는 게 현실이다. <라이온 킹> <오페라의 유령> 등 해외 작품을 우리말로 번역한 작품이 그들에게 매력적일 리 없다. <세종, 1446>은 외국인이 충분히 즐길 만한 콘텐츠고, 정치적 진영 논리에서도 자유롭다. <세종, 1446>이 향후 한국을 찾는 외국인 누구나 찾아 관람하는 작품이 될 때까지 계속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외국인들이 여주시에 와서 뮤지컬을 관람하고 영릉도 찾게 되면 그만큼 지역 관광도 늘어날 것이다.

<세종, 1446> 무대. 배우 정상윤이 세종을 연기하고 배우 남경주가 태종으로 분한다.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나 <영웅>은 일본을 비롯한 해외에 진출하기에 쉽지 않지만, <세종, 1446>은 해외 공연이 가능한 소재다.

김진오 맞다. 실제로 2018년 ‘도쿄 공연관광 페스티벌’ 공연 당시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지난해 겨울에는 LA의 미주한인회 회장에게 LA에서 공연해달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아쉽게도 LA 무대를 꾸리진 못했다. 최근 신한류라고 불릴 만큼 한국 콘텐츠가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잖나. 그만큼 한글과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늘었고, 우리말을 배우려는 외국인도 늘고 있다. 이 관심이 <세종, 1446>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관에서 지원하되 개입하지 않아야 문화콘텐츠의 창의성이 제대로 발휘될 것이다.

김진오 작품에 대해선 ‘노터치’다. 여러 사람들이 감상과 의견을 전하면 제작진에 전달할 뿐 절대로 간섭하지 않는다. 이런 불간섭은 제도가 뒷받침돼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017년에 여주세종문화재단이 설립되자 이항진 여주시장이 정치권력과 문화권력을 분리했고, 관료들이 실질적으로 개입할 가능성 자체를 차단했다. 여주시는 지원과 감사 기능을 맡을 뿐 콘텐츠는 창작자의 자율에 맡긴다.

이종금 김은영 연출·작곡가, 김준범 조명디자이너, 김주한 음향디자이너, 채현원 안무가, 그리고 우리나라 뮤지컬을 대표하는 배우 남경주 등 뮤지컬계에서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세종, 1446>을 만들었다. 이미 좋은 작품으로 검증받은 인물들이 <세종, 1446>을 위해 그 어느 작품보다도 진지하게 임했고 자식처럼 공들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제작쪽으로는 개입할 이유가 없었다.

600년 전인 세종 시대에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든 뮤지컬이 아직도 울림을 주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김진오 코로나19 팬데믹이란 전대미문의 상황 속에서 여러 갈등이 있지만 국민 대다수가 다 함께 힘을 모아 위기를 이겨내자는 공동의 목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단일민족이기 때문에 단결이 잘된다기보다 한국어와 한글로 사고하기 때문에 동류의식을 갖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한국인은 인종이나 이념을 바탕으로 뭉친다기보다 언어와 사고체계 차원에서 하나의 구심체로 묶이는 것 같다. 참 묘한 일이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까지 조선은 소수의 양반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던 사회였다. 20% 정도인 양반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80%의 민중이 고통받았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조정 관료들이 격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훈민정음이 반포되면 그들의 단단한 토대를 무너뜨리고 민중의 사고가 폭넓게 확장되기 때문이다. 이런 기득권 세력을 물리치고 훈민정음을 반포한 세종대왕은 대단히 현명하고 어진 임금이었다. 그가 있었기에 지금처럼 우리 문화가 꽃필 수 있었다.

앞으로 <세종, 1446>의 여정은 어떻게 펼쳐질 예정인가.

이종금 2018년에 <세종, 1446> 업무를 맡았을 때 이렇게까지 장기간 이 작품을 올릴 수 있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다. 많은 관객에게 사랑을 받을 거라 예측할 수 없었고 지금처럼 전국을 순회하며 공연할지도 몰랐다. 일본 무대에 올릴 거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다. 제작진의 열의, 배우들의 열정, 매년 다시 만나도 매 공연,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쳐주는 관객의 성원을 생각하며 재단에서도 열심히 뒷받침했더니 결과가 뒤따라왔다. 이 기세로 LA와 런던에서도 <세종, 1446>의 무대를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앞날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