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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완벽하지 않은 채로 써나가기
윤덕원(가수) 2021-12-16

일러스트레이션 EEWHA.

최근 원고를 작성할 때 클라우드로 연동되는 문서 작성 앱을 사용한다. 스마트폰에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메모장 앱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지만 지원하는 기기가 다른 경우가 있기 때문에 사용하는 목적에 따라 몇 가지를 함께 쓴다. 장점이 많다. 예전에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으로 글을 쓸 때는 원고용 컴퓨터를 반드시 사용해야 하거나 파일을 저장해 다녀야 했는데 이제는 어떤 환경에서도 쓰던 글을 이어서 쓸 수 있게 되었다.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쓰던 내용을 작업실 컴퓨터에서도 이어 쓸 수 있다. 갑자기 생각나는 단어들을 스마트폰 메모장에 기록해두거나 녹음을 했다면 나중에 노트북을 열어 확인할 수 있다. 갑자기 떠오른 애매한 것들이 그 모양 그대로 저장되어 있어서 생각을 계속 이어 갈 수 있다. 작은 USB에 이런저런 파일을 들고 다니던 시절을 생각하면 저장장치를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고장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그렇게 편리한 도구들이 글쓰기를 더 쉽게 해주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닌 것 같다. 다양한 기능의 프로그램과 가볍고 편리한 기기들이 늘어났지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사용하다 보면 주의를 빼앗기기도 한다. SNS 앱을 만지작거리거나 영상, 게임 등등 할 것들은 얼마나 많은지. 다양한 기능과 편리함을 담은 것이 꼭 유용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특히 신시사이저나 드럼머신은 사실상 컴퓨터로 거의 대부분의 작업을 대체할 수 있음에도 많은 뮤지션들의 작업도구로 여전히 사랑받는다(나 역시 이번에 한대를 주문했고). 기타나 베이스 같은 악기에 사용하는 이펙터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이펙트를 바꾸어가며 사용할 수 있는 디지털 이펙터가 그 편리함을 무기로 점점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예전에는 기술적으로 아날로그 이펙터를 재현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쉽게 말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도달하다 보니 더 많은 제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한 가지 기능만 하는 이펙터 페달들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것은 그런 단순함이 주는 장점이 여전하다는 것이겠지(나 역시 이번에 네대를 한번에 주문했다).

사실 예전에는 새롭게 등장하는 디지털 기기와 기술에 지금보다 관심이 더 많았다. 초등학생 때부터 필기가 너무 하기 싫어(글씨를 너무 못 썼다) ‘언젠가는 타자를 쳐서 필기를 하고 싶다’고 일기에 쓴 적도 있다(그 일기는 또 공책에 썼네). 그런 염원이 너무 간절해서일까, 군 입대 즈음에는 가사를 쓰기 위해 포켓 PC인 ‘모디아’를 구입하기도 했다. 손바닥만 한 터치스크린 모니터와 제법 타이핑 감이 좋았던 키보드를 장착한 이 컴퓨터로 <졸업> <변두리 소년, 소녀> 등의 가사 초고를 쓰고 고치고 정리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노트북 컴퓨터도 2~3KG은 거뜬히 넘어가던 시절이었으니 얼마나 신기하고 편했는지. 이 조그만 기계를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열심히 기록했었다. 엉망진창인 글씨로 노트에 적었던 내용 중에서 좀 쓸 만한 것을 옮겨 적었는데, 모니터에 반듯하게 쓰인 가사를 보면 왠지 조금 더 잘 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파일로 만들어서 저장하고 찾아보기도 수월했고 수정이 간편한 것도 너무 좋았다. 이후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구입하면서는 작사에 필요한 모든 과정은 스마트폰과 컴퓨터로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도 스마트폰을 계속 백업해오며 사용한 메모장의 시작 부분에는 브로콜리너마저 2집의 가사와 합주 녹음이 있다. 그러니까 그 이후의 작업들은 다 종이를 거치지 않고 만들어진 말들이다.

자신만의 작사 방법이 있냐는 질문에 ‘잘 기록해두지 않는다, 계속 머릿속에서 생각하면서 기억에 남는 말만을 추려내 가사로 만든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아마도 이 시기 이후에 정립된 방법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기억력도 좋고 작업에 좀더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방법이다. 지금도 메모장에 있는 수백개의 가사의 조각들이 어떤 내용인지 대략 알고 있다. 노래 가사가 아무래도 다른 종류의 글보다는 함축적이고 짧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수정을 하면서 어설펐던 초기의 버전이 지워지고 완성에 가까운 내용만이 남는 것이 좋았다. 더 많이 잘 쓸 수 있는 도구가 있지만 오히려 양으로만 따지면 더 적게 쓴 셈이다(더 자주 사용하긴 했다). 굳이 정리하자면 글을 더 선명하게 쓰는 도구로 이용한 것 같다. 이 방식은 가사를 쓰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에세이를 연재하면서는 스스로를 곤혹스럽게 만든 습관이기도 하다.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만의 호흡으로 풀어내면 될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추리고 추린 말만을 메모장에 적었다 지웠다 하는 버릇 때문에 진도가 영 나가지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고, 그때그때의 사소한 감정이나 기분을 자유롭게 쓰는 것이 어려운 일이 돼버렸다.

최근에 많은 창작자들이 그러하듯이 나 역시 노트를 다시 이용해야 할까, 고민하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이제까지는 써놓은 글씨들 중에 나의 못난 모습이 너무 많이 보여서 그것을 머리에서 정리해버리고 기록했다면 이제는 그런 망설임을 수집할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손으로 쓴 글씨는 지우거나 찢어버리지 않는다면 어쨌든 남아 있을 테니까(지우거나 찢는 것도 디지털 기기보다는 어려울 거고). 새로 산 노트북은 구입한 지 일년도 되지 않았는데 백스페이스가 반질반질하다. 그래서일까, 자판을 거쳐 나오는 문장들은 내가 실제로 망설이고 돌아간 길이 아니라 내비게이션의 최단거리를 알려주는 문장 같다. 더 오래 많이 쓰기 위해서는 단어들 사이의 방황과 실패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내 결론이다. 물론 노트를 쓴다고 해서 이게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난 완벽하지 않아요> _최엘비

노트를 한 장 뜯었지 이 글을 쓰기 전에

난 뭐든 시작은 완벽하게 하고 싶어 해

이게 무슨 말이냐면 노트를 사면 난 처음에

쓴 글이 마음에 들 때까지 첫 장을 뜯어내

(…)

내가 이러는 게 다 강박 탓이래 의사가

처음엔 인정하기 싫었는데 맞는 말 같아

나의 삶도 마찬가지 완벽한 한 장을 위해

난 얼마나 많은 걸 버려왔나

(…)

항상 그래왔듯 완벽하지 않아

아,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말이야

만들다 만 관계들이 자꾸만 쌓여가

다 내가 완벽하지 않아서인 걸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