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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탄적일천'의 배우·제작자 장애가 인터뷰
김성훈 2022-01-15

대만영화의 새로운 변화에 함께하고 싶었다

홍콩의 배우이자 감독이자 제작자인 장애가에드워드 양 감독의 오랜 영화 동지였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에드워드 양 감독은 당시 장애가가 공동 제작한 TV시리즈 <11명의 여인들> 중 한 에피소드를 연출했다. 에드워드 양이 가일정, 테첸타오, 이창 감독과 함께 참여한 옴니버스영화 <광음적고사>에는 장애가가 배우로 출연한다. 그때 두 사람은 영화적 교류를 활발하게 했고, 이후 그의 시나리오를 눈여겨본 장애가는 에드워드 양의 장편 데뷔작인 <해탄적일천>에 배우와 제작자로 참여해 그의 등장을 세상에 알렸다. 39년 만의 한국 개봉을 앞둔 지난 1월3일, 줌으로 만난 장애가에게 새해 인사부터 건넸다.

- 새해 첫날은 어떻게 보냈나.

= 연말과 새해에는 친구와 가족을 위해 요리를 했다. (웃음)

- <해탄적일천>은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

= 당시 나는 홍콩 제작사 시네마시티(1980년 배우 황백명, 맥가, 석천이 합작으로 설립한 회사로 <최가박당> 시리즈, <영웅본색> <용호풍운> 등 많은 히트작을 제작했다.-편집자)의 제작 책임자였다. 마침 대만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고, 에드워드 양 또한 그중 하나였다. 당시 에드워드 양은 친한 친구였는데 그가 시나리오를 들고 나를 찾아왔고, 프로듀서로서 내가 직접 제작하기 위해 그걸 시네마시티로 가져왔다. 이야기가 멜로드라마인데 상업적이진 않았고, 제작비도 적은 편이 아니었다. 센터모션픽처라는 제작사 또한 이 시나리오를 마음에 들어 해서 공동 제작에 참여했다. 에드워드 양은 내가 주인공 자리 역할을 맡기를 원했다.

- 출연한 영화 <최가박당>(1982)이 크게 흥행하면서 배우로서 더 큰 기회가 주어졌을 텐데 신인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프로듀서를 맡기로 한 이유가 궁금하다.

= 나의 시작은 배우고, 배우로서 드라마라는 장르에 대한 신뢰감이 크다. 좋은 배우로 성장하려면 드라마에서 연기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대만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재능 있는 젊은 감독이 대거 등장해 멜로를 포함해 드라마 장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대만영화의 모든 것이 전통적이라 젊은 사람들의 실제 삶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에드워드 양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내고자 했다.

- 홍콩 영화산업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1980년대 중반, 대만에서 새로운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데 양쪽을 오가며 일한 사람으로서 홍콩과 대만의 분위기는 어떻게 달랐나.

= 당시 홍콩은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허안화, 왕가위, 두기봉 같은 젊은 감독이 하나둘씩 등장했다. 이들은 방송국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을 거듭했다. 나는 1979년 허안화 감독의 장편 데뷔작 <풍겁>에 투자했고, 영화의 주인공을 연기했다. 곧바로 대만으로 가서 TV시리즈 <11명의 여인들>을 공동 제작했고, 에드워드 양이 그 시리즈의 한 에피소드를 연출하면서 등장한 것이다. 그 시리즈를 통해 에드워드 양뿐만 아니라 허우샤오시엔, 가일정, 테첸타오, 장초치, 오념진 등 ‘신랑차오’의 주역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전 세대와 다른 영화를, 다양한 장르를 만들었다. 재능이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매우 슬픈 일이다. 배우로서 나 또한 좋은 영화를 하고 싶었다. 그래서 시네마시티에서 좋은 감독을 발굴하려고 노력했다.

- 에드워드 양과의 첫 만남이 기억나나.

= 어디서 어떻게 만났는지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땐 다정하고, 조용하며, 수줍음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 <해탄적일천>은 자리라는 한 여성의 파도 같은 인생을 펼쳐낸 이야기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 이야기의 어떤 점에 공감됐나.

= 자리는 나와 아주 다른 여성이지만 많은 여성의 삶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전통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과 행복을 찾고 싶어한다. 사실 결혼은 해결책이 아니다. 하지만 당시 많은 젊은 여성이 결혼을 삶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했고, 결혼한 뒤에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실망했다. 여성은 주부가 되는 방법과 엄마가 되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엄마가 했던 방식을 답습하고, 그러면서 행복은 더더욱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됐다. 반대로 다른 세상을 본 여성은 자신을 감싸는 알을 깨뜨릴 수 있게 됐고. 그 시대가 여성에게 했던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 에드워드 양이 특별히 주문했던 것은 무엇인가.

= 딱히 없었다. 그와 아주 친했고, 연기보다는 시나리오나 제작에 더 많이 관여했다. 나는 신인이 아니었고,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알아서 연기했다. 현장에서 그가 내게 요구한 건 연기보다는 제작 진행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기자가 촬영 현장에 오는 걸 싫어했고(웃음), 조용한 환경에서 작업하고 싶어 했다.

- 영화는 자리의 10대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20년 가까운 시간을 펼치는데 영화 속 시간이 흐르면서 자리의 외양 또한 변화한다. 시간의 변화를 어떻게 표현하고 싶었나.

= 그 영화를 찍을 때가 30대였는데 그때 했던 헤어스타일은 피아니스트 웨이칭을 연기한 후인몽과 비슷했다. 30대 자리의 모습을 담은 엔딩 신은 늙어 보여서 정말 싫었다. (웃음) 고등학생 때는 단발머리를 했고, 결혼한 뒤 남편과 불화가 생겼을 때는 ‘미친년’처럼 파마를 했다. 헤어스타일을 바꾼다고 해도 자신이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거다.

- 이 영화는 에드워드 양뿐만 아니라 이후 왕가위의 오랜 파트너가 되는 크리스토퍼 도일 촬영감독의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당시 크리스토퍼 도일은 영화 촬영 경험이 전무했고, 보통 제작자라면 신인감독에게는 베테랑 촬영감독을 붙여서 리스크를 줄이려고 하지 않나.

= 에드워드가 크리스토퍼와 일하고 싶어 했다. 에드워드는 단순히 연출뿐만 아니라 프로덕션 디자인, 조명, 스크립터 등 다른 업무도 능숙했고, 그러다보니 촬영감독이 많이 긴장하곤 했다. 하루는 현장에서 에드워드와 크리스토퍼간에 논쟁이 벌어졌는데 그 결과 크리스토퍼가 눈물을 쏟으며 촬영장을 떠났다. 그래서 내가 크리스토퍼를 쫓아가 진정시켜야 했다. 멀리서 에드워드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제작자로서 힘들었다. (웃음) 현장에서 에드워드가 많은 것을 결정했고, 젊은 감독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허우샤오시엔도 에드워드를 많이 존경했다.

- 후반작업 결과 영화의 러닝타임이 166분으로 나와서 제작사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 많이 잘랐는데도 2시간이 넘었다. 평론가, 일반 관객 등 많은 사람에게 보여줬는데 디테일이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감독의 결정을 따르기로 했다. 하지만 시네마시티의 파트너사들이 프로듀서로서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험담했다. 나는 그들에게 대만영화는 홍콩영화와 다르고, 영화를 평가할 기회를 관객에게 줘야한다고 주장했다. 그 일로 나는 시네마시티를 그만두어야 했다.

- <해탄적일천>에 출연하고, 제작을 진행했던 경험이 이후 <인재뉴약>(감독 관금붕, 1989), <20 30 40>(감독 장애가), <상애상친: 여자 이야기>(감독 장애가) 등 당신이 출연하거나 연출한 여성 서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 에드워드는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와 가까이 지냈고, 함께 영화를 작업할 때 정말 재미있었다. 사실 나는 연기 하나만 해야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직업이 배우, 감독, 제작자 등 3개가 됐다. (웃음) 장편영화 연출작 <구몽불수기>(1981)를 연출하면서 그와 많은 얘기를 나눴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영화에서 음악을 깊이 있게 다루는 방식도 그에게 많이 물었고, 작은 보드에 신별로 메모하며 캐릭터를 함께 연구하기도 했다. 에드워드는 개인의 삶이 거의 없을 만큼 영화에 빠져 살았다. 그건 내 삶과 다른 점이었다.

- 지금은 연출이나 제작을 하는 여성이 늘고 있지만 당신이 처음 영화를 연출했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여성감독이 많지 않았는데.

=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배우로서 먼저 성공해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내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연출, 제작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나 또한 재능이 많은 사람과 함께 일하고 싶었던 데다 무엇보다 영화를 사랑했다. 당시 영화 학교에서 연출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도 없고, 연출 경험 또한 많지 않아서 현장에서 일일이 부딪혀가며 배워야 했기에 실수도 많았지만, 에드워드를 포함한 좋은 감독들과 가까이 지냈던 게 이후 연출을 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 후배 여성 영화인들이 당신의 길을 따라갈 수 있게 됐다.

= 여성이 남자들보다 더 성실하다. 재능도 많고. 젊은 여성들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제작자로서 차기작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 지난 2년 동안 중국, 홍콩, 대만 등에서 젊은 감독들의 영화에 많이 출연했다. 곧 중국의 여성감독과 일하기 위해 광저우로 간다. 설날 이후에는 감독으로서 신작 시나리오를 작업할 계획이다. 많은 일을 한번에 할 수 없어서 참 아쉽다. 천천히 하려고 한다. 세상에 무엇을 얘기할지 좀더 고민하고 싶다.

- 한국영화에 출연하는 모습도 보고 싶다. (웃음).

= 한국영화에도 출연할 수 있다면 좋겠다.

- 곧 <해탄적일천>이 39년 만에 한국 극장가에서 개봉하는데 소감이 어떤가.

= 긴 시간이 지난 뒤 이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 배급사에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한국 포스터를 보니 아름다웠고, 많은 사람이 한국 개봉을 축하하는 문자를 보내와서 행복하다. 이 영화를 처음 만들었을 때의 우리의 결정이 옳았다. 이 영화는 2년 뒤에 사라지는 영화가 아니라 영원히 잊히지 않는 클래식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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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Photo from the theatre production "Spirits" (2020 at Grand Theatre, Hong Kong Cultural Centre) Produced and presented by Zuni Icosahedron Directed and designed by Mathias WOO Photo taken by CHEUNG Chi Wa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