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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훈의 디스토피아로부터] 새로움을 경신하자
우석훈(경제학자) 2022-01-20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일본식으로 각색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을 20대에 처음 보았을 때, 정말 충격적이었다. 미친다는 게 뭔지, 제정신이라는 게 뭔지, 세상을 새로 보는 느낌이었다. <춤추는 대수사선>은 총리실에 근무하던 시절에 봤다. 내가 보던 공무원과 공기업의 모습과 그렇게 똑같을 수가 없었다. <에반게리온>도 충격적이었고, <공각기동대>와 함께 나는 그런 일본의 얘기들이 너무 좋았다. 하다못해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시리즈는 애니메이션은 물론 실사판까지 전부 챙겨서, 그것도 여러 번 봤다.

그 시절에 비하면 일본영화나 애니메이션이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것 같다. 세계적인 문제작이 잘 나오지 않고, 다루는 얘기들도 점점 덜 충격적이다. 물론 작다고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뭔가 협소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렵다.

일본 정치만 보면 세대교체에 실패한 대표적인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가 많고, 2대 정치인도 많다. 문화도 마찬가지다. 60대, 70대, 한때 영광을 누렸던 사람들이 너무 오래 마이크를 잡고 있다. 정치적인 판단 없이 그냥 보면 일본은 너무 정체되어 있고, 너무 질서정연해서 새로운 흐름이 밀고 들어갈 여지가 별로 없다. 1997년의 외환 위기 이전에 한국영화는 ‘방화’라고 불렸다. 사람들은 외화를 수입하기 위한 쿼터를 받기 위해 졸속으로 만든 가짜 영화 정도로 방화를 낮춰서 봤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한국영화의 위상은 이제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국제적이 되었다. 왜 한국영화는 속 강화되었고, 일본영화는 위기로 가게 되었을까? 국민소득과 같은 경제력이나 문화적 취향으로 설명하기 아주 어렵다. 일본은 여전히 노벨상을 비롯한 기초학문과 기술 분야에서 최강국 중 하나다. 뭐가 다른 것일까?

가장 큰 것은 새로운 세대가 계속해서 등장하면서 젊은 감독, 작가, 제작자가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차이가 아닐까? 프랑스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화가인 피카소는 스페인 출신이다. 경제도 그렇지만, 문화 역시 수많은 이질적인 것들이 결합하면서 새로운 것들이 만들어진다. 청년의 새로운 감각 혹은 새로운 분노 역시 기성세대에는 이질적인 요소 중 하나다. 군대처럼 너무 질서정연해지면 문화는 정체하고 이미 성공한 것들을 반복 재생산하게 된다. 결국 재미가 없어진다. 단기적으로는 상업성이 모든 것의 원천인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여러 종류의 다양성이 결합하면서 새로움은 물론 재미도 생겨나는 것 아닌가?

이제 세계적인 흥행작을 만든 한국영화도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서 지금의 장점을 오래가게 하기 위한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청년들이 문제작을 만들고, 기존 질서를 뒤흔들 수 있는 장치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조건이 신인이 데뷔하고 움직이기에는 장애 요소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새롭지 않으면 진부해진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언젠가 다가올 위기 요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