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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 편집장] 각자의 스펙터클
이주현 2022-02-04

경건한 마음으로 파올로 소렌티노 감독의 <신의 손>을 보았다. 축구와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시시껄렁한 태도로 <신의 손>을 볼 순 없다!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인 파올로 소렌티노의 자전적 이야기이며, 축구선수 마라도나가 나폴리에서 활약하던 때가 시대적 배경’이라는 기본 정보만으로도 느슨하게 휜 척추를 바로 세우기에 충분했다. 세상의 기이한 아름다움을 탐지하고 수집하는 데 특별한 재주가 있는 소렌티노의 영화적 시선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려주는 이 영화에서 내 심장을 세차게 고동치게 한 장면은 주인공 파비에토(필리포 스코티)의 부모가 별장에서 보내는 평화로운 시간을 고요히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서사의 전환점이 되는 이 장면에서 나는 벽난로에서 새어나오는 일산화탄소의 냄새를 미리 감지하곤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나폴리 근처엔 가본 적도 없으면서, 나폴리 앞바다의 파도처럼 철썩대는 감정을 가누어야 했던 스펙터클한 체험을 하고 난 뒤, ‘신의 손’이 영화를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신의 손>은 놀랍도록 스펙터클한 영화였다.

사실 <신의 손>은 최근 본 가장 스펙터클한 영화는 무엇이었나 생각하다 달려올라온 영화다. 이번주엔 한국 시각효과(VFX) 산업의 현황과 좌표를 짚어보는 기획 기사를 힘주어 준비했는데, 영화미디어 연구자인 정찬철 교수가 보내온 정성스러운 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디지털 시각효과 기술이 낳은 스펙터클이 볼거리를 과잉해 영화를 사유의 문화가 아닌 소비의 문화로 변질시켰다는 말들도 있다. 하지만 이 시대 시각효과는 스펙터클의 전시가 아닌 스펙터클 서사의 시대를 낳았다고 봐야 한다.” 스펙터클 서사의 시대라는 말은, <승리호> <지옥> <고요의 바다> 등 최근의 한국영화와 시리즈들을 생각하면 쉽게 와닿을 듯하다. <승리호>와 <고요의 바다>가 보여준 우주 공간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 <지옥>에 등장하는 죽음을 부르는 사자의 크리처를 보면서, 이제 우리는 영화적 상상력이 가닿지 못할 시간과 장소와 이야기는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덱스터스튜디오, 모팩, 엔진비주얼웨이브, 웨스트월드, 위지윅스튜디오까지, 현재 한국 VFX를 대표하는 회사 대표들과도 만남을 가졌다. 한국영화의 지평을 확장시키는 데 큰 몫을 한 이들은 어찌 보면 감독들의 상상력에 날개를 달아준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재밌는 건 디지털 시네마에 대한 고민을 필름에 관한 신작 영화를 찍은 장이머우 감독의 인터뷰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펙터클이란 무엇인가. 돌아오는 주말은 그저 아무 일 없이 평온하길 바라며 스펙터클의 시대, 스펙터클 영화란 무엇인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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