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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윤덕원(가수) 2022-03-03

일러스트레이션 EEWHA

트위터를 보다가 밴드 ‘EX’의 2005년 MBC 대학가요제 무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생방송으로 보았던 무대를 다시 보니 그때 생각이 나서 기분이 묘했다. 반가운 마음에 댓글도 달았다. 댓글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그때 연주를 실제로 보고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쪽과 예전에 이렇게 매력적인 곡과 무대가 있었던 것을 처음 알고 흥미로워하는 쪽이다. 물론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는 쪽이었는데, 그것은 2005년 대학가요제에 브로콜리너마저가 지원했다가 탈락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당시에 예선 탈락자로서 팔짱을 끼고 ‘어디 얼마나 잘하는 사람들이 올라왔나 보자’라는 심정으로 대학가요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무대가 준 충격이 더욱 컸다.

EX는 마지막 순서로 등장해 <잘 부탁드립니다>로 대상을 거머쥐었다. 아마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첫 소절이 나오는 순간, ‘안녕하세요’ 하고 보컬 이상미씨가 노래를 시작하는 그때, 이들이 대상을 받겠구나 하고. 나 역시 그 무대를 보면서 ‘그래 상 받을 만한 사람이 받았구나’ 하고 탈락을 납득할 수 있었다. 역대급 무대를 보여준 이들은 이후 스타덤에 올랐고, 한동안 여기저기에서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이후에도 이들이 이 노래를 연주한 영상은 많지만 대학가요제 무대는 뭔가 더 특별한 것 같다. 면접에 실패하고 나서 느끼는 감정을 담은 노래이기 때문에, 아직 참가자로서 대회 무대에서 처음 연주할 때의 임팩트가 우승한 이후의 어느 때보다 컸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서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오면, 당시 브로콜리너마저는 결성한 지 2개월 정도 된, 완전 아마추어 밴드였다. 그래도 밴드를 결성했으니 대학가요제에 한번은 나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우리는 연주력보다는 곡으로 승부하겠다는 생각으로 대학생의 낭만을 담은 <꾸꾸꾸>라는 노래를 완성했고, 빠르게 데모 녹음을 마친 뒤 대학가요제에 응모했다. 여러모로 어설픈 점도 있었겠으나 곡이 좋았기 때문일까? 서류심사를 통과하고 당시 여의도에 있던 MBC 방송국에서 진행된 예심을 보러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아쉬운 일이 있었는데, 예선에서 ‘연주는 할 수 없고 노래만 평가한다’는 공지사항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빠른 예선 진행을 위해 악기 세팅 등은 하지 않고 심사를 하겠다는 취지로, 그러면서도 연주하는 모양새는 심사에 반영하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음 그렇다면 보컬 외의 멤버들은 구경만 하면 되겠군. 아무리 예심이라지만 라이브를 하지 않다니 방송국이란…’ 하고 생각하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예심 현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예심 현장은 정말로 치열했다. 마치 본선인 것 마냥 화려한 분장과 의상을 한 팀들이 많았던 것은 물론이고, 실제 연주를 들려줄 수 없어도 라이브 퍼포먼스를 핸드싱크로나마 열정적으로 선보이는 팀들을 보니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버스카드만 들고 온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건반도, 기타도, 드럼스틱도 없이 진정한 핸드싱크를 선보이며 예심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하아….

최선을 다해 탈락해도 후회 없을 만큼 했다면 아쉬움이 덜했을 텐데, 뭔가 민망한 연주(같은 것)를 하고 떨어졌다는 생각에 당시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떻게 밴드에 핸드싱크를 시킬 수 있나’ 하면서 방송국을 원망했던 시간도 있었다. 아무튼 그래서 꽤나 불편한 마음으로, 그러나 속으로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을 뽑았을까’ 부글거리는 마음으로 생방송 무대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EX의 결승 무대는 너무 훌륭해서 나 역시 좋아할 수밖에 없었고, 밴드는 매력적이었으며 곡과 가사도 완벽했다. 언젠가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저들은 잘해내서 좋겠다. 이런 생각들을 했다. 물론 이후에도 이런 생각들이 드는 순간은 많았다. 지금도 그렇고.

오은의 산문집 <다독임>에서는 실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게임에 열중하던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듣던 작가가 ‘실패가 무엇인지 아니?’ 하고 물어보자 ‘다시 한판하라는 거예요’라고 답했다는 이야기. 실패에 낙심한 이들에게 공감하는 말은 때로 너무 처지고, 힘내라는 말은 겉돌기 쉬운데, EX의 <잘 부탁드립니다>는 좌절한 이들에게 다시 한판할 수 있게 응원하는 사려깊으면서도 유쾌한, 보기 드문 노래이고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줄 것이다. 그래서 나도 괜히 몇번을 더 돌려 들었고, 또 실패를 하러 가기로 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_EX

안녕하세요 적당히 바람이 시원해 기분이 너무 좋아요 유후~

끝내줬어요 긴장한 탓에 엉뚱한 얘기만 늘어놓았죠. 바보같이…

한잔했어요 속상한 마음 조금 달래려고. 나 이뻐요? 히~

기분이 좋아요 앗싸 알딸딸한 게 뿅뿅 가네요 몰라요~

이 정도로 나왔어도 즐겁잖아요

한번의 실수쯤은 눈감아줄 수는 없나요

나나나나나나나나 노래나 할까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It’s a beautiful day

좀 쌀쌀하네요 차가운 바람이 휙~ 가슴을 쓰네요. 아프게…

걱정은 안해요 이젠 익숙해질 때도 돼버린 거죠 한두번도 아닌데…

울어도 되나요 가끔은 혼자 펑펑 울고 털고 싶어요 엉엉~

이젠 괜찮아요 딱~한잔만 더 할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이 정도로 나왔어도 즐겁잖아요

한번의 실수쯤은 눈감아줄 수는 없나요.

나나나나나나나나 노래나 할까요?

더 잘할 수 있었는데

It’s a beautiful day

안녕히 계세요 지금까지 제 얘길 들어줘 정말 고마워요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