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INTERVIEW
'피그'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 인터뷰
송경원 2022-03-03

"상실 또한 우리 자신의 일부"

놀라운 데뷔작이다. 돼지를 잃어버린 남자의 여정을 따라가는 <피그>는 오묘하다. 스릴러처럼 보이다가도 문득 마음의 상처를 되돌아보는 휴먼드라마의 잔잔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반적으로 상징과 압축으로 가득한 우화처럼 느껴지는가 하면 이보다 더 솔직하고 진솔하기 힘들 것 같은 장면들도 적지 않다. 장르를 규정짓기 힘든 이 비범한 데뷔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단단함이다.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효과적인 연출, 절제된 동선과 풍성한 사운드의 조화, 인물들이 침묵할수록 감정이 자연스럽게 스며나오는 세련된 표현은 신인감독의 데뷔작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원숙하다. 한동안 침체를 겪던 배우 니콜라스 케이지가 오랜 방황을 끝내고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납득이 간다. 연출과 각본을 맡은 마이클 사노스키는 <피그>를 통해 전미비평가위원회 데뷔감독상을 비롯해 여러 상을 거머쥐며 영화계의 주목을 한몸에 받고 있다. 고요하고도 단단한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명상과도 같았던 과정에 대해 직접 물었다.

- 데뷔작이라 믿기 힘들 만큼 깊이 있고 묵직하다. 성공적인 데뷔를 축하한다. 트러플 돼지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를 어떻게 상실과 슬픔에 빠진 남자의 이야기까지 연결시켰는지 시나리오 개발 과정이 궁금하다.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된 부분도 있다고 들었다.

= 처음 아이디어는 숲속에서 노인이 트러플 돼지와 함께 있는 하나의 이미지에서 시작되었다. 롭(니콜라스 케이지)이 어떻게 그곳에서 살기로 결심했는지, 포틀랜드 지역 요리 업계에서 명성을 떨친 그의 과거는 어떠했는지, 그 한장의 이미지로부터 많은 것들이 풀려 나왔다. 말한 것처럼 내 경험과도 연관이 있다.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동안 그 슬픔이 내 삶속에 어떻게 자리 잡았는지를 많이 생각했다. 그 결과 한 남자의 이야기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자신들의 삶에 녹여낸 세명의 인물에 대한 것으로 발전되었다.

- 포틀랜드의 전설적인 셰프였던 남자가 15년 만에 다시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롭은 처음엔 <존 윅>처럼 엄청난 과거를 숨긴 남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요리라는 소재를 중심에 놓은 건 어떤 이유인가.

= 요리 세계에서의 과거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은둔자 같은 트러플 헌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초기에 나는 카우보이 영화를 상상하기도 했다. 총이 아니라 요리로 싸우는 카우보이인 셈이다. 그런 이유로 결말 부분에서는 총격전 대신에 세 사람이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장면이 완성되었다.

- 제작, 시나리오, 사운드, 편집, 심지어 메이크업까지 영화 현장의 다양한 분야를 경험했다고 들었다. 다양한 경험이 연출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 나는 언제나 영화 제작의 다양한 측면에 매료되었다. 그중에서도 시나리오 집필과 편집은 내가 아끼는 두개의 영역이다. 연출은 그 두 가지 열정을 이어주는 완벽한 다리와도 같다. 연출은 하나의 분야가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다양한 소우주가 한데 모인 커다란 집합체에 가깝다. 당연히 여러 분야에 대한 이해가 연출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됐다.

- 무대가 되는 포틀랜드 오리건주의 지역색은 영화의 정체성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광활한 대자연과 자유분방한 도시의 분위기가 묘하게 겹쳐 있다.

=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어디에서 풀어낼지 전혀 계획이 없었다. 브레인 스토밍 단계에서 스페인 등도 고려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미국에서 진행하기로 빠르게 결정내렸다. 오리건주는 미국에서도 트러플 산업이 번창하고 있는 몇 안되는 지역 중 하나다. 일단 계획이 정해진 뒤엔 배경이 스스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최대한 많이 찾아내려고 노력했다. 예를 들면 요리 종류를 정하는 것부터 촬영 장소를 정하는 것까지 말이다.

- 포틀랜드 풍광을 잘 보여주는 오프닝 시퀀스가 특히 인상적이다. 평화로운 가운데 묘한 긴장감이 깔려 있다.

= 로케이션 헌팅은 영화 제작 과정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머릿속 아이디어에 불과했던 이야기가 비로소 구체화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프로듀서인 바네사 블록과 함께 초기 로케이션 헌팅을 진행하며 여러 지역을 여행했고 그 과정에서 포틀랜드의 여러 크루들을 만날 수 있었다. 로저 페어스라는 스탭이 로케이션 헌팅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실제 그 지역에 존재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영화에 녹여낼 수 있었다.

- 롭은 음식을 통해 사람들이 묻어두고 살던 것들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든다. ‘시골식 버섯타르트’, ‘엄마표 프렌치토스트와 해체주의 가리비 요리’, ‘새 한 마리 술 한병 그리고 소금바게트’까지 총 세개의 챕터로 나눈 이유는 뭔가.

= 모든 음식은 실제 셰프인 오리건주의 크리스 차르네키와 게이브 루커가 준비한 것들이다.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먹어본 뒤 직접 요리로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이 가진 음식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들, 특히 포틀랜드 음식에 대한 표현은 정말 놀라웠다. 포틀랜드를 관통하는 트렌드는 무엇인지, 21세기로 바뀐 현재에 어떤 것들이 더 현실적으로 요리로 표현될지 등 많은 고민 끝에 세 가지 요리를 선정했다. 영화에서 롭이 마지막에 만드는 요리는 20년 전 자신이 운영했던 레스토랑에서 나왔다고 설정한 음식이다. 단순히 요리를 재현하는 걸 넘어 요리에 담긴 이야기를 되살리는 작업이라 봐도 좋다.

- 영화 전반에 걸쳐 정보의 공백이 많고 서사적으로는 (좋은 의미에서) 불친절하다. 롭이 어떤 과거를 지녔는지, 사람들과 어떤 인연을 맺었는지(예를 들면 빵집 사장과)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과거에 대해 나만의 아이디어가 있었지만 특별히 질문이 없다면 대부분은 배우에게 자신의 캐릭터를 탐구하도록 맡겼다. 롭의 과거가 서서히 드러나는 것은 이 이야기가 가진 동력의 일부이긴 하지만 한 인간으로서 롭 역시 마음을 열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다 보여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누군가를 아끼고 이해하려면 그의 과거사를 낱낱이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면서 느껴지는 상대에 대한 지속적인 미스터리함 또한 인간관계의 재미가 아닐까.

- 초반에 돼지를 도둑맞은 롭이 자신의 낡은 차에 시동을 거는 과정이 마치 롭 그 자체처럼 보였다. 삶을 방치하다 녹슨 남자가 다시 움직이는 모양을 그대로 장면으로 바꾼 것 같다. 인물의 심리나 상태를 장면이나 사물에 빗대어 표현하는 상황이 많은 것 같다.

= 얘기한 것처럼 초반부는 철저히 롭의 관점에서, 아니 롭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진행된다.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람과 장소, 사물들과 그가 이뤄내는 모든 상호작용이 그의 관점을 통해 필터링된다. 롭이 돼지를 찾으러 가는 도중에 접하는 인물들의 사연에서 유기적인 성장을 이뤄내길 원했다.

- 롭을 비롯한 각 인물들의 사연이 상징적으로 펼쳐진다.

= <피그>는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의 재결합을 다루는 영화이기 때문에 극이 진행될수록 롭의 대화가 점차 증가하는 방식으로 영화의 메시지를 드러내려 했다. 가령 롭의 파트너이자 푸드 바이어인 아미르(알렉스 울프)는 고급 스포츠카에서 클래식의 가치에 대한 논평을 듣는다. 아미르는 타인을 위해 삶을 살아가는 인물이다. 사회가 그에게 기대하는 것들이나 그의 아버지로부터의 기대 같은 것들 말이다. 아미르는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기준에 맞춰 자기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며,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려는 그의 노력 역시 그러한 표현의 한 방법이다.

- 각 인물을 대표하는 공간의 분리도 인상적이다. 롭의 숲속, 아미르의 스포츠카, 에드거의 지하 파이트클럽, 핀웨이의 레스토랑, 그리고 아미르(알렉스 울프)의 집까지 각 공간이 인물을 대변한다.

= 이 영화가 한편의 우화라고 늘 생각했다. 롭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롭이 다른 이들의 작은 세상을 만나는 게 좋았다. 직접 그 안을 들여다볼 수는 있지만 모두 알아낼 수는 없고 그저 살짝 맛보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그런 세상 말이다.

- 상실감에 대한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는 자연스럽게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연상시킨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캐스팅은 어느 단계부터 염두에 두었나. 이 영화의 시나리오에 그가 얼마나 영향을 미쳤나.

= 초기 시나리오는 내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프로듀서인 바네사 블록이 집필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누군가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니콜라스 케이지의 이름은 그의 소속사의 추천으로 들어왔다. 물론 니콜라스 케이지가 시나리오를 온전히 이해하고 오케이했을 때 그가 배역에 완벽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는 롭이라는 캐릭터에 진정성과 존재감을 부여했고, 어느 시점부터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아닌 다른 배우의 롭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 또 다른 주인공이라고 해도 좋을 트러플 돼지 브랜디는 초반에 잠깐 등장하고 나오지 않지만 존재감은 영화 전반에 깔려 있다. 북미비평가협회 동물연기상도 수상했다.

= 브랜디는 포틀랜드 지역의 농장에서 데려온 쿠네쿠네 돼지다. 연기 경험이 없는 돼지인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외형에 영혼이 충만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브랜디는 지시받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음식을 좋아했고, 니콜라스 케이지가 먹이주는 것도 좋아했다. (안타깝게도 촬영이 끝난 후 턱 염증을 앓던 브랜디는 팬데믹 때문에 신규 환자를 받지 못하는 동물병원의 운영방침에 따라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편집자)

- 처음엔 로니의 테이프를 듣지 못하던 롭이 엔딩에서 결국 테이프를 들으며 잠드는 건 그의 변화라고 봐도 될까. 그의 삶은 좀더 나아질까. 당신이 주목하고 싶었던 건 상실로 인한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인가 아니면 슬픔의 흔적들이 삶에 어떤 식으로든 반영되는 상태 그 자체인가.

= 누군가 큰 상실을 경험한 후에 그것을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상실 또한 단지 자신의 일부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그 자신의 일부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남겨진 시간들은 그 흔적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컨트롤하고, 혹은 영감을 주는지를 알아갈 뿐이라고 생각한다.

- 엔딩에서 로니의 테이프에서 나오는 노래가 궁금하다. 이 노래를 고른 이유가 있다면.

= 엔딩에 나오는 노래는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라는 곡을 커버한 버전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그 노래를 불러주는 장면 자체가 참 마음에 들었다. 뭔가 천상의 노래 같은 분위기가 나면서도 강렬한 열정이 느껴진다. 원곡 자체가 너무 좋다.

- 차기작 계획이 궁금하다.

= 여러 프로젝트들이 현재 작업 중이다. 가장 빠른 것은 <콰이어트 플레이스>의 스핀오프 영화다. 지금 현재로서는 이것밖에 얘기할 수가 없다. 머지않은 시간에 다른 정보를 나눌 수 있을 테니 기다려주길 바란다.

관련영화

관련인물

사진제공 판씨네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