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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뾰족한 수는 없지만
윤덕원(가수) 2022-03-17

일러스트레이션 EEWHA

나이가 들어서 마이어스-브릭스 유형 지표(MBTI) 검사 결과가 바뀔 때가 된 것인가. 요사이 내가 좀 변한 것 같다.

별것은 아니고 지난해부터 동료 음악인들을 그냥 만나는 일이 늘었다. 나는 극내향형 인간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도 만날 약속을 먼저 제안하는 것이 항상 좀 어려웠었는데, 어느 날부터 ‘우리 한번 봐요’라고 먼저 스스럼없이 이야기하게 된 것 같다. 이게 어쩌다 보니 지난해 말부터는 한달에 한두번은 그냥 연락해서 음악 동료들을 만나는 정도가 되어버렸다. 평소에 친분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비교적 왕래가 없던 사람들까지 만나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심지어 지난주에는 무려 두번이나 커피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며칠 전에는 싱어송라이터 주윤하 형을 만났고, 어제는 밴드 더 보울스 멤버들을 만났다.

윤하 형은 전에 몸담았던 밴드 보드카레인 때부터 알던 사이니까 오래된 인연이지만 굉장히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얼마 전 홍대거리를 지나가다 우연히 스쳐 지나며 커피 한잔하자 이야기했는데, 바로 약속을 잡아 다음주에 만나게 되었다. 사는 이야기며 음악이며 작업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연을 좀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하필 그때부터 상황이 이래서 참 여의치가 않다는 말이 남 일 같지 않았다. 공연하면서 힘도 받고 다시 힘내서 새로운 곡도 발표하고 했던 것이 자연스러울 때가 있었는데. 뭐 뾰족한 수는 없지만 올해는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이야기를 나누며 헤어졌다. 커피도 맛있었고 혼자 작업실에서 고립돼 있는 건 아니라는 걸 확인했으니까 그걸로도 꽤 힘이 되었다. 언제 공연을 같이할 수도 있을 테고.

더 보울스 친구들은 연말에 함께 공연하고 나서 서로 SNS 팔로를 시작한 사이다.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이 친구들은 중학생 때부터 친구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밴드인데, 덩치는 큼지막한 청년들이 연주할 때 말고는 꽤나 수줍다. 아직 20대인데 최근 인기 있는 스타일보다는 이제는 고전이라 할 만한 밴드 음악의 유산들을 충실하고 탄탄하게 해석해내고 있다. 최근에 새 앨범이 나왔는데 유명 프랑스 밴드 타히티 80(Tahiti 80) 멤버가 프로듀스했다고 한다. 커피를 마시고 케이크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 앨범 시디를 선물로 줘 기쁘게 받았다. 음악을 미리 들어보았는데 좋았다. 사람들이 많이 못 듣고 지나가면 좀 아까울 것 같은데 앞으로 계획이 있냐고(아이고, 이 말도 그냥 주변에서 이런저런 말 얹는 사람 같네) 물었다. 야심차게 작업은 했는데 어떻게 홍보해야 할지막막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 말에 허허허 함께 웃었다(물론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하긴 했다).

뭐 특별한 결과가 있는 만남은 아니었지만 같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이렇게까지 마음이 누그러질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새삼 예전과는 조금 달라진 자신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렇게 나 자신이 변한 것은 어쩌면 코로나19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아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언제는 뭐 그렇게 쉽고 재미있게만 일했었나 싶긴 하지만 그래도 눈앞에 놓인 일들에 몰두하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면, 이제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주변을 돌아보다 보니 마찬가지로 길을 잃은 동료들이 보이는 것 같다. 혹시 연락하면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항상 먼저 들어 연락하는 게 어려웠는데, 요즘 같은 때라면 다들 누구라도 좀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을 거라고, 그러면 적어도 한번 볼까요, 라고 이야기했을 때 상대방이 그렇게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뭐 뾰족한 수는 없지만 그래도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하고 그러면 좀 낫지 않을까. 그런 마음으로 노래를 쓰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꼭 명쾌한 답을 찾지 않더라도 흘러흘러 가다보면 어떻게 가닿기도 하니까.

<같이 있자> _주윤하

가끔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있지

어둔 방 덩그러니 놓여 있는

시들은 화분처럼

너의 맘이 마를 때

누군가 버려놓은

외로움이 널 삼킬 때

그럴 때엔 같이 있자

이 어둠이 끝날 때까지

너의 슬픔이 멎을 때까지

우리 같이 있자

꿈과 바꾼 하루들

익숙해진 실망들

누군가 쌓아둔

절망들이 너를 감쌀 때

그럴 때엔 같이 있자

이 어둠이 끝날 때까지

너의 슬픔이 멎을 때까지

빛나는 꿈을 만날 때까지

너의 손을 꼭 잡을게

이 어둠이 끝날 때까지

너의 눈물이 멈출 때까지

우리 같이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