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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서' '파워 오브 도그' 조니 그린우드 "영화음악은 영화를 보는 이들의 상상 속에서 완성된다"
김소미 2022-04-07

라디오헤드의 기타리스트로 알려진 조니 그린우드라는 이름은 이제 영화음악의 새 첨탑으로 불린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팬텀 스레드>(2017)에 이어 올해 제인 캠피언 감독의 <파워 오브 도그>로 두 번째 아카데미 음악상에 노미네이트된 조니 그린우드는 같은 해 <리코리쉬 피자>와 <스펜서>의 음악도 책임졌다. 감정의 핵을 낚아채는 음악가인 그는 <파워 오브 도그>에서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신경의 소리를 풍경음처럼 대담히 놓아두고, <스펜서>에서는 바로크와 재즈를 뒤섞어 고통을 토해내는 내면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음악의 바다에서 헤엄치듯 조금씩 몰두의 대상을 옮겨가길 즐기는 그는, 라디오헤드에 집중했던 커리어 초반의 10년과 클래식 작곡 작업 등을 거쳐 현재 톰 요크와 주축이 되어 만든 프로젝트 밴드 더 스마일에 애정을 쏟고 있다. 올해 오스카상은 <>의 한스 짐머에게 돌아갔지만, 영화음악사에 새겨질 가장 아방가르드한 이름 중 하나로 조니 그린우드를 기억할 관객은 대체로 상패에는 연연하지 않는 성향들일 것이다.

- 클래식 애호가로 잘 알려져 있고,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의 레지던스 작곡가이기도 했다. <스펜서>에서 다이애나의 등 뒤로 사중주 연주가 펼쳐지는 크리스마스이브 만찬 장면은 작곡가로서 특히 즐겼을 법한 장면이다.

= 행복한 비명을 질렀던 신이다. 혼란으로 치닫는 왕실 디너에 맞는 음악이 필요하다는 것이 파블로 라라인 감독의 주문이었다. 우선 슈베르트식의 사중주를 구성한 다음 끝마디로 향할수록 무조음악이 되도록 변주했다. 악보의 엔딩까지 첼리스트들이 낮은 현을 계속해서 더 낮게, 더 낮게 튜닝했는데 이 작업이 정말이지 나를 즐겁게 했다. 격식과 낭만이 보존된 클래식 음악을 사랑한다. 덧붙이자면 이 마법 같은 클래식의 유행이 세상에서 진즉 끝나버린 것이 개인적으로 큰 수치이자 슬픔이라고 느낀다.

- <스펜서> 전반에서 바로크 선율 위로 덮쳐오는 집요하고 쿨한 재즈 사운드가 인상적으로 들린다. 다이애나 스펜서는 물론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에 대한 해석처럼 들리기도 했는데.

= 정확히 그랬다. 화려함과 혼돈이 공존하는 재즈의 세계와 경직된 클래식 음악이 겹쳐 <스펜서>의 팽팽한 두 가닥인 다이애나와 나머지 왕실 가족에 대한 암호처럼 작용하길 바랐다. 배우가 놓인 현실에서도 그런 관계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자유 VS 형식’의 대결 같은 것이라고 할까.

- <스펜서>처럼 두 장르가 섞이는 경우는 실제 녹음에서도 연주자들이 동시에 합을 맞추는 형태로 진행하나. 혹은 음악가들이 악기를 바꿔가며 녹음하고 후반에서 조율하는 형태일까.

= 원래는 연주자들을 모두 한방에 불러서 한번에 한 악기씩 돌아가며 녹음하려고 했다. 그러니까, 재즈 오르간 연주자가 바로크 오르간 연주자를 이어받고 몇 마디 후엔 재즈 트럼펫이 클래식 음악 연주자를 대신하는 식으로.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한 인원 제한으로 약간의 타협을 해야만 했다. 완벽히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떠올린 이 방식이 많은 영감을 주었다.

- 아방가르드한 사운드를 지향하는 한편 관객이 쉽게 기억할 만한 주제동기(Leitmotiv)를 사용하는 영화음악 작곡가다. 이런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가 있다면.

= 구시대적인 발언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현대의 영화 사운드트랙이 음악보다는 사운드 디자인에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것 같아 종종 유감스럽다. 여러 울림과 소리들은 있지만 구조가 없다. 좋은 사운드트랙이란 반드시 기억에 남을 만한 멜로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요즘 영화음악엔 템포와 음높이에 변화를 주지 않는 단조로운 드론즈가 너무 많고 신나는 장면에서는 드럼이 난무한다. 사운드트랙을 만들 수 있는 많은 방법이 있는데 이런 일관된 방식이 좀 아쉽지 않은가? 그런 의미로 <미드소마>는 아주 훌륭했다. 무척 독창적인 오리지널 스코어였다.

- <파워 오브 도그>에서 첼로의 현을 밴조처럼 뜯어가며 연주한 것으로 안다. 특히 현악기 사용에 있어 섬세한 감수성을 보여주는 음악가인데, <파워 오브 도그>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기까지 어떤 시행착오가 있었나.

= 내 고집을 관철시키기 위해 처음부터 제인에게 노력한 편이다. 그중 하나는 밴조와 현악 사중주를 위한 컨템포러리 클래식 음악을 만들자는 것이었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초창기의 시행착오였던 셈이다. 또 하나는 커다란 빈방에서 프렌치호른을 연주하는 것이었고, 이것만큼은 성공적이었다. 제인은 나의 희한한 발상에 대체로 격려를 보냈지만, 첼로를 밴조처럼 뜯어가며 연주한 스코어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무렵에서야 내가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확신하고 믿어준 것 같다.

- 뉴 웨스턴을 해석하는 데 있어 음악적으로 기존 서부극의 전통을 계승하거나 혹은 위배하려고 의도한 부분이 있다면.

= 서부극 특유의 크고 구슬픈 현악기는 피하고 싶었다. 아마도 에런 코플런드 스타일의 영향으로 추측되는…. <파워 오브 도그>에 낭만적인 풍경이나 이야기가 있다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이올린은 애초부터 계획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단 한대도 쓰지 않았다. 현악기는 그보다 낮고 어두운 음색의 악기만 활용했고, 제인 캠피언 영화의 인물들에게는 이런 분위기가 어울린다고 확신을 갖게 되었다.

- <파워 오브 도그>에서 음악이 들어갈 장면과 음악이 필요하지 않은 장면의 구분은 전적으로 감독의 몫이었을까. 장면의 내용이 모호한 상황에서도 음악이 매우 분명하게 긴장감과 집중력, 장면의 밀도를 형성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 그 부분은 전적으로 감독의 제안과 결정을 따른다. <파워 오브 도그> 역시 음악의 쓰임에 관해서는 대부분 제인이 결정했다. 음악이 매우 불안정한 방식으로 관객을 긴장시키기 바란 것은 확실하다. 필과 피터가 헛간에서 대치하는 아주 긴 장면에서 나는 의도적으로 음높이를 바꾸고 점점 고조시키는 방향으로 전개했다. 키 변화는 당연히 그 자체로 불안정한 느낌을 주지만, 내가 시도한 것은 그걸 서서히 밀도 있는 긴장으로 쌓은 뒤 절대로 다시 해소시키지 않는 것이었다.

- 폴 토머스 앤더슨, 린 램지와 같은 감독과 지속적인 컬래버레이션을 하면서 영화음악 커리어의 초반부터 굉장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재밌는 것은 한 감독과의 컬래버레이션이 반드시 일관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가령 <팬텀 스레드>와 <리코리쉬 피자>는 무척 다른 영화이고 음악의 괴리 역시 크다. 1970년대의 낙관적인 분위기가 가득한 팝송이 주요 모티브가 된 <리코리쉬 피자>를 작업하는 것에 어떤 흥미를 느꼈나.

= 폴의 영화는 기본적으로 아주, 아주 재미있다. 하지만 농담으로 가득 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화들은 언제나 농담 이상이다. 그것이 아마 폴의 영화에서 음악이 유효하게 작동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왜냐하면 내게는 적어도, 그의 영화 속 모든 것이 진심이기 때문이다. 폴 자신도 보통 그러하게 모순적으로 진실하다. 폴은 알라나와 게리의 로맨스를 강조하는 사운드트랙을 원했고, 나도 쉽게 받아들였다.

- 영화음악이란 어떤 면에서 즐겁고 또 어려운가.

= 모든 음악은 활용되는 장면에 반드시 특정 효과를 불어넣는다. 그게 어떤 의미든 무언가 영향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음악과 이미지 사이의 다리가 관객의 마음속에서 놓여질 때 제3의 요소가 형성된다. 그래서 그냥 듣기에 영화와 전혀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들릴 수 있는 음악도 영화를 보는 이들의 상상 속에서 유효하게 작동할 수 있다. 이 신기하고 흥미로운 현상이 내가 영화음악을 믿고 더 들여다보고 싶은 이유다.

- 관객으로서 가장 순수하게 전율한 영화음악이 있다면.

= 영화음악에서 버나드 허먼이나 제리 골드스미스를 이길 자가 있을까? 당신은 <에일리언>의 스코어만 따로 들어본 적이 있는지.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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