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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원의 노래가 끝났지만] 그래도 꽤 괜찮잖아?
윤덕원(가수) 2022-04-14

일러스트레이션 EEWHA

최근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일과는 ‘일기쓰기’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으로 보면 3주 정도 빠짐없이 일기를 쓰고 있다. 일기라고 해서 대단한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시간 순서에 맞추어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떻게 생각했고, 어떤 일을 했는지 메모장 한 페이지 정도를 기록한다. 스마트폰 메모장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된 사진을 찍었다면 첨부해놓기도 한다. 당연히 모든 일이나 생각을 기록하지 못하기 때문에 몇 가지 사실만을 기록한다. 아마 그 순간에 적었다면 기억날 일들도 잠들기 전에 쓰려고 하면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기록을 해놓아야겠다고 생각지 않았다. 어릴 때는 사소한 일상도 웬만하면 기억에 남아 있기도 했을뿐더러 뭔가 오래 남길 만한 가치 없는 것들을 굳이 적어두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자료가 있고, 그 속에서 내 이야기는 너무 하찮게 느껴지는데 굳이 한줄 더 보탤 것까지야. 어린 시절 일기장을 가끔 펼쳐 보며 미소 지을 수도 있겠지만 거기에서 얻는 기쁨에 비하면 이상한 것을 남겨놓았다가 당황하고 부끄러울 것 같은 마음이 더 크지 않은가?

얼마 전부터 일기를 소재로 한 에세이집이 많이 나왔다. 문보영 시인의 <일기시대>를 재미있게 읽었다. 정말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쓴 일기 같다고 느껴질 만큼 뜬금없이 시작하는 내용이 많았지만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이것은 일기라 재미가 있는 걸까? 아니면 다른 사람의 일기여서 재미있는 걸까? 내가 쓴 일기도 누군가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 문장력과 상상력이 뛰어난 누군가의 일기를 읽고 섣불리 안심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된다. 그래서 나는 아직까지 내 일기를 온라인에 공개하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

굳이 일기라고 할 것은 아니지만 SNS에 어떤 종류든 간에 글을 올리는 이들은 이미 이 장벽을 극복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나 세심하게 글을 다듬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읽을 만한 글도 많은 것 같다. 흠은 좀 덜 보이고 장점은 더 봐줄 수 있는 사람들이 글을 읽어주는 것도 있을 것이다.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사진 밑에 올릴 길지 않은 글을 올릴 때도 엄청나게 퇴고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써서 공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은, 예전 작업물들을 돌아볼 때 느끼는 부끄러움과 이어져 있는 것 같다. 간혹 예기치 못한 곳에서 그것들을 마주할 때면 나는 급격히 오그라든다. 그나마 정식으로 발표한 것은 덜한데, ‘예전에 ◯◯ 때 버전의 ◯◯ 음원 너무 좋아요’라는 피드백을 받으면 세상에 있는 인터넷 서버들에서 그 파일을 다 지워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것이다. 왜 나는 그런 것들을 그때 만들어서 이제 와서 고통을 받는 것인지.

하지만 가끔 ‘그래도 꽤 괜찮잖아?’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굳이 남들도 존재를 잘 모르는 과거의 흔적들을 꺼내어놓곤 한다. 레코드폐허에 참가했을 때가 그렇다. 레코드폐허는 음반을 주인공으로 하는 음악 축제인 서울레코드페어를 패러디한 행사로,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돌발적이거나 때로 함량 미달이더라도)을 가지고 나오는 행사였는데, 그때 나는 초기부터 작업했던 데모 음원을 시디에 복사해서 100장 정도 판매했다. 아, 그때는 왜 그랬을까. 뭔가 신나서 했던 것 같은데 과정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역시 일기를 써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가 아니면 글로, 음악으로 고정하기 어려운 생각들이 있는 것 같다’라고 결론내릴 수 있게 되었다. 글이나 음악, 혹은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은 마음을 이후에 다시 꺼내 고정하는 것은 어렵지만, 한번 고정된 것은 그래도 다시 불러올 수 있다(수정이 필요할 수는 있지만). 일기의 의미도 거기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거에 만들었던 데모곡들을 생각한다. 인천 영종도로 엠티 가는 길에 버스광고에서 보았던 점술가의 광고를 보고 즉석에서 만들었던 힙합곡을 그때 녹음해놓지 않았다면 나는 그것을 다시 꺼내어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들을 만하냐고 묻는다면….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장백산 쪽집게 도사>(미공개 곡) _윤덕원

사람이 태어날 땐 반드시 천기를 타고 태어나는 바

나는 대체 무엇이 잘못되어 이 고생을 하고 있는가

인간에 있어 길흉화복 흥망성쇠가 웬 말인가

내게 주어진 천기와 사주팔자 사이에 무엇이 있어

이리도 안되고 꼬이는지 왜 자꾸 아픈지

장백산 쪽집게 도사 700-사주사주

장백산 쪽집게 도사 정보료는 분당 1000원

(가사는 버스광고 문구를 거의 그대로 이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