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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얼굴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 소설가 황모과
조현나 사진 오계옥 2022-04-07

"현실적으로, 다만 나다운 환상을 가미한"

“여자아이 몇명쯤 사라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세상은 내 세계가 아니었다.” 황모과 작가의 장편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는 ‘백말띠는 드세다’는 편견으로 인해 임신 중단이 자행됐고, 역대 최악의 성비를 기록한 1990년이 배경이다. 사라진 친구들을 구하려 분투하는 진리와 자신의 삶을 위해 아이를 포기한 진리의 엄마 이영을 포함해 세대를 뛰어넘는 여성들의 연대가 세심하게 묘사된다. 예리한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를 투과하며 문제점을 짚어내는 작가의 특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황모과 작가는 2019년 <모멘트 아케이드>로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 첫 장편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를 출간했다. 이전의 단편들과는 어떤 점이 달랐나.

= ‘나 이제 산책은 잘하는 것 같아. 좀 달려볼까?’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아주 긴 마라톤을 뛴 기분이다. (웃음) 단편처럼 정서나 신 하나로 마무리할 수 없고 사건이나 구도, 반전 등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해야 해서 완전히 다른 장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어려웠지만 즐거웠다.

-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작품인가.

= 90년생 여성이 17살이 된 2007년, 그리고 1990년이 소설의 배경인데 그 시절의 문제들은 여전히 현재와 맞닿아 있다. 때문에 여성들이 직면한 현실에 관해 폭넓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고 여겨 시작하게 됐다. 더불어 남성들에 관해서도 논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젊은 남성들이 온라인상에서만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의 폭력은 현실에서도 이어지고 있으며 단순히 가상의 일부가 아님을 소설을 통해 짚어내고자 했다.

- 그래서인지 남자 캐릭터에 신경을 많이 쓴 게 느껴졌다. 여자아이들이 사라지는 사건을 계기로 변화하는 훈우, 크로스 드레서 예준, 자신의 장애를 농담으로 승화하는 계수가 눈에 띄었다.

= 정말 고심해서 썼다. 훈우의 경우 어떤 식으로든 진리와 손잡고 같이 헤쳐나가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다. 하지만 편집자와 상의하면서 희망적인 판타지보다는 리얼리티를 선택했고 현실적인 반영에 방점을 둬 최종적으로 현재처럼 변화를 주었다. 예준이와 계수는 크로스 드레서와 장애인 코미디언 등, 내가 일본에서 보고 겪은 경험을 반영해 묘사했다.

- 진리는 책임감이 돋보이는 인물이다. 사라진 여자아이들을 데려올 수만 있다면 자신은 없어져도 좋다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 특별히 정의감이 넘친다기보다 타인의 고통이나 재난을 마주했을 때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하고 떠올리는, 상식선에서의 행동을 보였다고 생각한다. 또 진리는 자신의 아빠가 이 사태와 연관 있지 않나. 자신과의 직간접적 연관성을 생각하면서 드러난 책임감이었다.

- 단편 <모멘트 아케이드>는 자매가,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는 10대 친구들과 모녀지간을 포함한 다양한 여성이 서로를 돕고 구원하는 서사다. 여성들의 연대를 그리는 것에 관심이 많은 편인가.

= <모멘트 아케이드>는 ‘세상은 왜 이런 식일까’ 하는 당시 나의 생각이 많이 반영됐다. 그럼에도,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동안 많은 위로를 받았던 순간에 관해 의지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여성들은 세대가 달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으로서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그렇기에 연대하자고 말하기 전에도 이미 정서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연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하고, 그런 인식이 작품에 드러난 듯하다.

- 일본에 거주하며 만화를 그렸고 IT기업의 AI부서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다. 다양한 길을 거쳐 SF작가로서 활동하게 된 경위가 궁금하다.

= 오랜 기간 일본에서 만화를 그렸으나 데뷔를 하진 못했다. 대신 <북두의 권>을 그린 만화가 하라 데쓰오의 사무실에서 어시스턴트와 통역을 하며 커리어를 이어갔다. 회사원으로 일하면서도 창작에 대한 욕구는 사그라들지 않았고, 작업해둔 만화를 텍스트로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걸 소설로 옮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SF소설들을 다양하게 접하고 습작하면서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 2~3년간 전업 작가로서 활동해보니 어떤가.

= 글 쓰는 건 여전히 즐겁다. 아주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써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며 생각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다만 소설을 쓸 때에는 구도와 구성,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해 연구하다 보니 고민이 더 깊어졌다.

-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보다 현실에 발붙인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인상을 받았다.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도 그렇고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소재로 한 <연고, 늦게라도 만납시다>, 일본의 의학 범죄에 관해 이야기하는 <니시와세다역 B층> 등이 이에 해당한다.

= 현실적인 이야기를 선호한다. 문단문학을 좋아하는데 그런 독서 경험이 반영된 결과라는 생각도 든다. 전에 만화를 그릴 때도 그랬다. 일상을 배경으로 하되 납득되지 않는 상황들에 주목했고 여기에 환상적인 이야기가 섞여 들어오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나의 세대 취향과 세대 감수성이 SF소설에서 종합적으로 펼쳐진 것 같다.

- 단편 <증강 콩깍지>가 시네마틱 드라마 <SF8> 시리즈로 제작됐다. 그밖에 영상화가 계획된 작품이 있나.

= <모멘트 아케이드>가 영화화될 예정이다. <82년생 김지영>을 각색한 김효민 작가가 시나리오를 맡아주셨는데, 읽고 ‘이건 되겠다’ 싶었다. (웃음) 드라마와 사람 사이의 관계성이 잘 보강되어 시나리오의 힘을 느꼈다. 어서 세상에 나와 관객들과 만났으면 한다.

- 현재 어떤 이야기를 구상하고 있나.

=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 내 인생에 개입하는 이야기, 자신의 인생이라는 책을 직접 만들어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근황을 조금 덧붙이자면 현재 <우리가 다시 만날 세계>는 중국 판권을 계약했고, <모멘트 아케이드>는 4월에 일본에서 출간될 예정인데 이를 계기로 다시 일본에서 활동을 시작해보려 한다. 소설을 통해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나고 싶다.

황모과 작가의 최근 SF픽 3

이종산, 이유리, 전삼혜, 이서영 소설집 <인어의 걸음마>, 연여름 소설 <리시안셔스>,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소설 <경계선>

황모과 작가의 루틴

회사원처럼 쓰는 게 목표라 하루에 8시간은 책상에 앉아 있다. 주로 오전은 자유롭게 보내고 점심 식사를 한 뒤 밤 10시까지 작업한다. 더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이 커서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