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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리뷰]

60년대 로맨틱코미디의 `이미테이션`,<다운 위드 러브>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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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혜리 | 200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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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ory



바바라 노박(르네 젤위거)은 여성의 행복을 위한 지침서 <다운 위드 러브>(사랑은 사절)의 저자. 여자도 남자와 똑같이 사랑에 얽매이지 않고 섹스를 즐기며 직업적 성공을 최대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남성지 <노>(KNOW)의 간판 기자이자 희대의 바람둥이 캐처 블락(이완 맥그리거)은 바바라가 촌뜨기 노처녀일 거라고 짐작하고 인터뷰를 펑크낸다. 그러나 베스트셀러 작가로 스타덤에 오른 바바라는 캐처를 공개 비난하고, 캐처는 반격에 나선다. 순진한 우주비행사로 가장해 그녀를 유혹한 뒤 ‘현대 여성의 우상’이 사랑에 휘둘리는 모습을 기사로 폭로하겠다는 계략이다. 한편 바바라의 열혈 담당 편집자 비키(사라 폴슨)와 <노>의 상속자인 소심남 피터(데이비드 하이드 피어스)의 데이트 게임도 고비를 맞는다.



■ Review

“대체 언제까지 전화만 할 거냐?” <묻지마 패밀리>의 명대사를 빌려 말하자면, 도리스 데이와 록 허드슨 커플을 마스코트 삼는 1960년대 초의 스크루볼코미디는 그렇게 요약할 수 있다. <필로우 토크> <꽃은 보내지 마세요> 같은 히트작으로 대표되는 섹스 혁명 이전의 청결한 로맨스들 속에서 베드신은 끝도 없이 뒤로 미루어진다. 대신 섹스를 에둘러 가리키는 암시와 대체물이 연신 난무한다. 바비 인형한테 뺏은 것 같은 옷가지를 걸치고 파스텔 색조로 꾸민 침실에서 아침을 맞는 주연 남녀는, 애무 대신 전화로 설전을 주고받으며 절정으로 치닫는다. <다운 위드 러브>는 이처럼 깐깐한 범절을 준수하며 만들어진 60년대 와이드스크린 로맨틱코미디의 작정한 ‘이미테이션’이다. <파 프롬 헤븐>이 1950년대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드라마를 놓고 시도한 복제 작업에 <다운 위드 러브>는 원본을 바꿔 도전한 셈이다.



<다운 위드 러브>가 계승한 청교도적 모럴은 성문제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스타일 복제에 임하는 페이튼 리드 감독과 제작진의 노동윤리 역시 청교도적이다. ‘이십세기 폭스가 제공하는 시네마스코프영화’라는 고색창연한 로고가 막을 열면 50년대의 타이틀 디자이너 솔 바스풍을 본뜬 오프닝 자막 시퀀스가 뒤를 따르고, 이어 테크니컬러로 채색된 뉴욕 시가지로 카메라가 미끄러진다. 화면은 전화벨이 울리기 무섭게 반으로 분할되고, 배우들이 택시에 오르면 뒷창에는 거리 풍경이 따로 영사된다. <다운 위드 러브>의 연인 바바라와 캐처는 그러니까 수십년 전 그려진 게임의 말판 위에서 움직이는 장기말이다. 어차피 전형을 복원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뻔뻔한 강수를 두는 편이 낫다. 바바라는 ‘사랑은 여성의 적’이라는 슬로건으로 현대 여성의 교주로 떠오른 스타 작가이고, 캐처는 007과 돈 주안의 우성 교배로 태어난 듯한 사나이다. 이들은 글자 그대로 당대 최고 바람둥이와 당대 최고 페미니스트의 명예를 걸고 허허실실의 줄다리기를 벌인다. 시트콤 출신의 작가 이브 알러트와 데니스 드레이크가 쓴 시나리오는 두 남녀에게 숨가쁘게 전략과 전술을 공급한다.






애초 사랑보다 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기획된 사랑영화 <다운 위드 러브>는 어쩔 수 없이 많은 영화의 추억을 일깨운다. 시대적 정서를 환기시키는 대목에서는 <캐치 미 이프 유 캔>이, 록 허드슨과 도리스 데이가 봤다면 기절할 대담한 자세로 전화 통화를 섹스 절차에 대응시킨 시퀀스에서는 <오스틴 파워>가 얼쩡거린다. 그러나 무엇보다 <다운 위드 러브>는 한없이 뮤지컬에 가까운 로맨틱코미디다. <시카고>와 <물랑루즈>를 경유한 배우 르네 젤위거와 이완 맥그리거는 모든 장면에 스텝을 밟으며 ‘입장’하는데, 언제고 책상 위로 뛰어올라 ‘달타령’이나 세레나데라도 한 곡조 뽑을 것 같아 내내 조마조마하다. 끝까지 미뤄지는 그들의 노래와 춤은, 유예되었던 로맨스와 나란히 최후의 순간 꽃을 피운다.



<다운 위드 러브>의 영화적 장점은 곧 최대의 약점이기도 하다. 두 남녀의 연애 소동은 가면무도회에 불과하다. 사랑을 회의하는 바바라가 캐처의 구애 공세에서 느낄 법한 불안이나 진정한 감정이 생성된 경위에 대해 영화는 그다지 정성껏 설득하지 않는다. 요즘 관객의 눈높이로 남녀의 위치를 바꿔 반전을 시도한 3막은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이지만, <어댑테이션>의 형식주의적 막판 뒤집기가 그랬듯 건조한 요식 행위로 느껴지는 것까지 막을 도리는 없다. 오히려 이야기로서 더 매력적인 쪽은 데이비드 하이드 피어스와 사라 폴슨이 호연한 ‘방자와 향단이’ 커플의 연애담. “당신이 동성애자라고 우리가 결혼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를 외치는 비키와 “나, 그녀에게 이용당한 기분이야”라고 투정부리는 소심남 피터의 캐릭터는 또 다른 로맨틱코미디영화의 주인공으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어쩌랴. 감독은 ‘사랑은 사절’이라고 제목부터 선언한 것을. 극중 여자들이 진짜 사랑을 나누는 대신 베어무는 초콜릿의 달콤한 맛, 그것이 <다운 위드 러브>의 맛이다.



글 : 김혜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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