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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연기를 하지 않는 법부터 배웠다”, <마법사들>의 장현성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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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다혜 | 사진 : 서지형 | 2006-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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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성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과 TV단막극 촬영 때문에 <마법사들>의 무대인사에 자주 참석하지 못했다. 인터뷰 전날 있었던 무대인사 때, 일본에서 영화를 미리 본 팬이 꽃다발과 선물을 가져왔었다는 말을 홍보담당자에게 전해 들은 그의 반응은, 언뜻 시큰둥하게 들렸다. “장동건이나 이병헌 이런 사람 주려고 가져왔는데 그냥 들고 가기는 뭣하고, 그런 거였을 거야.” 설핏 웃음이 스쳐가는 표정은 “여러 번 봤다는 관객도 있었다”라는 말에야 “야아, 신나네”라는 답으로 이어졌다. <마법사들>에 대해 그가 들었던 가장 인상적인 찬사는 “DVD가 나오면 책꽂이에 꽂아놓고, 쓸쓸할 때 맥주 마시면서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쓸쓸하지 않아도 늘 술을 함께 마시는 친구들과 찍은 <마법사들>은 세세한 작전이 없이 시작한 일이었다. “술 먹고 궁상 떨면서 그러잖나, ‘인생 뭐 있나’. ‘아마 우리는 60살, 70살이 되어서도 똑같을 거야, 술 먹고 여자 얘기나 하고… 우리 그렇게 살겠지?’ 그랬던 게 영화까지 간 거다.” 한 사람을 아는 데 ‘술과 오바이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그와 찻잔을 앞에 두고 만난 것은 어쩌면, 너무 간지러운 시도였는지도 모르지만, 그는 특유의 나지막하고 조근조근한 말투로 생각을 풀어나갔다.




-처음에 생각했던 <마법사들>은 어떤 영화였나.

=친한 친구랑 맥주 한잔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 같은 영화였다. 좋은 친구랑 술을 마실 때 새벽 4, 5시까지 술 마시면서 얘기하고도 돌아서면 ‘아차, 그 얘기를 안 했네’ 하게 되지 않나. 영화라는 것도, 사람들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고 손을 내미는 건데, 관객이 지금 우리처럼 더 듣고 싶고 자기 얘기를 하고 싶고 이런 상태가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다.



-송일곤 감독 작품들에서 보면, 영화 속 장현성이라는 사람과 자연인 장현성이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깃>에서는 이름도 똑같이 장현성으로 출연했다.

=서로 많이 알수록 더 많이 표현할 수 있는 면은 있겠지. 감금방에서 갇혀 있던 사람 얘기도 아니고, 일본에서 프로레슬링을 해서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오는 사람 얘기도 아니지 않나.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헐렁헐렁한 인간들 얘기니까. 그런 사람들이랑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건지도 모르겠다. (웃음)



-한번의 테이크로 영화 한편을 만든다는 건 연극과 유사할 것 같다. 상영되는 버전의 어떤 점이 다른 촬영분과 달랐는지 얘기해줄 수 있나.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오래전 일이라. 일반영화처럼 10초, 20초 찍어서 현장에서 모니터를 하는 식이 아니니까. 예를 들면, 1년 반 전에 했던 연극 공연 6회를 복기하라는 것은 불가능한 거다. 영화를 보고야 아는 거다.



-시간을 끊지 않고 한번에 간다는 점에서, 조명으로 시간의 이동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연극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라든가 조명의 영역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중요한 건 감정이니까. 연기는 편집이나 숏의 다름을 피의 흐름으로 바꾸어내는 작업이라서.



-<마법사들>의 경우, 촬영하는 동안 다들 숨죽이고 있어야 하니까 그때그때 감독의 피드백을 느끼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일단 촬영을 시작하면 배우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많고.

=연습 기간에 감독과 배우들과 계속 리딩을 하고 동선에 대해 얘기하면서, 여러 얘기가 오갔다.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96분이니까, 처음에 합의했던 감정, 리듬을 유지할 수 있도록 애쓴 것일 뿐이다.



-96분짜리 한번의 테이크로 찍는 영화기 때문에 생긴 감독의 특별한 지시사항은.

=대사 까먹지 마라, 촬영하다가 딴 생각 하지 마라, 아주 단순하면서 중요한 것들. NG 없다, 우리 돈 없다, 너희들 시간 더 못 맞추겠다. (웃음) 죽든 살든 여기서 하고 나가야겠다, 이런 것들.



-<마법사들>에 연주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영화를 위해서나 학전에서 활동할 때 음악을 배운 적이 있는 건가.

=원래 음악을 좋아한다. 오야지가, 김민기 선생님이 음악가이기도 했고. 김민기 선생님은 언어와 음악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 다시 태어나면 음악을 하고 싶다. 색소폰을 배웠었다. 연극배우를 직업으로 가진다는 게 불안했던 시절, 십중팔구 내가 배우를 해서 좋은 아들이거나 좋은 가장이기는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그때 한강 세모유람선 갑판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사람을 보고, 배 타는 것도 좋아하고 연주하는 분위기도 좋으니까 정 힘들면 저걸 해야겠다 하고 색소폰을 꽤 열심히 불었었다.



-김민기 선생님을 오야지라고 불렀는데, 단순히 선생님이라거나 연출가라는 느낌보다는 살갑게 좋아하고 따른다는 느낌이 든다.

=선생님 이전까지 내겐 선생님으로, 스승으로 느껴지는 분이 없었다. 나는 전형적인 관제교육 386세대고, 민주화운동 끝자락에 있었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청소년기를 보냈다. 나는 시대의 심벌로서의 김민기에는 관심이 없다. 대학 때 연극연출을 전공했는데 졸업과 동시에 공식적인 백수가 되는 첩경이었다. 그때 학전에 들어갔다. … 왜 그런 때 있잖나, 뭘 하고 싶기는 한데, 혼자 확신은 들지 않고, 누가 등이나 한번 슬쩍 떠밀어줬으면 좋겠다 싶은. 내가 배우를 할 수 있나, 연기에 재능이 있나 갈등할 때 선생님이 등을 살짝 밀어주셨다. 한 남자로서도 그렇고, 후배로 선배를 바라볼 때도 그렇고, 같은 극장의 작업자로서도 그렇고,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도 그렇고 선생님은 많은 깨달음을 주셨다.



-2003년에 공연한 연극 <보이체크>에서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무대가 15도정도 경사진 상태였는데 웃통 벗고 뛰어다녀야 했다. 내용과 역할도 극단적이었고.

=러시아 사람들이, 정말 지독하다. 사람이면 그 이상을 못한다는 걸 알면서 시킨다. 나중에는 오기, 악으로 하는 거다. 웃통 벗고 연기를 했는데, 무대가 양철판 조각을 못으로 박아서 채운 것으로 15도인가 20도 경사가 져 있었다. 예술의 전당 발레연습실에 실제 무대와 똑같은 무대를 만들어놓고 연습을 시켰다. 유리 부드소프라는, 세계적으로 지독한 인간이 연출을 했는데, 철판 위에서 넘어지고 미끄러지고… 온몸에 정말 칼자국 같은 상처가 나 피가 흘렀다. 나중에는 저 자식을 죽여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이체크>를 하면서 내가 배우로서 감정이 너무 일상적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일상성을 뚫고 한참 더 올라가 있는 어떤 것을 경험하게 해주니까.





-단편, 디지털영화들처럼 관객을 많이 만나기 힘든 영화에서는 주연도 꽤 했다. 연극에서도 마찬가지고. 연기하면서는 다 애정이 같겠지만 사람들이 반응하는 정도나 폭은 연극, 영화, TV드라마, 오락프로그램 모두 달랐을 것 같다. 반응이 달라지는 걸 보는 건 어떤가.

=처음에는 정말 기분이 X 같았다. 연극만 할 때는, 밥을 먹어도 <지하철 1호선>을 위해 먹는 거고, 술을 마셔도 <지하철 1호선>을 위해 마시는 거고…. 마음만이라도. 정말 그 작품 하나를 위해서 내 삶이 촘촘하게 얽혀서 움직이는 거였는데, 친구나 식구들은 매일 ‘너 뭐하냐?’고 묻는다. ‘나 공연하잖아’ 그러면 한달 있다 또 전화가 와서 ‘너 뭐 하냐?’라는 식이다. 영화에 나오면 전화가 먼저 온다. ‘야, 네가 출세할 줄 알았어! 역시 넌 뭔가 달랐어’라는둥. TV드라마 나오니까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초등학교 동창생에게 연락이 오더라. 그러다 얼마 전에는 캐나다에서 국제전화를 해서 자기가 내 생모라는 사람도 있었다. 부모님이 얘기를 들으시더니 ‘아니다. 아니긴 한데… 정말 네가 유명해지긴 한 모양이다. 그런 건 이정재 같은 사람이나 당하는 거 아니냐?’라고 하시더라. 오락프로는 이번에 처음 출연한 건데 반응이 크고 적극적이었다.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사람들이 원하는 건 따로 있고,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내 모습도 따로 있구나 생각했다.



-방은진씨와는 연기를 오래 같이 했는데, 방은진씨 연출 데뷔작에도 출연했다. 동료 관계였다고 해도 연출가가 되면서는 관계가 달라질 것 같다.

=은진이 누나와 95년부터 같이 공연했는데, 누나가 학전 멤버로 치면 가장 먼저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런데 <비디오를 보는 남자>를 하면서 누나가 많이 고민을 하더라. 나는 감독 지망생 방은진과 드디어 감독이 되는 방은진의 과정을 4, 5년간 다 봤다. 너무 안타깝고 가슴 졸였다. ‘저 사람이 저러다 죽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싶었다. 드디어 영화 들어간다고 하면서 역할 하나를 해달라기에 처음엔 더 잘하는 사람을 찾으라고 고사하기도 했다. <오로라 공주>에서의 연기에 누나가 만족스러워해서 기쁘다.



-일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 같다.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호흡도 그렇고.

=그게 항상 딜레마다. 돈도 벌어야 하고, 더 좋은 조건으로 일하기 위한 발판도 닦아야 하고…. 수많은 숙덕공론이 횡행하는 쇼비즈니스계에서 ‘나 여기 있다’ 해야 하는, 그런 거잖나. 정작 중요한 것은 왜 내가 이걸 하려는가의 문제인데, 결국 하다보면 다음엔 같이 못하겠구나 싶은 사람도 생기고. 굳은살이 조금씩 생기는 것 같다.



-내 것이 아닌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으로서 굳은살이 배긴다는 느낌, 자극이나 상처에 무덤덤해진다는 느낌이 걱정될 때는 없나.

=배우란 상처받기 쉬운 영혼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말을 읽은 적이 있다. 쳤을 때 상처의 밀도와 상태와 자극과 반응에 대해 가장 예민한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상황으로 나를 자극하는 사람들이 있다. (웃음) 그런 자극에는 굳은살을 만드는 게 오히려 속살을 연하게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감독은 그 반대의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품의 특정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더 배우를 자극하거나 하지 않나.

=유리 부드소프를 제외하고는 그런 경험은 못해봤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미리 많이 싸우고 상처 많이 주고, 그렇게 얻어진 것들을 가지고 촬영장에 나가는 게 편한 것 같다. 감정가지고 일하는 이에게 현장에서 감정적 충격을 주는 사람은 좋은 연출가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엔 연기를 어떻게 배웠나. 김민기 선생님 연기 지도가 강하고 꼼꼼한 편이었나.

=연기를 하지 않는 법부터였던 것 같다. 극 안에 살아 있기. 자기 목적에 충실하고, 욕망을 드러내기.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음악을 가지고 이야기한다는 말씀해주시기도 했고.



-눈에서 레이저 광선 쏘는 얘기를 했는데, 누가 봐도 ‘연기력!’이라는 느낌이 드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

=배우는 일차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 존재 자체가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아야 할 일이 생기니까 어쩔 수 없다. 일반적으로 도시적이고 우울하며 뭔가를 감춘 듯하며 염세적인 사람 역할이 많이 들어온다.



-지금 촬영 중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맡은 역할은.

=아버지 없는 집안에서 아버지 같은 역할을 해온, 우유부단한 듯하지만 강직한 역할을 해온 검사. 거봐, 또 그간 해온 것과 비슷한 역할이다.



-하지만 우유부단과 강직은 같이 붙어다니는 말은 아니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송해성 감독님이 같이 영화를 하자시기에 답을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감독님이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술이나 마시자고 하더라. (웃음) ‘왜 제가 필요하세요’하고 물으니까, 감독님이 ‘막판에 한방이 있는 역할이다, 큰 작용을 하는. 네가 제일 나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거기에 후딱 넘어가서 ‘네! 이 영화 잘될 거예요!’ 하면서 술 마시고 출연을 결정했다. (웃음)



-이번에 <지하철 1호선> 3천회 공연에 참가했는데, 오랫동안 몸담은 무대에 다시 서는 기분이 어땠나.

=너무 좋았다. 이유는 아주 단순했다. 거기 있을 때 제일 신난다. 그때 친구들이랑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유치하게 노는데 정말 재미있다. 다시 돌아갈 곳이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김민기 선생님은 친정이라고 말씀하시더라. 연극무대에서 재충전하고 그런 건 다 개소리인 것 같다. 그저 이걸 하다가 보니까 저걸 하고 싶고 그런 것에 충실한 거지. 거기 있는 게 좋으니까.



-오랜만에 김민기씨와 같이 작업했다. 그간 장현성씨도 많은 일을 경험했기 때문에 다시 만난 선생님에 대한 인상이 달라진 게 있었나.

=선생님에 대한 인상보다 날 다시 돌아보게 되더라. 옛날에, 선생님이 면담 중에 ‘장현성씨는 남자배우로서 가장 좋은 나이가 몇살이라고 생각하냐’고 물으셨다. 그때 스물네살이었는데, 서른세살이라고 대답했다. 서른셋이라는 나이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나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말했던 거다. 난 이제 서른일곱살이다. 지금 누가 물으면 마흔일곱이요, 이럴 거다. 선생님은 여전히 그때 내 나이의 친구들을 만나 같은 걸 물으실 텐데, 그렇게 여전히 나무처럼 계시는 게 참 좋다. 나도 비슷이라도 해지면 좋겠다, 후배들에게나 내 아이에게나.


글 : 이다혜 | 사진 : 서지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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