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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뤽 베송] ‘더 많은 것’ 아닌 ‘더 나은 것’을L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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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미 | 2009-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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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와 미니모이: 제1탄 비밀 원정대의 출정>의 뤽 베송 감독

한동안 제작자라는 크레딧으로 자주 소개되던 뤽 베송이 본연의 직업으로 돌아왔다. 흥미로운 건 그가 꾸려온 선물보따리가 액션과 판타지, 멜로와 드라마를 넘나드는 스타일리시한 극영화가 아닌 어린이를 타깃으로 한 전체 관람가 애니메이션이라는 사실이다. 아주 오래전 동심과 작별한 이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총 3탄으로 구상된 이 애니메이션은 그가 직접 써내려간 판타지 소설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것. 이쯤 되면 당신의 의구심도 이해할 만하다. <레옹> <제5원소>의 감독이 아동소설 집필, 심지어 애니메이션 연출이라니! 은퇴에 대한 뉴스들이 공공연히 떠돌면서 감독이라는 직업에서 영영 멀어진 듯 보이던 그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기에? 2010년까지 차례로 공개될 애니메이션 시리즈 중 첫 번째 에피소드이자 동명 소설 1, 2권을 토대로 만든 <아더와 미니모이: 제1탄 비밀 원정대의 출정>의 한국 개봉을 앞두고 뤽 베송과 필담을 주고받은 것 역시 비슷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아동 소설가,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신선하면서도 당혹스러운 직함을 추가한 이 노회한 프랑스 영화인은 자신의 세계를 어디까지 확장할 것인가. 당신이 아주 잘 안다 장담했던 뤽 베송의 또다른 면모는 나머지 소설 2권을 영화화한 <2탄 말타자르의 복수> <3탄 두 세계의 전쟁>을 모두 보고 나면 좀더 확실하게 와닿을 것이다.



-<제5원소>를 함께한 패트리스 가르시아의 스케치에서 감명받아 출발한 프로젝트고, 시나리오보다 책을 먼저 썼다더라. 책을 쓸 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나.

=패트리스 가르시아와 그의 아내 셀린느가 작은 요정들의 이야기를 TV시리즈로 만들자면서 짧은 대본을 들고 찾아왔다. 자신들의 유년 시절과 그들의 아버지의 어릴 적 기억과 아이를 관찰한 걸 종합해서 말이다. 나는 패트리스가 찍은 사진과 스토리를 읽고 영감을 얻어 오히려 영화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당시에는 주인공의 이름이 아더도 아니었는데, 스토리를 쓰면서 아더왕 전설을 일부 차용했다.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둔 건 아니다. 이런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는 약간은 미쳐야 한다. 다행일지 모르겠지만 시작 단계에선 표현의 어려움을 예상치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레이스를 끝내는 건 불가능하다.



-애니메이션 데뷔작이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연출한 이유는 뭔가.

=내가 먼저 선택한 건 이야기였는데, 그건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면 영화화가 불가능했다. 다시 말해 키가 2mm인 생명체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3D 분야에 탁월한 피에르 뷔펭과 작업을 하게 됐다. 영화를 만들 때 방식이나 형식에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가, 그것들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가가 언제나 먼저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이용하느냐는 그 다음이다.



-극영화 연출과는 아주 다른 작업이었을 텐데 어떻던가. 애니메이션 연출 경험이 전무한 데서 오는 어려움은 없었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3D애니메이션팀이 열심히 일했음에도 처음 2년간은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계속 기다려야 했다. 그러다가 그들이 아더의 모습을 담은 8초 분량의 클립을 보여줬다. 그때 처음으로 아더가 ‘살아 있는 걸’ 확인했다. 아기가 태어난 것 같았다. 감동적이었다.



-배경을 1960년대 미국으로 잡은 이유가 있나. 당시라면 당신의 어린 시절과도 겹치니, 자신의 실제 경험을 담고 있지 않을까 싶던데.

=내 유년 시절이 여러모로 반영된 건 사실이다. 개도 있었고, 할머니도 그렇고, 부모가 곁에 없었다는 것도. 영화에서 감성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요소들이다. 60년대 미국이라는 배경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프랑스의 50∼60년대는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된 것들을 재건하려는 시기였다. 60년대 프랑스인들은 가난에 시달리며 농사를 지을 뿐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에 반해 미국은 전쟁에서 비켜갔고, 진공청소기나 화려한 꽃무늬 옷들, 세탁기 같은 혁명적인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60년대 미국은 고급스러웠고, 미래 역시 밝았다. 재미있는 건 영화의 배경인 코네티컷주가 프랑스 서부와 아주 비슷하다는 점이다. 어쩌면 먼 옛날 두 대륙이 붙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두 나라의 나무들도 거의 똑같아서 코네티컷 장면을 노르망디에서 찍기도 했다.



-피부색에 관계없이 온갖 인종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선 다문화적인 가치관이 엿보이더라.

=내 영화에는 언제나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등장해왔다. 특별한 메시지를 의도한 건 아니다. 등장인물들 모두가 자연스럽게 행복한 결말을 맺길 원했다.



-액션신에서 당신의 전작을 떠올렸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들 역시 <제5원소>의 인물들을 연상하게 하던데.

=그런가. 캐릭터 디자인을 어떤 식으로 원한다고 주문하지는 않았다. 초기 단계에서 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방향을 내놓아 그림들이 무척 다르고 방대했다. 그게 이 영화의 창조성에 대한 해답이라고 믿는다.



-프레디 하이모어가 주인공 아더로 출연했다. 내털리 포트먼을 발굴하기도 한 당신이 무수한 아역배우들 중에서도 그를 캐스팅한 이유가 있다면.

=캐스팅은 완전히 고문이었다. 완벽한 아이를 찾기 위해 프랑스, 영국, 미국을 두루 여행했다. 나는 어린 영혼의 순수함은 물론 배우의 프로 의식까지 두루 갖춘 아이를 찾고 있었다. 영국 아이 세명과 미국 아이 두명 사이에서 고민했다. 그러다 어느 날 이 프로젝트와 관계없는 캐스팅 디렉터가 프레디의 사진을 보라고 제안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방금 끝낸 상태였는데, 사진 속의 아이는 무척 돋보였고 다른 후보들과 차원이 달랐다. 두말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정말 운이 좋았던 거지. 내털리를 처음 찾았을 때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그녀만큼 훌륭했다.



-마돈나, 스눕 독, 로버트 드 니로, 데이비드 보위 등 목소리 연기자들이 유명인들이다. 어떻게 캐스팅했나.

=스눕 독은 맥스 역에 완벽하게 들어맞아서 애초부터 그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의 성격과 음악을 좋아한다. 그가 맥스의 캐릭터를 보고 하겠다고 답해 자신감을 얻었고, 다른 아티스트들도 찾기 시작했다. 내가 운이 좋아서 한동안 알고 지내던 마돈나에게 제안했을 때도 그녀는 언제나처럼 신속하게 결정을 내렸다. 데이비드 보위는 순수한 의미에서 천재다. 그와의 작업은 꿈같았다. 맥스를 제외한 나머지 배역들은 디테일한 표현에서 연기자들의 특성을 얼마간 반영했다.



-특히 스눕 독은 카메라 9대를 이용해 움직임을 직접 촬영했다고.

=스눕 독의 제스처나 동작을 흉내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카메라 9대를 돌려서 카피한 그의 움직임, 특히 무사태평한 팔 동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바꿔보니 맥스는 스눕 그 자체라는 게 느껴지더라.



-<3탄 두 세계의 전쟁>이 후반작업 중인 걸로 아는데, 2, 3편에선 어떤 이야기가 이어지나.

=2, 3편은 1편보다 훨씬 쉬웠다. 첫 번째 에피소드를 완성한 40명의 스탭들이 이미 작업에 단련된 상태여서 퀼리티도 높다. 이후의 줄거리를 조금만 설명하자면 2편의 어드벤처는 아더가 미니모이 세상으로 오라는 메시지를 받는 데서 시작한다. 조그만 쌀알에 “도와줘!”라고 쓰여 있는데, 그건 함정이다.



-당신 아이들의 반응은 어떻던가. 어떤 부분을 재미있어하던가.

=엔딩 크레딧에서 미니모이로 변신한 내 모습을 무척 좋아했다.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엔딩곡을 정해놨는데, 음악에 비해 크레딧이 짧았다. 미니모이들이 모두 나와서 인사를 한 다음에도 음악이 남더라. 그래서 나를 미니모이로 만들어 넣기로 결정했다. 아이들이 그걸 보고 열광했다.



-더이상 연출을 하지 싶지 않다고 했는데, 여전히 그런가. 그렇다면 이번 애니메이션 시리즈가 마지막 작품이 되는 건가. 감독이 아니라면 작가나 제작자로만 활동할 생각인가.

=글을 쓰거나 제작을 하겠다고 말했지, 완전히 은퇴하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이 분야에서 30여년간 일하면서 10편의 영화를 연출했고, 그 점에 대해서는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다른 것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은 건 당연한 변화다. 사실 뭔가를 재창조한다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어떤 걸 성취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유의 친밀함이나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자연스러운 변화다. 당장 영화를 만들 필요나 그러고 싶은 욕망은 없지만, 1년 뒤에 어떤 사람이 대단한 시나리오를 들고 날 찾아온다면 영화를 만들고 싶을 거고, 당연히 만들 거다.



-당신이 제작한 <테이큰> <트랜스포터> 등은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제작자로 끌리는 작품은 어떤 것들인가.

=연출할 영화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가 그 영화의 감독으로 적절한지의 여부다. 내가 적당하지 않으면 다른 이에게 양보한다. 예를 들어 나는 액션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걸 좋아하지만 액션신을 찍는 건 힘들고 괴롭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기술적인 노력도 많이 기울여야 한다. 나는 인내심을 잃었고, 그런 과정을 조율하기엔 너무 늙었다.



-뤽 베송은 프랑스 상업영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당신이 제작한 영화의 감독들, 루이 레테리에, 피에르 모렐 등이 할리우드에 입성한 것만 봐도 그렇다. 당신의 행보에 따라 좌우되는 것들이 분명 있을 텐데, 앞으로 어떤 활동을 준비 중인가. 장기적인 목표는 뭔가.

=피에르 모렐이나 루이 레테리에 같은 감독들은 열정으로 충만하다. 그들에게 카메라를 쥐어주면 자정까지 일하곤 하는데, 그에 반해 나는 에너지가 달린다. 액션영화는 그처럼 에너지가 넘치는 이들이 연출해야 한다. 나는 건강하게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영화를 계속 만들고 싶다. 나는 인생을 즐기자는 주의다. 지금의 세상은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요즘 지구의 상태를 보면 우리는 더 많이 버려야 하고, ‘좀더 나은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내 목표도 그렇다. ‘더 많은 것’이 아닌 ‘더 나은 것’을 원한다.


글 : 장미 |
사진제공 크리스리픽쳐스인터내셔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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