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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안 안토니오 바르뎀 (Juan Antonio Bardem)

1922-06-02

기본정보

  • 원어명Juan Antonio Bardem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22-06-02
  • 사망2002-10-30
  • 성별

소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배우였던 부모에게서 출생. 농업공학을 전공하고 24세에 스페인 농업부의 영화 부서에 배치됨. 25세에 ‘스페인 영화 학원’에 입학하지만 그의 정치적 시각 때문에 끝내 수료증은 받지 못함. 기사, 비평을 쓰고 단편 다큐멘터리를 감독하며 생계를 이어가다 1951년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 영향을 받은 <그 행복한 커플>을 기점으로 영화감독으로서 인정 받기 시작. 1952년 <웰컴 미스터 마샬>로 국제적 명성 얻음. 1953년 <오브젝티보>라는 잡지 발행으로 수준 높은 비평과 상영 금지 처분 받은 영화 정보를 독자에게 제공했으나 발행 2년 만에 정부의 금지명령으로 출판 중단됨. 1955년 <어느 사이클리스트의 죽음>은 그의 국제적 명성에 쐐기를 박았지만 당시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체제에 대한 작품의 비판적 시각은 1956년 <러브메이커> 촬영 도중 바르뎀이 체포되는 계기가 됨. 그러나 <어느 사이클리스트의 죽음>이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상을 수상함에 따라 프랑코 정부를 향한 국제적 비난 여론에 힘입어 2주 만에 석방됨. 1958년 <죽음의 신> 칸영화제 출품. 카를로스 사우라 감독 등과 UNINCI라는 제작회사를 창립한 후 29년 동안 해외망명 상태였던 감독 루이스 부뉴엘을 스페인으로 다시 불러들여 <비리디아나>를 만들게 하지만, 가톨릭을 비판하는 영화의 풍자적 요소 때문에 상영금지 처분되고 UNINCI는 문을 닫게 됨. 1965년 <내성적이지 않은>, 1973년 <캡틴 네모의 수수께끼 섬>, 1987년 <어느 시인의 죽음>, 1993년 <젊은 피카소>, 1998년 유작 <결말> 등을 촬영. 1936년 스페인 시민 전쟁 이후 많은 영화인들이 군국주의적, 민족주의적 영화를 만들던 시기 바르뎀은 동시대 스페인 사회를 유머와 해학으로 비판하며 스페인 영화계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냈으며, 억압적인 스페인 사회로부터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문화 운동들을 부단히 주도하는 등 평생 자유를 위한 투쟁을 펼침. 2002년 간 질병으로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