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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연대기

For Vagina‘s Sake

2017 한국 12세이상관람가

다큐멘터리 상영시간 : 84분

개봉일 : 2018-01-18 누적관객 : 10,145명

감독 : 김보람

출연 : 여경주 김보람 more

  • 씨네216.33
  • 네티즌7.00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12번, 살아가면서 적어도 400번…..
귀찮은 ‘그날’의 이름은 대자연, 마법, 반상회 = ‘생리’!

‘여성의 몸’과 ‘생리’에 관한 범시대적, 범세계적 탐구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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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11)


전문가 별점 (6명참여)

  • 6
    박평식슬쩍 엿보고 깊이 깨닫다
  • 6
    이용철그걸 왜 볼까, 라고 묻기 전에 보고 말하기
  • 6
    이화정생리를 생리라 말하지 못했던 속고 산 시간들에 대하여
  • 7
    장영엽세상의 절반이 당당히 피 흘릴 권리에 대하여
  • 6
    김소희도구적 인간의 새로운 계보 쓰기
  • 7
    허남웅(특히 남성들이) 생리에 관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
제작 노트
Chapter 01. 생리 언어 탐구

여자들의 민감한 그날
세상엔 무수히 많은 ‘그날’이 있지만, 모두가 찰떡같이 알아듣는 대국민 공통어.

대자연이 오셨다
젊은 층에서 주로 사용하며, 영어 ‘mother nature’에서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여자친구 ㅅㄹ할 때
‘사랑’ 아니고 ‘생리’다. 자음 퀴즈도 아닌 것이, 온라인상에서 자주 보인다.

한 달에 한 번 여자는 마법에 걸린다
광고 카피로 히트를 치며 폭넓게 정착했다. 자매품은 ‘매직’, ‘마술’.

홍양아 왜 안오니~
생리를 의인화한 것으로, 때론 분노의 마음을 담아 ‘홍년’이 되기도 한다. 주로 맘 커뮤니티에서 쓰인다.

반상회가 열렸다
월 1번 치뤄진다는 의미이다. 50대 이상 여성들에게 익숙한 표현.

멘스 시작했니?
영어 ‘menstruation’의 줄임말. 우리네 할머니들이 자주 사용한다.

달거리 중이다
순우리말로 귀엽고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사실 ‘거리’는 병을 뜻한다.

월경 전 증후군
한자어 ‘月經’은 ‘너 월경하니?’ 등의 친숙한 입말보다는 문어체와 의학 용어로 쓰인다.

&
‘빨갱이’, ‘공산당이 쳐들어왔다’ 등 사회정치적 표현, 제주도의 ‘무등 탄다’, ‘말 탄다’ 등 지역적 표현을 더하면 생리를 칭하는 용어는 더욱 무궁무진하다. 사실 생리도 ‘생물체의 생물학적 기능과 작용 또는 그 원리’로 뭉뚱그려진 완곡한 표현으로 쓰이기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 이 또한 감춰야 하는 단어가 되었다. 홍길동도 볼드모트도 아닌데 왜 ‘생리’를 ‘생리’라 부르지 못해온 걸까?


Chapter 02. 생리 용품 탐구

*
이끼, 풀, 나뭇잎, 그리고 귀여운 토끼의 가죽. 아주아주 먼 옛날 여성들은 흐르는 피를 처리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사용했다. 문명 사회에 접어들어 이집트에서는 파피루스로, 로마에서는 양털로 탐폰을 만들었다. 또한 하와이 원시 부족 여성들은 양치식물로 탐폰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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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할머니는 목화솜과 무명, 광목 등으로 만든 천 생리대를 사용했다. 시간이 지나 흡수력이 좋은 거즈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밥을 짓고, 일을 하고, 학교를 갈 때 천 생리대는 쉴 새없이 흘러내렸다. 전 세계 여성들은 같은 고민을 했다. 이 흘러내리는 생리대를 어떻게 고정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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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한국 최초로 일회용 생리대 제품이 출시됐다. 직접 만들어 쓰는 천 생리대에 익숙한 여성들의 구매를 촉진시키기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광고 문구가 내걸렸고 톱스타가 광고 모델이 되었다. 그렇게 일회용 생리대를 쓰는 사람에게 세련되고 현대적인 여성의 이미지가 부여됐고, 저소득층 여성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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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탐폰은 일회용 생리대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다. 하지만 체내 삽입을 해야한다는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폭넓게 자리잡지 못했다. 1970년대 출시 당시에는 주로 승마와 테니스 등을 즐기는 부유층 여성이 마케팅 타깃이 되었다. 보다 보편화된 현재는 탐폰 삽입을 돕는 어플리케이터가 있는 형태가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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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드형 면 생리대는 가장 친숙하게 각광받고 있는 대안용품 중 하나이다. 과거에 비해 훨씬 얇고, 가볍고, 빨기에도 편하고, 모양도 예뻐졌다. 무엇보다 진짜 ‘순면 감촉’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화학 성분이 전무하기에, 일평생 ‘당연’하다고 여겼던 생리통이 완화되었다는 면 생리대 유저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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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 삽입형 생리용품인 생리컵은 의료용 실리콘으로 제작되며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미국, 프랑스 등에서는 대중화되어 있다. 이 획기적인 발명품은 1930년대 고안되었으나, 탱크 타이어 제작을 위해 모든 고무가 총동원됐던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공장 문이 닫혔다. 나의 질을 탐색하며, 나의 몸에 딱 맞는 ‘골든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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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인 소프트 탐폰(스폰지 탐폰)은 생리 중에 수영, 온천을 가도 생리혈이 새지 않고, 삽입 섹스가 가능하다. 스폰지 재질이기 때문에 몸 안에 들어가면 질 모양에 맞게 수축된다. 대신 자궁 경부 바로 아래까지 깊숙이 밀어 넣어야 한다. 탐폰과 사용법이 비슷하지만 스트링(줄)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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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소프트 탐폰은 탐폰이고 소프트 컵은 컵이다. 얇은 플라스틱 재질의 소프트 컵은 마찬가지로 일회용이며, 착용 시 수영, 온천, 사우나, 삽입 섹스가 가능하다. 게다가 피임도 된다. 꽤 두꺼운 고무 지지대로 인해 겁을 먹을 수도 있지만, 양쪽 면을 집어서 얇게 만들면 탐폰 어플리케이터보다 얇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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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식물로 만들어진 해면 탐폰은 재사용이 가능하고 인체에 무해하다. 바다에서 나는 스폰지를 잘라 탐폰으로 쓰는 것인데, 이 해면 스폰지는 화장할 때 메이크업 베이스를 바르는 용도로 많이 알려져 있다. 색 가공을 입히지 않은 해면은 밝은 갈색을 띠고 표백을 한 해면은 밝은 개나리색을 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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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메이드 탐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코바늘로 패턴을 만들어 실로 뜬 ‘울 탐폰’과 면을 사용해 가장 자리를 재봉틀로 박음질하고 스트링(줄)을 달아 쓰는 ‘면 탐폰’이다. 둘다 재사용이 가능하며 인체에 무해하다. 직사각형 형태로 제작해, 이를 돌돌 말아 체내 삽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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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위생 팬티(생리 팬티)는 다른 생리용품과 함께 쓰는 보조적인 역할이었지만, 그 자체가 생리대 역할을 하는 제품들이 출시돼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팬티 뒤판 허리까지 방수포와 흡수포를 부착해 생리혈을 바로 흡수하는 원리다. 자신의 생리양을 고려해 제품을 선택할 수 있다.


Chapter 03. 생리 다큐 탐구

국내 최초! ‘여성의 몸’과 ‘생리’에 대한 범시대적, 범세계적 탐구다큐
2017 극장가 다큐 흥행 열기 잇는 2018 최고의 화제작!

2018년 극장가에도 다큐 흥행 열기가 계속될 전망이다. <노무현입니다><공범자들><저수지 게임> 등 2017년 다큐 흥행작들이 정치, 사회적 이슈에 집중되었다면, 2018년에는 보다 젊고 참신한 화제작이 새해 포문을 연다. 국내 최초로 선보여지는 ‘여성의 몸’과 ‘생리’에 대한 범시대적, 범세계적 탐구다큐 <피의 연대기>가 그 주인공. 영화 <피의 연대기>는 제43회 서울독립영화제2017 새로운시선상, 제19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문화상, 제5회 인천다큐멘터리포트 2017 베스트 러프컷 프로젝트상, 제8회 광주여성영화제 개막작 선정의 영예를 안으며, ‘여성’, ‘다큐’, ‘독립’ 각각의 키워드에서 고유의 가치를 인정받은 최고의 화제작이다. 영화는 지금껏 ‘검은 봉지’와 ‘신비’의 영역으로 감춰져 온 생리 이야기를 재기 발랄하게 풀어내, 남녀노소 영화제 관람객들로부터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영화적 ‘재미’, 유익한 ‘정보’, 따뜻한 ‘의미’를 고루 갖췄다는 평이다. 이와 같은 폭발적인 관심은 생리 이야기를 국내 최초로 화두에 올린 영화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생리는 왜 부끄러운 일이 되었을까? 다르게 피 흘릴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피의 연대기>는 해외 취재와 방대한 아카이브를 통해, 기나긴 생리의 역사를 탐구하고, 대안 생리용품을 탐험하고, 세계적 변화의 바람을 대리 체험하게 해준다. 이에 적재적소에 배치된 애니메이션, 모션그래픽이 몰입도를 한층 높이며, 경쾌하고 리드미컬한 편집 구성으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영화적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여성들조차 몰랐던 생리 역사 ‘탐구’ X 대안 생리용품 ‘탐험’
1080 지구촌 여성과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속 시원한 생리 토크!

모두가 환호하는 공휴일의 ‘빨간날’과 달리, 귀찮고 감추고 싶은 여성들의 ‘빨간날’. 하지만 전 세계 모든 여성들은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12번, 이번 생에 최소 400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피를 흘린다. 그리고 그 피는 긴 시간 동안 사회 속에서 숨겨져 왔다. 영화 <피의 연대기>는 ‘생리 혐오의 역사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앞으로 생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각계각층 전문가와 인터뷰하며, 새롭고 유익한 생리 정보를 가득 담았다. 여성학자 박이은실, 역사학자 송요후, 종교학 공부 노동자 이민지, 산부인과 전문의 윤정원, 정신과 전문의 안주연, 문화평론가 손희정, 페미니스트 활동가 제니퍼, 위스콘신주 하원의원 멜리사 설전트 등이 각자의 전문분야 속 생리 이야기를 풀어놓았으며, 지난 2016년 5월 26일 ‘깔창 생리대’ 사건을 최초 보도한 국민일보 박효진 기자는 취재 당시의 후일담을 전한다. 뿐만 아니라, 10대부터 재사용이 가능한 생리용품을 소개해온 영국의 유튜브 스타 ‘브리’, 평생을 목화솜과 무명베로 직접 만든 생리대를 사용한 80대 여경주 할머니 등 다양한 연령, 성별, 인종, 직군의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한편 대한민국 수많은 여성이 그러하듯 평생 일회용 생리대만 써온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은 올해 최고의 화두인 대안 생리용품을 직접 탐험해 그 생생한 체험담을 전한다. 생리컵, 면 생리대, 울 탐폰, 스폰지 탐폰, 해면 탐폰 등 국내 여성들에게는 생소할 수 있는 생리용품이 대거 출연한다. 그 과정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대안 용품의 우월성’이 아닌, 그간 논의조차 되지 않았던 ‘선택권’의 확장이다. 한발 더 나아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의 몸과 친해지고, 알아가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처럼 영화 <피의 연대기>는 관객들에게 더 이상 감추지 않아도 되는 조금 특별한 ‘빨간날’을 선물할 것이다.

전 세계적인 변화의 물결을 생생하게 담아내다
글로벌하게 세상 밖으로 나온 생리 이야기, 개봉박두!

영화 <피의 연대기>는 전 세계적인 변화의 물결에 힘입어,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에 보도된 ‘깔창 생리대’ 사건은 많은 국민들의 안타까움, 그리고 미안함의 눈물을 자아냈다. 그리고 2017년 11월 24일, 국회에서 ‘청소년복지 지원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여성청소년에게 생리대 등 보건위생에 필수적인 물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이다. 뒤이어 11월 29일 환경부는 ‘제25차 환경보건위원회’에서 유해성 논란을 낳은 일회용 생리대의 ‘건강영향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소비자들의 불안과 꾸준한 문제제기가 일궈낸 성과이다. 한편 12월 7일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국내 최초로 미국 생리컵 제품의 수입을 허가했고, 국내 토종 생리컵 출시 준비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이미 젊은 여성 소비층 사이에서는 대안 생리용품에 대한 관심이 활발하다. 이 모든 변화는 불과 1~2년 사이에 이뤄진 것이다.
김보람 감독은 2015년 가을, 초경 때부터 탐폰을 썼다는 네덜란드 여성과의 만남을 계기로 <피의 연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자유롭게 ‘피 흘리기’ 위한 움직임이 거세게 일고 있음을 알게 됐다. 미국의 공영방송 NPR, 코스모폴리탄은 2015년을 ‘생리의 해’로 규정하고 있었다. 감독은 글로벌하게 세상 밖으로 나온 생리 취재기를 영화 속에 생생하게 담아내며 앞으로의 시사점을 남긴다. 그중 2016년 7월 13일, 빌 드 블라시오 뉴욕시 시장의 법안 서명식 연설은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전할 것이다. “6월에는 불가능했던 일이 9월엔 가능해진다.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신속한 변화가 필요하다. 교육은 물론 삶의 전반에 걸친 변화의 물결 중 하나이다.” 뉴욕시는 2016년 6월 통과된 법안에 따라 공립학교, 노숙인 보호소, 시립 교도소에 생리대와 탐폰을 무상으로 제공한다.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이닝 다큐의 탄생
남녀노소 필수 관람 무비! “Because it's 2018”

“생리 다큐를 사람들이 보겠어?” 김보람 감독이 영화제작 초창기에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그리고 불과 2년 사이, 생리는 우리 사회가 꼭 이야기해야 할 주제가 되었다. 변화의 속도는 빠르다. 이로써 영화제작에 대한 공감대도 확장됐다. 제작비 마련을 위한 펀딩에 엔젤 투자자들의 손길이 이어졌고, 각종 영화제 관계자들은 <피의 연대기>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영화를 완성해준 일등공신은 일하고 노동하고 피 흘리며 살아가는 수많은 여성 인터뷰이들이다. 카메라 앞에 서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에 감독은 “그분들께 빚진 마음이다. 출연을 허락해주신 이유는 보다 많은 분들이 ‘생리’에 대해, ‘여성의 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기획부터 촬영, 편집, 개봉에 이르기까지 약 2년의 시간을 거쳐온 김보람 감독은 영화 <피의 연대기>에 대해, “남녀노소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이닝 다큐”라고 자부했다. 그간 사회가 터부시해온 생리에 대해 보다 편안하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스토리텔링을 구축해갔고, 애니메이션과 모션그래픽 효과가 전하는 시각적 즐거움을 더했다. 이는 여성의 몸을 ‘12세 관람가’로 표현할 수 있는 영리한 선택이기도 하다. 이처럼 영화 전반에는 스스로를 ‘시네마’보다 ‘넷플릭스’ 키드에 가깝다고 밝힌 감독의 젊고 참신한 감각이 흘러 넘친다. 또한 따뜻한 메시지도 놓치지 않는다. 감독은 “직접 피를 흘리는 당사자인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각자의 의미를 찾아갔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나는 이 영화를 만들며 내 몸을 새롭게, 완전히 다른 시각에서 보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Chapter 04. 제작의 연대기(年代記)

본 자료는 <피의 연대기> 제작 과정과 영화에 담지 못한 내밀한 이야기를 풀어낸
김보람 감독의 책 『생리 공감 : 우리가 나누지 못한 빨간 날 이야기』의 내용을
일부 발췌해 재구성되었습니다. (행성B 출판사 / 1월말 출간 예정)

2015
샬롯에게 무언가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마침 외할머니가 만들어주신 생리대 주머니가 떠올랐다. 양로원에 계신 할머니는 짜투리천을 모아 작은 주머니나 식탁보 등을 만들었다. 그걸 보고 사촌 동생이 생리대를 담아 다닐 주머니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는 손녀들이 모두 쓰고도 남을 만큼 많은 주머니를 만들어주셨다. 노란 바탕에 하얀색 꽃무늬가 은은하게 퍼져 있는 보기만 해도 예쁜 주머니였다.
환송회 날 저녁을 먹은 뒤 조심스레 선물을 꺼냈다. 선물을 받아든 샬롯은 마냥 기쁘고 놀란 얼굴이었지만 얼굴 한편으로 당혹감이 스쳤다. 직사각형에 부피도 좁고 달랑 단추 하나만 달린 주머니를 어디에 써야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생리대 주머니야. 생리대 가지고 다니는 거.”
“생리대?”
샬롯의 의아한 표정에 나도 어리둥절해졌다. 생리대 몰라? 샬롯은 초경 이후 한 번도 생리대를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샬롯과 나는 1987년도에 태어났다. 그리고 둘 다 열한 살에 초경을 맞았다. 초경을 맞이한 첫 생리주기에 일회용 생리대를 써본 샬롯은 바로 뭔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생리대를 차면 더럽고 답답하고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을까? 샬롯은 어머니에게 물었고, 어머니는 자신의 탐폰을 꺼내주며 사용법을 일러주었다.
“그 뒤로 생리대는 한 번도 안 쓴 거야?”
“응, 단 한 번도.”

2016
내가 수진 씨를 만난 건 2016년 1월 겨울이다.

생리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 나 자신부터 여태까지 써본 적 없던 생리컵 같은 대안 생리용품을 써봐야겠다고 결심했지만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할지 막막했다. 유튜브에는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생리컵 리뷰를 올리고 있었지만 한국 여성의 후기가 필요했다. 2015년 12월 나는 수진 씨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원래 탐폰 사용자였던 수진 씨는 한 번의 탐폰 쇼크를 겪은 후 대안 생리용품을 찾아나섰다 생리컵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나는 수진 씨의 생리컵 후기를 읽고 내 첫 생리컵인 루네컵을 주문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 수진 씨의 블로그로 쪽지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저는 월경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김보람이라고 합니다. 반더킴 님의 블로그에서 생리컵 정보를 읽고 이렇게 쪽지 드립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혹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뵙고 여쭤보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요.’ 그렇게 수진 씨는 영화의 첫 인터뷰이가 됐다.

2016
여덟 명의 형제 자매와 그들의 어머니까지 모두가 고향에서 모이는 뜻 깊은 날이었다.

할머니는 팔십 대, 첫째 이모와 둘째 이모는 칠십 대와 육십 대였다. 막내 이모가 사십 대였으니 다양한 여성들의 생리 경험을 듣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었다. 할머니는 삼 년 터울로 첫째와 둘째, 셋째를 낳았다. 그 다음부턴 사 년 터울이었다. 열 여섯에 시집을 가 딱 한 번 생리를 치르고 임신을 했고 그 뒤로는 삼 년과 사 년 터울로 자식을 낳았다.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고 모유 수유를 하는 기간에는 생리가 나오지 않았다. 모유 수유가 끝나고 생리가 시작되면 다시 임신 기간에 들어섰다.
“나는 사실 생리는 많이 하지 않았거든.”
할머니는 무명베를 짜 옷을 만들어 입고 옷이 헤지면 천을 뜯어 생리대를 만들었다. 천 안에는 목화솜을 털어 만든 솜을 넣었다. 천만으로는 피를 흡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 쓴 생리대는 다시 뜯어 솜을 버리고 재사용 했다. 생리대가 너무 두꺼워 걸을 때마다 양쪽 사타구니가 쓸려 벌겋게 살이 일어났다. 밭에는 그런 생리대를 찬 여자들이 나와 일을 했다.

2016
무상생리대 운동을 이끌어온 페미니스트 활동가 Jennifer Weiss-Wolf로부터 답이 왔다.

7월 13일 오전 9시까지 자신의 사무실로 오면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맙소사. 그날은 다행히 아르바이트 프로젝트의 모든 일정이 끝나는 바로 다음날이었다. 나머지 촬영팀을 떠나보낸 뒤 나와 촬영감독은 맨하탄 한복판의 YMCA에 짐을 부렸다. 이층 침대 하나와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통로가 있는 하룻밤에 7만원짜리 방이었다. 다음날 Jennifer가 있는 뉴욕대 로스쿨 건물로 갔다. 내가 왜 지구 반대편에 있는 뉴욕까지 와서 그녀를 만나려고 하는지 이유를 들은 Jennifer가 말했다.
“너 오늘… 잭팟 터진 것 같다.”
Jennifer와 대화를 하기 전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내가 Jennifer 를 만난 7월 13 일은 뉴욕시에서 무상생리대 법안 발의를 통과하는 기념식을 갖는 날이었다. 뉴욕의 한 고등학교에 법안을 발의한 모든 관계자들이 모여 법안을 발표하고, 시장을 비롯한 입법자들이 법안에 사인을 하는 기념 행사가 있을 예정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심장이 터질 듯이 뛰기 시작했다. 용기를 내어 애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나 좀 데려가줄 수 있어?”

2017
“생리컵이 뭔지 아는 사람?”

누구도 그게 뭔지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던진 말이었지만 스물 한 명의 아이들 전부가 손을 들었다. 그 중 한 친구에게 묻자 “실리콘으로 만든 컵을 접어서 ‘그 안’에 넣어서 피를 흡수하는 게 아니라 담아서 버리는 거요.”라고 마치 누가 미리 가르쳐준 것처럼 정확히 생리컵의 용도와 기능에 대해 대답했다. 어디서 생리컵을 처음 봤냐는 질문엔 한결 같이 “페이스북 광고요.” “유투브에서요.”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내가 중학교 2학년일 때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인터넷으로 접했다. 이미 내가 생리컵 사용법을 배운 유투브 채널을 아이들도 이미 보고 알고 있었다. 전파력도 빨랐다. 같은 공간에서 하루 종일 지내는 아이들끼리 공유되지 않는 정보는 없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뭐지? 더 가르쳐줄 게 없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지?
이야기 거리가 떨어진 우리는 서둘러 챙겨간 생리 용품을 꺼냈다. 일회용 생리대, 면생리대, 탐폰, 해면 탐폰, 스폰지 탐폰, 일회용 생리컵, 실리콘 생리컵… 같은 생리용품을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만져보게 했을 때 아이들은 대체로 즐거워했다. 남자 아이들도 거리낌이 없었다. 질문 시간이 되자 가장 관심을 보이던 남학생 한 명이 번쩍 손을 들었다. 손에 든 무지개 빛깔이 그라데이션으로 들어간 동유럽산 생리컵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근데 이거 끼고 있다가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요?”
에이, 설마, 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세상엔 의외로 두 가지 구멍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2017
수많은 여성들이 필모그라피도, 경력도 없는 나의 촬영 제의에 응해주었다.

단지 이 프로젝트가 가진 목표와 의미에 동의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은 꼭 누군가에게 해보고 싶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도, 친구에게도, 단 한 번도 한 적 없는 이야기를 카메라 앞에서 해준 그녀들이 이 영화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목소리들이 내 삶을 변화시켰다. 한 사람의 진솔된 이야기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 서사는 없다. 이제껏 한쪽으로 치우쳐 해석되던 여성의 몸에 관한 이야기가 더 다양하고 더 큰 목소리로 들려져야 하는 까닭이다.

2017
<피의 연대기>를 만들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샤워를 한 뒤 몸을 닦으며 화장실 세면대 앞에 걸린 거울 속 나를 바라봤다. 사실 작은 가슴이 내 눈에 정면으로 들어오는 건 하루 중 이 순간 뿐이었다. 그날 나는 무언가 달라진 것을 발견했다. 가슴은 여전히 작았다. 사실 영화를 만들고 편집을 하며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더 작아진 듯 보였다. 그런데 나쁘지 않아 보였다. 심지어 좋은 쪽으로 ‘개성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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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내역

  • [제18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옥랑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