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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이 된 계기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
씨네21 온라인팀 cine21-digital@cine21.com | 2022-02-21

“사람이 숫자로 변할 때, 저는 공포를 느낍니다.” 아라키 신지 감독이 밝힌 ‘마을’의 시작과 연출 의도!



우리 사회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법한 오직 낙오자를 위한 은밀한 안식처는 신인감독 아라키 신지로부터 탄생했다. 영화를 하고 싶었지만, 생계를 위해 CF, 뮤직비디오 디렉터를 택했던 그는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보고 ‘인생에 다른 의미가 없다.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깨달았다고.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머릿수로 세는 행위가 소름 끼쳤다는 그는 ‘무서운 것이 있으면 영화를 찍는다’라는 어느 저명한 영화감독의 말을 듣고 ‘사람 숫자’에 대한 자신의 공포를 영화로 풀어냈다. “지금 이 나라의 사람들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즐거운 듯이 자신을 ‘사람 숫자’로 영락하려는 것은 아닌지. 자기 생각이나, 희망, 신념, 사랑 따위는 가볍게 내던지고 ‘사람 숫자’라는 덩어리에 쉬이 들어가 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합니다. 저는 이 그로테스크한 덩어리를 그리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고 그것을 ‘마을’이라는 공간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시크릿 카운터> 시나리오는 사회 문제를 가상의 유토피아와 연계한 획기적 발상과 완벽한 마을 뒤에 감춰진 비밀을 쫓는 숨 막히는 서스펜스를 높이 평가받으며 제1회 키노시타 그룹 신인감독상 공모전 준 그랑프리를 수상하고 제작의 기회를 얻게 된다. 심사위원은 “<시크릿 카운터>는 비슷비슷한 소재의 공모작 중 읽을수록 구미를 당기게 하는 작품이었다. 연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판타지나 사회파 어느 쪽으로도 가능한 시나리오인 만큼 감독이 어떤 세계관을 갖고 만들 것인지 매우 흥미로웠다. 우리 사회 바로 옆에 실존할 것 같은 판타지와 리얼리티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쫓는 감성에 마음이 들떴다.”라고 평했다.



일상에 첨가된 기이함 한 방울 “이런 곳, 실제로 있을지도 몰라”라고 느끼게 하는 것이 목표



장르는 디스토피아 판타지이지만 방마다 ‘바이블’이 있다는 점만 빼면 마을은 현재의 콘도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일상의 리얼리즘’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아라키 신지 감독은 “눈앞의 풍경에 작은 것 하나를 추가하는 것만으로 완전히 다른 세계가 된다. 예를 들면 지금 모두가 마스크를 하고 있는 모습을 찍어 과거로 보낸다면 ‘이건 도대체 무슨 픽션일까’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패드가 연결된 식당이나 곳곳에 세워진 전광판같이 영상적인 재미를 위해 추가한 요소들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현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입각점을 두고 있다.”라고 밝혔다. 영화를 보고 나왔을 때, 익숙한 장소가 어딘가 달라 보였으면 좋겠다는 것. 마을 주민의 모습 위로 ‘일본의 실종자 수 84,865명’, ‘PC방 숙식 난민 9,851명’, ‘완전 실업자 137만 명’ 등 실제 수치가 오버랩되는 장면 또한 어쩌면 마을이 실재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며 강렬한 잔상을 남긴다.


“일상에 요소 하나를 더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바꿀 수 았다는 점이 영화의 묘미”라 말하는 아라키 신지 감독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가뿐히 넘나들며 독창적인 세계를 정립시킨 데뷔작 <시크릿 카운터>로 오리지널리티가 희박해진 일본 영화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