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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프랑켄하이머 (John Frankenheimer)

1930-02-19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6.5

기본정보

  • 다른 이름John Michael Frankenheimer; 존 마이클 프랑켄하이머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30-02-19
  • 사망2002-07-06
  • 성별

소개

한국전쟁중에 중공군에 포로로 잡힌 미국인이 세뇌를 당하는 과정을 스릴러적 취향으로 연출한 이 작품은 내용이나 형식면에서 가장 중요한 현대 미국영화의 하나이자 기술적인 면에서도 파나비전 카메라의 진가를 제대로 선보인 혁신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의 최선이자 최후의 걸작이었는지, 이후에도 프랑켄하이머는 <그랑프리 Grand Prix>(1966) <프렌치 커넥션2 The French Connection II>(1975) 같은 화제작을 꾸준히 발표하지만 <만주인 포로> 같은 명성은 다시 얻지 못했다. 이처럼 영화계에서의 활동이 여의치 않자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면서 프랑켄하이머는 영화와 텔레비전을 오가면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한다. 특히 정치 스릴러물에 강한 장기를 보1990년대 말에 회고하는 존 프랑켄하이머는 왠지 이상하고 낯선 어감을 풍긴다. 1950년대 텔레비전에서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고 60년대에 그야말로 혜성같이 영화계에 등장하여 영화사에 남을 명작을 남긴 감독으로 텔레비전과 영화를 석권한 감독이라는 평판을 얻은 그가 지금 보이는 행보는 30년 전과 비교하여 함량미달인 듯 느껴지기 때문이다. 원래 존 프랑켄하이머는 테니스 선수가 되고 싶어했다. 그러나 영화 특히 로버트 미첨이 나오던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소년은 배우가 되기로 결심하지만 연출로 방향을 바꾼다. 특이하게도 프랑켄하이머가 영화를 배운 곳은 군대였다. 공군 홍보대에서 수많은 군 홍보 교육영화를 만든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밑천으로 제대 후 텔레비전에 진출해서 인기있는 시리즈들을 연출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플레이 하우스 90 Playhouse 90>은 새로운 오락으로 대중을 사로잡던 50년대의 대표적인 텔레비전 프로그램이었다.

TV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프랑켄하이머는 약관 스물여섯 나이에 <젊은 이방인 The Young Strangers>(1957)으로 감독에 데뷔했고 이 작품은 큰 흥행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참신한 시각적 스타일을 선보였다는 평판을 얻었다. 그뒤 다시 텔레비전에 복귀해서 작업을 하던 그는 62년에 <만주인 포로 The Manchurian Candidate>로 흥행과 비평면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영화계로 복귀한다.

이는 그는 가끔 스토리텔링의 허약함을 카메라워크로 보완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작품들은 볼 만한 그러나 뚜렷이 내세울 것이 없는 범작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심한 경우 <리비에라 Riviera> 같은 텔레비전영화에서는 알란 스미시란 이름을 쓰는 등 치욕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때의 이력 중 좀 특이한 것 하나는 동료감독들과 의기투합하여 HBO를 위한 시리즈물 <납골당의 미스터리 Tales from the Crypt>를 공동기획하고 그중 에피소드 하나를 연출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90년대에 들어와서도 프랑켄하이머는 크게 좋아지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특히 주연배우 발 킬머와의 사이가 안 좋아 해고당한 젊은 감독의 자리에 대타로 기용되어 끝막음을 해준 <닥터 모로의 D.N.A The Island of Dr. Moreau>(1996) 같은 영화는 일에 참여한 모양새도 나쁘고, 작품의 완성도 또한 과거에 얻은 그의 명성을 민망하게 만든다. 93년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모델로 나선 향수광고를 연출하고, 각종 극장용영화, 텔레비전영화, 미니시리즈 등 지금까지도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근작은 역시 범상한 액션물인 <로닌 Ronin>(1998). / 영화감독사전, 1999

2002년 7월,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시더스 시나이 병원에서 척추 수술을 받던 도중 뇌일혈로 숨졌다. 향년 72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