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테렌스 피셔 (Terence Fisher)

1904-02-23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5.9

기본정보

  • 다른 이름T.R. Fisher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04-02-23
  • 사망1980-06-18
  • 성별

소개

# 대표작 <드라큘라의 신부> <늑대인간의 저주> <오페라의 유령> <셔우드의 검> <고르곤>

영화판 사람들의 경력이야 원래 다종다양하지만 테렌스 피셔의 경우는 특히 이채롭다. 런던에서 태어나 학교를 마친 피셔는 열다섯살에 선원이 되어 배를 타고 대양을 누빈다. 이렇게 6년 동안 선원으로 일한 다음 피셔는 콘웨이의 선원훈련소에서 근무하다 다시 선박회사의 직원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중엔 엉뚱하게도 런던백화점의 쇼윈도 장식 담당자가 된다. 백화점에서 매장을 꾸미던 경험이 예술에 눈뜨게 해주었을까. 1930년 스물여섯살이 된 그는 다시 셰퍼드 스튜디오의 편집조수로 취직하여 한동안 편집일을 하다가 마침내 편집기사로 승진해 마흔이 넘도록 수많은 영화의 편집을 담당한다.

그가 감독이 된 것은 마흔넷이라는 꽤 늦은 나이였다. 랭크 오거니제이션 영화사에서 감독으로 데뷔한 다음 별로 주목받지 못할 일련의 영화들을 감독하던 그가 정작 감독으로서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었던 곳은 1952년부터 합류한 영국 저예산호러의 명문 해머프로덕션에서 일하면서부터였다. 해머프로덕션은 말하자면 미국의 로저 코먼 프로덕션과 같은 곳으로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호러, 괴물영화들을 초저예산으로, 가능한 빨리 찍는 영화사였다. 여기서 피셔는 초자연 현상과 괴담에 유독 강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수십편에 달하는 영화들을 가능한 싸게, 가능한 빨리 찍어나갔고, 그중에서도 <오페라의 유령>과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시리즈는 전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이 시리즈들의 첫편은 각각 <오페라의 유령 The Phantom of Opera> (1962) <프랑켄슈타인의 복수 The Revenge of Frankenstein>(1958) <늑대인간의 저주 The Curse of the Werewolf>(1961)로, 첫편이 히트하자 후속편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가령 <프랑켄슈타인> 시리즈는 30∼40년대 미국을 주름잡던 유니버설의 고딕호러에서 영향받은 혐의가 짙지만, 피셔는 여기에 폭력과 섹스라는 코드를 첨가해 그 강도를 더욱 높임으로써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50년대에 묘사할 수 있었던 섹스와 폭력은 <13일의 금요일>이나 <죽음의 날> 같은 현대 호러에 비하면 그야말로 약과지만, 그래도 당시의 대중에 미친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가령 피셔는 <드라큘라의 공포 The Horror of Draculra> (1958)에서 당시로는 처음으로 흡혈귀의 습격을 받아 유혈이 낭자한 희생자의 모습을 컬러로 보여주어 큰 충격을 던졌다. 피셔의 영화는 매사가 이런 식이었다. 화면은 물론 주제나 소재면에서도 항상 충격적인 것만을 쫓았다. 미라, 늑대인간, 드라큘라, 프랑켄슈타인, 돌연변이, 바스커빌의 개 등은 모두 그가 사랑하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피셔 영화에는 단순한 폭력과 공포말고도 분명 뭔가가 있었다. 그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운명이라는 저항할 수 없는 힘 앞에 쓰러져 가는 희생자였다. 일례로 피셔의 프랑켄슈타인은 무자비한 괴물만이 아니라 인간이 되고 싶어하는, 인간이 될 수 없는 운명 때문에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마는 비운의 존재였다. 고전 호러에 대한 이러한 피셔의 재해석은 많은 영화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쳤고, 현대 호러영화의 바탕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금도 세계의 많은 영화광들이 호러필름의 재창조자이며 컬트감독으로 그를 떠받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