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굿 셰퍼드

The Good Shepherd The Good Shepherd

2006 미국 청소년 관람불가

드라마, 멜로·로맨스, 미스터리, 범죄 상영시간 : 167분

개봉일 : 2007-04-19 누적관객 : 98,834명

감독 : 로버트 드 니로

출연 : 맷 데이먼(에드워드 윌슨) 로버트 드 니로(빌 설리반 장군) more

  • 씨네217.60
  • 네티즌6.96

1961년... 3차대전 위기...CIA 최대의 음모가 시작된다!

1961년 4월, 쿠바사태로 인한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
그러나, 더 큰 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1961년 4월 쿠바 반 혁명군 침공작전에 실패한 미국 정부는 CIA 내부 첩자로 인해 정보가 유출되었음을 알게 된다.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받은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CIA는 내부 첩자를 비밀리에 조사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CIA 초창기부터 첩보 업무를 담당한 베테랑 요원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에게 익명의 녹음 테잎과 흑백사진이 도착한다. 첩자를 알아낼 수 있는 유일한 단서인 이 증거물의 정체를 하나씩 밝혀나가면서 윌슨은 자신의 CIA 활동을 거슬러 올라간다.

1939년. 명문가 출신의 예일대 학생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은 비밀 서클인 Skull and Bones에 가입하면서 첩보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의 명석하고 냉철한 두뇌, 무엇보다 국가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은 미 정부 비밀요원이 되기에 최적의 요소였던 것. 윌슨은 이 단체에서 만난 클로버(안젤리나 졸리)와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가 임신하자 책임감으로 결혼에 이른다.
결혼식 직후 윌슨은 국가의 첩보요원으로 유럽으로 발령, 그곳에서 영국 첩보원들과 교류하며 점차 CIA 요원으로 자리를 잡아간다.
그러나, 그가 최고의 요원이 될수록 그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 가족조차도 불신하게 되고 이것은 결국 크나큰 희생을 불러오게 되는데…
more

별점주기

0
리뷰 남기기

포토 (51)


동영상 (2)

전문가 별점 (5명참여)

  • 8
    이동진로버트 드니로가 만든 <대부>
  • 7
    김혜리CIA 앞에 정관사가 붙지 않는 허망한 이유
  • 6
    박평식코폴라와 스코시즈에게 대충 배운 연출력
  • 8
    김지미굳건하게 지키려고 애쓸수록 텅 비어가는 국가, 신념 그리고 가족
  • 9
    유지나완벽한 촬영, 웰메이드 누아르를 계승한 첩보물
제작 노트
About Movie

대부>의 로버트 드 니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두 거장이 만들어낸 2007년 스파이 영화의 ‘대부’ <굿 셰퍼드>


영화 외에는 달리 자신을 표현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진정한 연기자’ 로버트 드 니로. 그리고 <대부> 시리즈로 전세계 영화계의 대부로 칭송 받는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이 두 거장이 2007년 충격적이고 놀라운 첩보스릴러 <굿 셰퍼드>로 의기투합했다.
영화 <굿 셰퍼드>는 1961년 실제로 일어났던 쿠바 피그즈만 사건을 배경으로 미국 CIA의 음모와 비밀을 그린 작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연기파 배우 드 니로가 1993년 <브롱스 이야기>로 감독 데뷔한 이래 두 번째 연출작으로 택한 <굿 셰퍼드>의 제작총지휘를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맡았다.
<대부 2>에서 배우와 감독으로 만났던 그들이 감독과 제작총지휘로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굿 셰퍼드>는 영화팬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평소 외교정책에 관심이 많은 드 니로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는 <굿 셰퍼드>를 통해 실제 정보기관을 보여주고 어떻게 익명의 인물이 세계를 통제하는지, 그 속에서 어떤 희생을 치르게 되는지를 보여주는데 주력했다.
액션 첩보스릴러와는 달리 정치적 관계 속에서의 한 사람의 삶에 초점을 맞춘 <굿 셰퍼드>는 오랜만에 영화팬들을 열광시킬 올해 최고의 서사 첩보극이 될 것이다.


실존 사건과 캐릭터를 바탕으로 한 리얼리티의 힘
20세기 냉전시대를 통해 21세기를 바라본다!


<굿 셰퍼드>의 주인공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은 1954년부터 1974년까지 CIA 첩보활동을 한 제임스 앤젤톤의 삶에 기초를 둔 캐릭터이다. CIA 탄생부터 몰락까지를 재조명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그려내기 위해 실제 인물을 모델로 캐릭터화 한 것이다.
여기에 1962년 전세계를 3차 세계대전 위기의 공포로 몰아넣은 쿠바 미사일 사태를 배경으로 하면서 영화의 흥미진진한 사실감은 배가 된다.
CIA의 첩보활동 중 가장 치욕적인 실패로 기록된 피그즈만 사건-쿠바 혁명정부에 대해 미국이 1961년 4월 반혁명군의 침공작전을 계획했으나 완벽하게 실패했던 이 역사적인 사건은 <굿 셰퍼드>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 사건을 둘러싼 CIA 와 KGB, 냉전시대의 미국과 소련의 양 첩보전이 전면적으로 등장하면서 영화는 더욱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를 제공한다.
과연 CIA 내부 첩자는 누구일까? 세계 최고의 강대국 미국의 이면은 무엇일까? 그 숨막히는 진실이 사실감 넘치는 인물들과 사건으로 그려진 <굿 셰퍼드>는 웰메이드 스릴러의 진수를 선사할 것이다.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 맷 데이먼과 안젤리나 졸리!
2007년 최고의 화제작으로 만났다!


연기력을 갖춘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맷 데이먼과 안젤리나 졸리가 2007년 <굿 셰퍼드>로 돌아왔다.
두 배우는 각각 <굿 윌 헌팅>, <처음 만나는 자유>로 아카데미를 수상하며 그 연기력을 일찍부터 검증 받은 스타들이다. 이들이 한 영화에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굿 셰퍼드>는 기대를 모으기에 충분하지만, 더욱 주목 해야 할 것은 이들의 변신이다.
<오션스 트웰브>의 미워할 수 없는 소매치기에서 최근 아카데미를 열광시킨 <디파티드>의 스파이 조직원까지 블록버스터와 작가주의가 강한 작품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맷 데이먼은 <굿 셰퍼드>에서 30여 년의 냉전시대를 통과하는 CIA 요원 에드워드 윌슨으로 대 변신했다. 전세계 흥행대작 본 시리즈(본 아이덴티티, 본 슈프리머시)에서 CIA 요원을 분했지만 <굿 셰퍼드>의 CIA 요원은 액션에 치중된 인물이 아닌, 철학적인 인물이다. 맷 데이먼은 대학 시절부터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 중년까지 30년이라는 세월을 통과하는 한 요원의 심리변화를 선보이며 그의 연기력의 최대치를 선사한다.
맷 데이먼의 아내 클로버 역을 맡은 안젤리나 졸리 역시 전세계 흥행작 <툼 레이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등의 ‘여전사’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인물을 열연했다. 클로버는 상원의원의 딸로 좋은 혈통의 부유한 가문에서 자랐지만 국가를 위해 자신의 가정을 희생해야 하는 비극적인 캐릭터. 안젤리나 졸리는 <굿 셰퍼드>로 흥행배우이면서 동시에 연기력이 탄탄한 배우로서의 가치를 다시 한번 입증하게 될 것이다.


<포레스트 검프><인사이더><알리><뮌헨>의 에릭 로스 각본!
아카데미가 인정한 배우와 스탭의 화려한 만남!


<굿 셰퍼드>의 배우와 제작진은 아카데미가 인정한 최고의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탄생되었다. 맷 데이먼, 안젤리나 졸리 외에도 윌리엄 허트, 조 페시, 존 터투로, 알렉 볼드윈, 빌리 크루덥 등 아카데미가 인정한 연기파 배우 모두를 <굿 셰퍼드> 한편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로버트 드 니로의 연출력과 최고의 배우들이 선사하는 뛰어난 연기력과 캐릭터는 영화의 리얼리티를 높이며 시종일관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강한 흡입요소로 작용한다.
<굿 셰퍼드>에는 배우들뿐 아니라 명성 높은 제작진들이 참여해 눈길을 끈다. <포레스트 검프>로 아카데미를 수상하고 <인사이더>, <뮌헨>을 쓴 에릭 로스가 각본을 맡았고, 아카데미상 수상자인 <잉글리쉬 페이션트>, 의 로버트 리차드슨이 촬영을, <잉글리쉬 페이션트>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앤 로스가 의상을 맡아 높은 완성도를 선보인다. 또한 프로덕션 디자인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던 <씨비스킷>, 의 재닌 오프월이, 편집은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아메리칸 뷰티>, <실비아>의 타리크 앤워가 맡았다. 이처럼 아카데미가 인정한 배우와 스텝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굿 셰퍼드>는 최고의 스릴러로 기대 받기에 충분하다.


Production note

1939년부터 1961년까지
시대고증을 통한 완벽한 재현으로 완성된 리얼리즘


<굿 셰퍼드>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 CIA의 탄생배경부터 1961년 쿠바 위기까지, 20세기 전세계를 냉전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시대를 담아낸다. 드 니로는 당시 시대의 리얼리즘을 통해 관객에게 미국의 이면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힘을 실었다.

로버트 드 니로는 <굿 셰퍼드> 고문인 전직 CIA 요원 밀턴 비어든과 함께 유럽과 아시아를 횡단하며 숨겨진 첩보활동 영역을 직접 체험하였다. 드 니로와 비어든은 아프가니스탄 변두리부터 파키스탄의 북서쪽 국경, 모스크바까지 광범위한 지역을 여행하며 드 니로가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정했다. 드 니로는 비어든과 함께 여행하면서 몇몇의 아마추어 요원들에게 맡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정보에도 접근할 수 있게 됐다. 비어든은 이렇게 말한다. “드 니로는 이제 아마 저의 세대나 한 세대 전에 CIA에 있던 사람들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맷 데이먼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좀 더 잘 알기 위해 비어든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가 진행되는 여러 장소를 답사하고, CIA에 관한 다양한 책을 읽는 등 많은 준비를 했다. 또한 CIA 요원이라는 경력이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 CIA를 창설했던 사람들의 가족들을 만나보기도 했다.

CIA 요원의 가정, 사무실, 의상 등 당시의 시대상을 그대로 반영한 프로덕션도 완벽 그 자체다.
에드워드 윌슨(맷 데이먼)과 클로버(안젤리나 졸리)의 거주지는 뉴욕시 근처에 있는 먼시 파크에서 촬영 되었다. 이 지역 건물들의 외관은 1940년대 이후 전혀 변하지 않아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로덕션 디자이너인 오프월은 CIA 사령부를 방문하여 모든 소품의 배치까지도 세심하게 준비했다. 완성된 CIA 사무실, 테크니컬 룸, 커뮤니케이션 룸 등의 세트장을 본 밀턴 비어든이 실제와 똑같은 그 모습에 놀랐을 정도이다. 세트 내부에 있는 무전기, 오픈 릴 테이프 레코더, 텔레타이퍼 등은 당시 사용되었던 것을 찾아서 그대로 사용했다.


8년간의 기획 제작!
뉴욕, 런던, 도미니카 공화국까지
3개국을 20세기로 되돌린 스펙터클 로케이션


로버트 드 니로는 <굿 셰퍼드>를 기획, 제작하는데 8년이라는 긴 시간을 쏟아 부었다.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리얼리즘을 최대한 살리려는 감독의 의지는 높았으나 그 준비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항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수십년 전 미국과 유럽을 넘나드는 첩보활동을 스크린에 사실적으로 옮겨놓는 일은 방대한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제작진이 사전 조사작업을 한 내용은 12권의 노트에 빼곡히 적혀있었고 조사분량만 총 6인치 두께 바인더로 묶어도 3권 이상이었다.
촬영 역시 광대한 스케일을 자랑하고 있다. 뉴욕, 워싱턴 D.C, 애디론댁 산맥에서 런던, 도미니카 공화국까지 대륙을 넘나들며 촬영하였다.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의 영국은 런던에서 촬영되었고 미국의 정부기관 건물은 워싱턴 DC에서 촬영되었다.


미국의 또 다른 비밀
Skull and Bones의 실체를 만난다


영화 속에서 에드워드 윌슨의 인생을 완전히 바꾼 Skull and Bones조직은 실제로 미국 예일대에 존재하는 비밀 서클이다.
현재까지 세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들이 수없이 거쳐간 조직이지만 그 실체는 철저하게 베일 속에 가려져왔다. Skull and Bones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회원들이 외부 사람들과 이에 대한 대화조차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조직 내부의 모습을 알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러나 <굿 셰퍼드> 제작진은 이 조직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다양한 노력 끝에 마침내 이 비밀조직을 그리는데 성공했다. 각본을 맡은 에릭 로스는 시나리오를 쓸 때 Skull and Bones의 회원이었던 친구에게 받은 정보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한번도 드러나지 않았던 조직을 표현할 수 있었다.
디자인팀은 브롱스 커뮤니티 대학에서 Skull and Bones 이미지에 꼭 맞는 굴드 도서관을 발견했고 그 단체의 모임에 사용되었던 오컬트 풍의 요소를 첨가해서 Skull and Bones를 재현해냈다.


X-File (Insider)

CIA (Central Intelligence Agency)

미국 중앙정보국. 1947년 트루먼 대통령 지시 하에 국가안전보장법에 의하여 설립된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기관이다.
1941년 진주만 사건 이후 미국은 다시는 이와 같은 치욕을 겪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국가안보를 위해 정보를 체계화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에 1946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신생 조직 신설을 지시했고, 1947년 미 의회에서 국가안전보장법이 통과되면서 오늘날의 CIA가 탄생한다.
1953년 강력한 반공정책을 표방한 아이젠하워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국장 덜레스의 활약으로 조직이 확대되기 시작하여 30여 년 동안에 능력•자금•조직면에서 세계 최대의 정보기관으로 발전했다.
1960년대까지 전세계를 무대로 활발한 비밀첩보활동을 전개해왔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언론과 의회의 공격대상이 되면서 활동이 위축되었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예산과 인원이 대폭 축소되었다. 특히 1973-1974년에 있었던 워터게이트 사건에 CIA 전직 요원이 연루된 것이 밝혀짐에 따라 그 위상이 크게 실추되었다. 1974년에 ‘정보자유법’이 개정되면서 미국언론기관들의 CIA 내막 폭로가 잇달았고, 그 때문에 다른 국가들이 CIA와의 정보협력을 기피했으며 활동이 부진하게 되었다.

1970년대 칠레와 과테말라 내정에 개입해 군부 쿠데타를 지원하는 등 라틴 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친 CIA는 이란에서는 축출당했던 팔레비왕을 재집권시키고 80년대 아프간 반군을 지원하여 소련이 아프간 전쟁을 지속하는 데 회의감이 들게 하는 등 전세계 곳곳에서 비밀공작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이러한 CIA 활동 이면에는 훨씬 더 많은 실패사례가 있는데 그 중 1961년 쿠바의 카스트로를 제거할 목적으로 수행한 피그스만 공격이 가장 대표적인 실패기록으로 남아있다.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승인하고 케네디 행정부하에서 실행한 이 작전은 1400명의 침공군 중 100여 명의 사상자를 내며 실패로 끝났고 미국의 대외적 위신이 크게 실추했음은 물론 CIA에 대한 여론 또한 최악으로 떨어지게 만들었다.

1981년 대통령에 취임한 레이건은 ‘정보원 신원공개금지법’ 등을 통해 국가기밀 및 CIA 요원의 활동을 보호하고 예산증대, 신규직원채용 등으로 CIA를 활성화하고자 노력하였다. 또한 1984년 의회는 ‘중앙정보국 정보법’을 통과시켜 비밀유지를 강화하고 CIA의 활동을 본격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 자료제공 • 국가정보연구회


쿠바 혁명정부와 제3차 세계대전의 위기

전세계적으로 5000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유발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으로 양분된 국제 질서는 1961년 쿠바에 수립된 혁명정부로 인해 3차 세계대전의 공포에 직면하게 된다.
1959년, 카스트로는 바스티아 정권을 축출하고 혁명정부를 쿠바에 수립하는데 성공, 사회주의혁명을 이행하기 시작한다. 1961년에는 미국과 국교를 단절하기에 이르게 되고, 이를 지켜만 보고 있을 수 없었던 미국은 1961년 중앙정보국(CIA)의 공작에 의해 카스트로를 제거할 목적으로 침공작전을 펼침과 동시에 미주기구(OAS) 로부터의 쿠바를 축출하는 등 군사 외교적 압력을 가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1962년 쿠바는 소련과 ‘쿠바무기원조협정’을 체결하고 소련의 미사일 도입을 시도한다. 쿠바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미국은 중거리탄도미사일의 발사대가 쿠바에 건설중임을 공중촬영으로 확인하며 미국 플로리다에서 불과 7.2킬로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쿠바에 대해 큰 위협을 느낀다. 이에 당시 미 대통령이었던 J.F.케네디는 “소련이 서반구에 대하여 핵공격을 가할 수 있는 기지를 쿠바에 건설 중”이라고 공포하고 쿠바에 대해 해상봉쇄조치를 취하며 직접적으로 맞선다. 3차 세계대전 위기라는 긴박감 속에서 소련은 미국이 쿠바를 침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약속한다면 미사일을 철거하겠다는 뜻을 미국에 전달하고, 미사일 철거를 이행함과 동시에 쿠바로 향하던 16척의 소련선단의 방향을 돌림으로써 위기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1961년 쿠바 미사일 사태 위기는 이렇게 해소되었지만 전세계를 3차 세계대전 위기에 몰아 넣으며 핵전쟁 위협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Skull and Bones

172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 예일대학에 있는 학생들의 비밀 서클. 1832년 윌리암 러셀이 예일대 재학 중 독일을 여행하면서 그곳의 비밀 종교단체를 본떠 만들었다. 당시 예일대학 졸업반 학생들 중 15명의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그들에게 SABS라 불리 우는 장학금을 지급하며 계속하여 친분관계를 유지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들은 매년 15명의 멤버들만을 배출해내며 현재까지 2천명이 넘는 멤버들이 있다. 조직 가입은 졸업반 멤버들이 가장 성적이 우수한 후배들을 지명하여 교수들의 추천을 받아 이루어지며, 가입하게 될 학생들은 그들의 숙소에 몇 일간 합숙하며 여러가지 테스트를 받게 된다. 또한 예일대 캠퍼스 내 ‘무덤(Tomb)’ 이라고 불리는 클럽 하우스에서 가입식을 갖는다. 이때 신참들은 해골이 그려진 가면을 뒤집어 쓴 선배들에 둘러싸여 벌거벗은 채 돌로 된 관 위에 누워 자신의 성적 편력을 고백하는 의식을 치른다. 졸업후에 멤버들은 그들의 선배들이 운영하는 회사나 정부기관에 입사하게 되며, 그들은 모두 전통을 이어 후배양성에 힘을 쓴다. 이 때문에 그들 사이에서는 인맥관계가 가장 큰 역할을 하며, 모두다 후에 큰 출세를 보장받게 된다.
윌리엄 테프트 대통령, 조지 H W 부시 대통령, 그리고 현재 미 대통령인 조지 W 부시 이렇게 3명의 대통령이 ‘Skull and Bones’의 멤버였다. 또한 소프트웨어로 세계를 제패한 빌 게이츠의 할아버지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타임지의 설립자 헨리 루스,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 윌리엄 도널드슨도 역시 이 조직의 회원. 미국 정부의 요직과 학계를 주름잡는 회원들은 이외에도 한 둘이 아니며 현재 학계, 재계, 정부 요직과 국제사회를 리드하는 조직의 간부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월스트리트가의 금융업를 리드하며 엄청난 재력을 바탕으로 국가사회에 필요한 많은 인재들을 지속적으로 양성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OSS (Office of Strategic Services, CIA 전신)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의 정보 기관으로 활동한 첩보기관. 1942년 6월, 루스벨트 대통령이 여러 정보수집기관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하며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했다. OSS는 2차 세계대전 동안 중국 마오쩌둥과 베트남의 독립 동맹군을 포함해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점령당한 지역들에서 진행되었던 저항 세력을 도왔으며 독일의 외교관 프릿츠 콜베를 첩보원으로 활동시켰다. 또한 첩보요원을 통해 작전지역에 관한 대외정보 수집, 역선전 역정보 등의 활동을 벌였다. 전시 비밀공작과 비정규전, 조사 및 분석을 임무로 한 OSS 활동은 트루먼 대통령의 지시로 1945년 종전과 함께 해체했으며 CIA의 전신에 해당하는 기관으로 역사속에 사라졌다.


KGB (Committee for State Security)

구 소련 시절에 활동한 비밀첩보 조직. 소련이 국가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과 외국인의 활동을 감시하고 통제하기 위해 설립했다. 1917년 12월 ‘전 러시아 반혁명 태업단속 비상위원회’라는 비밀경찰 기구로 발족하여 전 러시아 비상위원회라는 중앙집권적 행정조직으로 확대되었다. 냉전시대 첩보 및 방첩활동, 보안활동, 감시와 통제등 국가안보에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활동을 벌였으며 미국의 CIA와 더불어 치열한 첩보전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KGB는 순수한 군사정보는 담당하지 않으며, 종전 후와 스탈린의 집권 말년에 활동범위는 소련 블록 전체로 확대되었다. 위성국들의 경찰업무 총수역할을 하고 반공주의나 반소 또는 무소속 단체들에 침투하여 이들을 파괴함으로써 위성국들의 엄격한 순응을 강제했다. 세계 최대의 비밀경찰 및 첩보조직으로 그 전문적인 능력을 널리 인정받으며 공산당과 소련 정부 내에서의 그 권력과 영향력은 상당했지만 1991년 해체되었다.

- 자료제공 • 국가정보연구회
more

배우와 스탭

감독

출연

더 불러오기

수상내역

  • [제57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 은곰상:특별언급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