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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와일더 (Billy Wilder)

1906-06-22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

/

네티즌7.7

| 수상내역 1

기본정보

  • 다른 이름Billie Wilder
  • 직업감독
  • 생년월일1906-06-22
  • 사망2002-03-27
  • 성별

소개

빌리 와일더는 1906년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빈의 대학을 졸업한 후 신문기자 생활을 하던 그는 베를린으로 옮겨서 여기서도 신문기자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영화에 흥미를 느끼면서 1929년 <일요일의 삶들>이라는 영화의 각본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치가 발발하면서 유대인인 와일더는 1933년 파리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여기서 그는 <나쁜 피 Mauavaise Graine> 단 한편의 작품을 공동 감독한 후, 나치의 세력이 커지자 곧장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독일어로 각본을 써서 영어로 번역한 각본을 사려는 미국영화사는 세상 천지 어디에도 없었다. 2년 동안 단 한편의 영화각본도 팔지 못하자 그는 결국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비록 평생 독일식 악센트를 고치지는 않았지만, 마침내 1937년 그는 파라마운트에 각본을 팔 수 있게 되었고, 불과 일년 후 자신이 꿈에 그리던 영웅이자 당대의 코미디감독 에른스트 루비치의 각본을 쓰게 되었다. 이때의 각본으로는 <푸른수염의 8번째 아내 Bluebeard’s Eighth Wife>(1938), <니노치카 Ninotchika>(1939) 등이 유명하다. 42년 산뜻한 코미디인 <다수와 소수 The Major and the Minor>로 인상적인 데뷔를 하게 된 와일더는 이어 위트있는 전쟁드라마 <카이로로 가는 5개의 무덤 Five Graves to Cairo>(1943)으로 흥행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굳히게 된다.

그리고 레이먼드 챈들러와 팀을 이루어 대표적인 필름누아르의 하나인 <이중 배상 Double Indemnity>(1944)과 알코올중독자의 고통스런 자화상을 그린 <잃어버린 주말 The Lost Weekend>(1945)을 감독하게 된다. <잃어버린 주말>은 그에게 아카데미 감독상과 각색상을 안겨준 수작이었고, 이어 50년 <선셋 대로 Sunset BLVD>(1950)를 만듦으로써 초기 필름누아르의 걸작들을 차례로 완성해냈다. <선셋 대로>는 과거의 영광에 살아가는 노여배우의 탐욕과 출세를 하기 위해 돈이 필요했던 젊은이의 이기심과 허영이 빚어내는 일종의 치정극 같은 것이었다. 글로리아 스완슨과 그녀의 충실한 하인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이 만들어낸 음습하고 이상한 대저택의 분위기와 그곳으로 유인되어가는 젊은 각본가 윌리엄 홀덴을 통해 관객들은 클라이맥스로 치달을수록 할리우드라는 거대한 허영덩어리의 이면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비장의 술수 Ace in the Hole> (1951)의 상업적 실패로 그의 미국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음울한 수법과 저변에 깔린 냉소주의는 막을 내리게 된다. 대신 와일더는 더 은근하면서도 교묘하게 표면의 웃음을 통해 자신의 냉소를 감추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이후 그의 대표적인 흥행작들은 대부분 코미디에서 그 빛을 발하였다.

이러한 영화들 중 시발점은 <제17 포로 수용소 Stalag 17>(1953)부터였다. 이 작품은 2차대전중 독일군에 의해 붙잡힌 미국인 전쟁포로에 관한 브로드웨이의 히트작에 기초하였다. 영화의 주된 웃음은 완전히 자신의 이익에만 눈이 어두워서 심지어 독일군들에 협력하려 하는 기회주의자 윌리엄 홀덴의 행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사브리나 Sabrina>(1954)는 호화스러운 롱아일랜드땅에서 벌어지는 신데렐라 이야기이다. 운전사의 딸 오드리 헵번과 그녀의 아버지를 고용한 두명의 부자 형제간의 연애담은 근본적으로 미국사회의 계급상의 차이점들과 낭만적 꿈에 관한 기분 좋은 웃음을 선사한다. 조지 악셀로드의 희곡에 기초한 <7년 만의 외출 The Seven Year Itch> (1955)은 대체적으로 계급차이 문제를 무시하고 돈조차도 아무런 목표가 아니다. 멋있고 좀 모자란 듯 보이는 금발 미녀 마릴린 먼로에 대한 한 남자의 7년간에 걸친 성적 욕구와 환상, 남편으로서의 죄의식을 풍자한다. <하오의 연정 Love in the Afternoon>(1957)에서는 똑같은 종류의 이야기가 파리로 자리를 옮겨 벌어지는데, 젊은 여성이 나이든 미국인 플레이보이와 사랑에 빠진다. 이 세편의 낭만적이고 성적인 함의가 가득한 영화들은 그 수법과 웃음의 방식에서 대단히 루비치적인 것이었고 와일더 스스로도 이 점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후의 세편의 희극들 <뜨거운 것이 좋아>,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하나, 둘, 셋>에서부터는 루비치의 영향에서 벗어나면서 지극히 와일더적인 풍자세계를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에는 각본가 I. A. 다이아몬드의 힘이 컸다. 둘은 씁쓸한 필름누아르적인 성격에 루비치의 희극에서와 같은 삶의 즐거움을 혼합시켰다. <뜨거운 것이 좋아 Some Like It Hot>(1959)는 갱영화적인 요소와 떠들썩한 소극, 코미디의 빠르게 진행되는 대사, 복장도착들을 결합시킨다. 이것은 미국의 자본주의와 성차에 대한 비평이며, 혼란된 정체성의 문제는 관객을 믿기 어려운 웃음의 도가니로 빠뜨린다.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 The Apart-ment>(1960)는 이러한 비평적 경지가 더욱 신랄해진 작품이었다. 보험회사 회계원인 잭 레몬은 회사 간부들에게 자기 아파트를 혼외정사의 장소로 사용하게 허락한다. 그는 자신의 아파트 이용자 중 한사람인 인사과장이 자신이 은근히 좋아하던 엘리베이터 안내원 셜리 매클레인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 그런 것들은 승진을 위해 참아온 사소한 불편거리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의미없는 보험 업무, 사무실의 관료적인 위계질서, 인간에 대한 조정술, 성적인 유희 등은 관객으로 하여금 편안히 웃을 수만은 없게 하는 구석이 있다.

와일더의 풍자의 가시는 그의 가장 신랄한 풍자극 <하나, 둘, 셋 One, Two, Three> (1961)에서 농축되어 나타난다. 이 영화는 같이 일하는 간부진들과 섹스, 사장에 대한 아부 등에 관한 것이지만, 전작들과 좀더 국제적인 규모로 정치를 풍자한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똑같이 놀림을 당하고 영화 속의 사람들은 모두 자기 중심적이며, 돈에 눈이 어둡고, 영화는 한결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처럼 와일더의 등장인물들은 때로 매우 웃음을 유발하지만 부도덕한 사람들이기도 했다. <제17 포로 수용소>의 윌리엄 홀덴이 그러하고, <뜨거운 것이 좋아>에서 여장한 잭 레몬에게 끝까지 눈독들이는 탐욕스러운 백만장자가 그러하다. 와일더의 희극은 염세적이며, 이 어두운 희극들이 범죄나 멜로드라마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재임 기간 동안 성공을 거둔 것을 생각해보면 매우 의미심장한 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동시대의 다른 감독들 조지 쿠커나 조지 스티븐슨이 보여주지 못했던 미국의 어떤 면을 드러내고 있으며, 풍자와 비유로써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특별한 시각을 제시하였다.

1970년대는 와일더에게는 어려운 시기였다. 이전에도 코미디물만을 만든 것은 아니었으나 영국에서 만든 <셜록 홈스의 사생활 The Private Life of Sherlock Holmes>(1970)의 흥행도 실패로 돌아가고, 이어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배우 잭 레몬과 함께 만든 코미디 <아반티! Avanti!>(1972)에도 관객들과 비평가들은 움직일 줄 몰랐다. 와일더는 점점 자신이 새로운 할리우드 분위기에서 감독을 맡기 힘들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마치 <선셋 대로>의 속편격인 것처럼 보였던 은퇴한 여배우의 이야기인 <페도라>와 잭 레몬, 월터 매튜 콤비의 <버디 버디 Buddy Buddy>(1981)로 다시 한번 와일더는 옛날의 영광을 위해 노력했지만, 되돌아오는 비평은 ‘와일더가 옛날의 감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다.빌리 와일더는 은퇴했고, ‘작은 미술관’이라고 불릴 정도로 정열을 쏟은 미술품 수집과 자서전을 쓰는 것으로 말년을 보냈다. 그는 언제나 예의바르고 웃는 얼굴이었지만 절대로 타협하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아내인 여배우 오드리 영이 2년 동안 넥타이를 맬 것을 설득했지만, 결국 오픈 스포츠 셔츠와 모자가 와일더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