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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에 쓰이는 물건일수록 예쁘게 만들어야 하는 법이다.” 정교하게 다듬어진 토끼 전등에는 저주가 하나 걸려 있다. 일면 단순해 보이는 이 저주가 어떤 방식으로 상대를 집요하게 옭아매는지, 정보라 작가는 간결하고 담담하게 저술한다. 지난 4월7일 정보라 작가의 <저주토끼>가 2022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한국 작가의 소설이 최종 후보에 노미네이트된 것은 한강 작가의 <흰> 이후 4년 만이다. 그는 현실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되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복수의 방식을 빌릴지언정 냉철함을 잃지 않고 예리하게 각을 세워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작가의 말에서 정보라 작가는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쓸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 말엔 “화가 나는 것도, 슬프고 억울한 것도, 너의 잘못이 아니니 화를 내도 괜찮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화를 내도 괜찮다며 복수하고, 투쟁하
'저주토끼' 정보라 작가 "복수를 행하는 과정을 쓰는 게 특히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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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현대미술가 또는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한다. 내러티브가 강한 영상 작업을 통해 다양한 이주 주체들의 이야기를 사변적 픽션이라는 특유의 방법론으로 만들어오고 있다. 제8회 디아스포라영화제 ‘디아스포라의 눈’ 섹션에 객원 프로그래머로 초대됐을 때 <겟 아웃>을 상영한 후 흑인 디아스포라에 대해 강연했다. 이후 단편영화를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이동윤 영화평론가.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한국 퀴어영화에 관한 연구에도 참여했다. 2019년 모더레이터를 맡으면서 디아스포라영화제와 처음 인연을 맺었는데, 그간 참여했던 영화제 중 가장 평화롭고 따뜻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영화제에 먼저 영화비평 워크숍을 제안하면서 2020년부터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하고 있다.
이혁상 <종로의 기적> <공동정범>(공동 연출)을 만든 독립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5회부터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정지은 문화평론가. 디아스포라영화제 자문위원. 영화
우리 모두가 디아스포라다: 김아영 현대미술가, 이동윤 영화평론가, 이혁상 디아스포라영화제 프로그래머, 정지은 디아스포라영화제 자문위원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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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스포라영화제의 사회자로 참여한 지 올해로 5년째다. 영화제와의 첫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 2018년에 프로그래머인 이혁상 감독이 “선배님이 영화제 사회를 봐주시면 좋겠다”며 전화했다. 사실 조금 의외였다. 아나운서가 아니라 왜 내게 연락을 줬을까. 나중에 이혁상 감독에게 물어보니 “이런 대외 활동을 통해 선배님이 힘내셨으면 해서요”라는 답이 돌아오더라. 그 뒤로 매년 참석하면서 디아스포라영화제에 각별한 애정이 생겼다.
- 종신 사회자가 되기로 했다던데 합의된 내용인가. (웃음)
= 그렇다. 불러주면 당연히 해야지. (웃음) 좋아하는 영화제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건 내게도 굉장히 보람 있는 일이다.
- 개막식은 영화인과 관객이 모여 축제의 시작을 알리는 자리다. 그 순간을 함께한다는 것, 사회를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
= 단순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사실 디아스포라영화제는 그 이름부터 좋았다. 이주민이라는 게 단순히 다른 지
디아스포라영화제 사회자 배우 조민수 "영화제의 의미와 나의 의무를 되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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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광역시영상위원회(이하 인천영상위) 위원장으로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한해 동안 위원장으로서 활동한 소회가 어떤가.
= 굉장히 뜻깊다. 영상위원회를 막연히 보수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생각보다 훨씬 창의적인 집단이고 직원 개개인이 가진 능력들이 대단하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조직의 방향성을 다르게 가져가려 한다. 과거에는 주로 뒤에서 창작자를 지원하는 형식이었다면, 올해는 앞에 서서 기획하고 제시하는 집단으로 거듭나려 한다. 인천영상위의 재산은 조직원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제대로 보상받으며 일할 수 있도록 고용 안정화를 추진하고 있다.
- 디아스포라영화제가 10회를 맞이했다. 예년과는 또 다른 각오로 축제를 준비하고 있을 것 같다.
= 디아스포라영화제는 이혁상 프로그래머를 포함해 직원들이 정말 모든 걸 쏟아서 준비한다. 그렇기에 적은 예산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천시에서 영화제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기 때문
이원석 인천광역시영상위원회위원장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친근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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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인천에서 제10회 디아스포라영화제가 개최된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지난 2년간 규모를 축소하고 CGV인천연수점으로 장소를 옮겨 개최해야 했으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다시 인천아트플랫폼으로 거점을 옮겼다. 올해는 5월20일부터 24일까지 5일간 개막작 <빠마(Perm)>를 비롯해 전세계 31개국에서 출품된 총 63편의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씨네21>은 디아스포라영화제의 10주년을 기념해 영화제의 지난 역사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먼저 디아스포라영화제를 주관하는 인천광역시영상위원회의 이원석 위원장, 2018년 이후로 개막식 사회를 진행한 조민수 배우를 만나 영화제에 대한 이들의 포부와 애정에 관해 들었다. 또한 영화제의 살림을 맡아온 이혁상 프로그래머와 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김아영 현대미술가, 이동윤 영화평론가, 정지은 디아스포라영화제 자문위원과 함께 디아스포라의 주제의식, 그리고 영화제가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해
디아스포라영화제 10주년 기념 이원석 인천광역시영상위원회 위원장, 개막식 사회 맡은 조민수 배우 인터뷰 / 영화제 관계자 4인과의 기획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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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 13구>는 미국 그래픽노블 작가 에이드리언 토미네의 각기 다른 세 작품을 각색한 결과물이다. 일본계 미국인인 토미네의 뉴욕 스케치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했나.
= 우선 캐릭터들에 매혹된 측면이 크다. 루시 장이 연기한 아시아인 에밀리, 카미유 베토미에가 연기한 포르노 스타 앰버 스위트 같은 인물은 나 혼자서라면 절대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 작품을 파리로 가져오면서 발생할 이국적인 효과에 대해서도 관심이 갔다. 다양한 젊은이들이 뒤섞여 살고 아시아타운이 자리한 파리 13구 자체가 그런 곳이기도 하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를 이국적으로 색다르게 바라보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흑백을 택했다. 파리는 너무 많이 재현된 도시라 이제는 거의 박물관에 박제된 곳 같다는 인상마저 드는데 흑백 화면이 확실히 도시를 낯설게 보는 데 도움이 됐다.
- 명도가 높고 콘트라스트가 강하지 않은 흑백 화면을 써서 환상적인 느낌마저 든다.
= 현실과 디지털 세계, 사랑과 불신
'파리, 13구' 자크 오디아르 감독 "사랑이 필요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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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상상>의 첫 번째 에피소드 <마법(보다 더 불확실한 것)>과 <천국은 아직 멀어>에 출연하며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과 두 차례 호흡한 배우 현리는 감독의 유명한 리허설 방식에 관해 흥미로운 부연을 해주었다. 감정을 뺀 채 대사를 읽되 “상대 배우 뱃속의 종을 울리는 상상”을 하며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 그는 매주 일요일 라디오 DJ를 할 때도 이 태도로 게스트와의 대화에 임한다. “타인의 말을 최대한 듣는 법을 배워간다”는 그는 대화에서도 상대의 뱃속 종을 청명히 울린다. 캐릭터간 장구한 대화가 서사를 축조하는 하마구치 류스케의 세계에 현리가 더없이 어울리는 이유일 테다. 한국인 배우 현리는 일본과 영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연세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했다. 3개 국어에 능통한 그는 “대학만 졸업하면 하고픈 걸 하라”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 순전히 자신의 언어 능력이라면 졸업을 빨리할 수 있을 것 같아 법대에 진학했다. 그의 언어 감각은
[WHO ARE YOU] '우연과 상상' 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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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있었다. 운동회가 끝나고 천원에 산 병아리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며칠 지나지 않아 숨이 끊어지자 온 동네 떠나가라 울어대던 시절이. 솔직한 감정을 숨기고, 아니 무뎌지고, 외부의 규격에 순응해가는 것이 어른이라면 아예 성장을 포기하고 싶었던 남자가 있었다. 유원지에 숨어 사는 어설픈 마술사 리을(지창욱)을 두고 누군가는 낙오자라 폄훼할지 모른다. 하지만 계급의 벽에 부딪쳐 굴욕을 자처하는 아이(최성은)와 잘 닦인 아스팔트가 보장하는 미래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처음으로 질문하는 일등(황인엽)에게 리을은 현실을 망각하는 찰나의 환시를 경험케 한다. 지창욱은 지독히 현실적인 상황에서 마법을 논하는 <안나라수마나라>의 모순형용을 성립시키는 중심축이다. 데뷔 초부터 주목받은 미남 청춘 스타에 머물지 않고 치열하게 다양한 무대의 문을 두드렸던 지창욱은 판타지와 평범성을 고르게 추구한다. 리을은 학생들 사이에 떠도는 풍문처럼 “진짜 잘생긴 미술사”지만, 이따금 스치는 눈빛에
'안나라수마나라' 지창욱: 하고 싶은 대로,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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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K. 심이 각본을 쓰고 연출한 호러영화 (이하 <엄마>)가 5월11일 한국에서 개봉한다. <엄마>는 왜곡된 모녀 관계가 빚어낸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신경쇠약증에 걸린 주인공과 죽어서도 딸을 떠나지 않으려는 엄마의 영혼을 그린 호러 스릴러다. 미국의 한 외딴 농장에서 외부와의 연은 물론이고 전기 공급마저 끊은 채 딸 크리스(피벨 스튜어트)와 양봉으로 얻은 꿀을 팔며 사는 엄마 수현(샌드라 오)에게 어느 날 죽은 엄마의 재가 담긴 유골함과 유품을 담은 가방이 전달된다. 호러나 스릴러에서 흔히 다뤄지는 보편적인 주제인 모녀 관계에 수현이 한국계 이민 2세로 설정되며 드리워진 특수성이 흥미롭다. 영화에 한국 문화를 호러 요소로 사용한 이유, 샌드라 오의 캐스팅과 샘 레이미 감독의 레이미 프로덕션에서 제작하게 된 이야기를 아이리스 K. 심 감독과의 일대일 인터뷰를 통해 들었다.
- <엄마>의 각본을 쓰고 감독까지 했다
'UMMA: 엄마' 아이리스 K. 심 감독, "샌드라 오는 캐릭터의 결정적 영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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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연 감독의 데뷔작 <앵커>를 보고 나서, 언젠가 들었던 프랑수아 오종의 말이 떠올랐다. “복잡한 여성 캐릭터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나는 페미니스트 감독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의미에서 <앵커>를 여성영화라 이야기해도 될 것이다. 영화는 매우 세심하게 장르영화의 틀 안에서 연출자의 색채를 드러낸다. 침착하게 잠재의식의 미로를 탐험하고 돌아온 정지연 감독을 만나 영화의 감춰진 이야기들을 들었다.
- 히치콕 생각이 난다. ‘어머니, 관객과의 게임, 신경증을 가진 여성’ 등의 키워드가 비슷하다.
= 유사점이 있다. <싸이코>의 경우, 재닛 리가 죽은 이후 악인을 따라서 진행된다. <앵커> 시나리오를 쓰는 도중에 주인공이 사라져야만 하는 지점이 있었다. 이야기가 타인의 관점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때 주인공이 악인으로 변한다. 그리고 관객은 인호(신하균)의 시점을 따르게 된다. 히치콕의 과감하고 독특한 플롯은 지금 봐도 놀랍다.
'앵커' 정지연 감독 "여성의 고통을 강박적 대사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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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균상은 이면으로 해석되는 배우다. 드라마 <피노키오>에서 살인자가 되기를 자처한 기재명은 동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순수한 남자였고, <닥터스>의 정윤도는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허술해지는 재벌 상속남이었다. <장미맨션>을 제작한 장원석 비에이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윤균상에 대해 “맑고 깨끗한 이미지 이면에 깊은 섬세함을 갖춘 배우”라며 함께 작업한 소감을 전했다. 강력계 형사 민수 역시 윤균상이 가진 복합성 때문에 표면에 드러난 정보값을 뛰어넘는 호기심을 끈다.
- <장미맨션>은 기존 드라마와 달리 영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또한 기존 드라마보다 짧은 미드폼 형식, 회당 40분 안팎이다. 가존에 해왔던 드라마 작업과 다른 점이 있었나.
= 드라마를 할 때도 감독님마다 스타일이 굉장히 달랐기 때문에 영화팀이라 다르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영화는 한팀이 모든 배우들을 담당하다 보니 화면으로 봤을 때 리얼리티가 잘 살고
'장미맨션' 배우 윤균상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