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이태원 (Lee Taewon)

1938-00-00

참여작품 평점평균

씨네216.7

/

네티즌6.6

기본정보

  • 직업제작
  • 생년월일1938-00-00
  • 성별

소개

아직도 유효한 충무로 자존심의 상징적인 인물로 "영화계 비리사건"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나 그의 입지는 큰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 중론. 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스크린쿼터 감시단의 대표 자리를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고문으로 물러앉았다. 예년에 비해 여러 가지 제작 환경은 상대적으로 열세에 처했지만 탁월한 기획력과 프로듀서로서 능력과 감각 으로 승부를 걸어봄직하다는 응원도 만만치 않다. 이제는 관객수에 연연 하지 않고 의미있는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다. [축제]와 [미지왕]도 같은 맥락의 작업으로 이해할 수 있다. "파워 50"에 뽑힌 것에 대해 "영화계의 연공서열에 따라 뽑아 준 것 같아 면구스럽다"며 "한국영화 열심히 잘 만들라는 채찍으로 생각하겠다"는 소감. 그간 " 칭찬받는 영화 몇 편 만든 것도 모두 좋은 감독, 뛰어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다. 나는 인복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며 어쨌든 한국영화가 잘되도록 힘을 보태겠다는 신념을 피력한다. 그의 '인복론'은 이미 수감 중에 수천명이 석방 탄원서를 냈고 그중에도 우리나라 법조 사상 처음으로 현직 언론인들이 대거 탄원서를 낸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평소 의리파로 알려진대로 구속되었을 때도 혼자 "총대"를 멨다는 후문도 있다.

<춘향뎐>부터 계속 흥행부진에 내몰려 <하류인생>, <취화선> 등이 모두 흥행에 빛을 보지 못했다. 자기 자본으로 영화를 제작했던 그 역시 <춘향뎐> 때부터 투자를 받게 되는데, <취화선>과 <하류인생>은 시네마서비스 사장인 강우석 감독의 도움으로 제작을 마칠 수 있었다.

부인은 이한숙씨. 둘째 아들인 이효승씨는 영화 <두사부일체>의 공동 제작과 투자를 맡아 대박을 터뜨리기도 했다.

관련동영상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