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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멜리에스 (Georges Melie`s)

1861-00-00

기본정보

  • 직업감독
  • 생년월일1861-00-00

소개

영화가 ‘꿈의 예술’이 된 것은 이 사람, 조르주 멜리에스의 공이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에 힘입은 특수효과로, 동화나 꿈같은 이야기를 영화로 재현해 놓았다. 부유한 제화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연인을 떼어 놓으려는 집안의 강요로 영국으로 건너가는데, 그곳에서 마술과 연극을 접하고 심취하게 된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작은 극장을 인수하고 그 극장에서 마술과 연극을 선보이던 멜리에스는 뤼미에르 형제가 세상에 영화를 선보인 그 이듬해 1896년부터 영화작업에 몰두했다. 1분이 넘지 않는 단편작품이 대부분. 라이브로 소화하기 힘든 마술과 연기를 영상에 담기 시작한 것이다. 멜리에스는 극장에 세트를 짓고 의상을 디자인하고 촬영과 현상, 출연까지 하는 등 일인다역을 소화하면서 매년 수십편의 영화를 세상에 내놓았다. 멜리에스는 주로 악역이나 성격연기를 도맡았고, 여배우는 파리의 극단을 수소문해서 캐스팅하곤 했다. <잔 다르크> <드레퓌스 사건>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1902)처럼 실제 있었던 일을 영화화하기도 했지만, <달세계 여행 A Trip to the Moon>(1902)처럼 갖가지 기묘한 특수효과를 동원해 만든 SF영화도 상당수 있었다. 멜리에스는 영화의 스토리를 그저 “관객의 눈에 어필할 수 있는 여러 시각적 효과들을 이어주는 끈”이라고 생각했다. 그림자 놀이와 마술을 응용해 페이드 인, 아웃, 디졸브 등을 만들어냈고, 사람 머리가 풍선처럼 부풀어올라 터지게 하거나 한 프레임에 같은 배우가 동시에 두번 등장하는 효과를 내기도 했다. 그중 몇편은 프레임마다 색을 칠해 만든 천연색 영화로, 애니메이션의 기원을 이뤘다고 할 수 있다. 1905년 이후 프랑스영화가 산업화 조짐을 보이면서 제작비가 오르고 경쟁은 치열해졌음에도, 멜리에스는 영화제작에 더불어 극장 라이브 공연을 지속하는 등 여러가지 무리수를 두고 있었다. 1896년부터 1912년까지 500편의 영화를 만들었지만, 결국 가산을 탕진하고 영화제작을 중단하면서 영화 네거필름과 프린트를 태워버렸다. 멜리에스의 작품들은 상당수 이때 화염 속에서 사라져갔다. 1945년 멜리에스의 손녀 마드렌 말데트 멜리에스가 유산찾기 개념으로 잃어버린 필름들을 다시 수집하고 복원하기 시작했고, 1961년 멜리에스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프랑스 국립시네마테크, 문화성과 함께 멜리에스 재단을 만들었다. 재단은 그간 100여편의 필름과 팸플릿, 포스터, 관련 기사를 찾아 놓았으며, 증손녀인 마리 엘렌 멜리에스 등이 세계 각지를 돌며 멜리에스 영화 상영회를 열고 있다. <b>[씨네21 영화감독사전]</b>

참여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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